주간동아 637

2008.05.27

만화가 예술이 된 팝아트 … 미술은 철학 선언

  • 최광진 미술평론가·理美知연구소장

    입력2008-05-21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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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가 예술이 된 팝아트 … 미술은 철학 선언

    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

    얼마 전 삼성비자금 의혹 수사와 관련해서 유명한 그림이 된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마이크 세코스키가 그린 만화의 한 컷을 확대하여 인쇄할 때 생기는 망점을 그려 넣은 작품이다. 현대미술에 무관심했던 일반인들은 싸구려 만화가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했고, 작품가격에 또 한 번 놀랐을 것이다. 창조적이지도, 그리 아름답지도 않은 이 작품이 그처럼 비싼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작품의 가치가 창조성이나 미(美)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철학자 단토는 르네상스 시기에는 미술을 대상과 똑같이 옮겨내는 재현이라고 착각했고, 모더니즘 시기에는 미술이 물질적인 것이라 생각해 추상화했으나 팝아트의 등장과 함께 시각적인 차원의 미술이 종말을 고했음을 선언한다. 그에 따르면 미술의 본질은 시각적인 게 아니라 개념적, 철학적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더니즘 이후 컨템포러리 아트의 조건이다. 그렇다면 팝아트의 등장은 기존 미술 패러다임의 종말을 알리고 새로운 미술을 선언한 획기적 사건이다.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같은 팝아트 작가들은 상품이나 만화의 이미지를 실물과 똑같이 재현함으로써 미술의 본질이 지각적인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 과거 미술에서 재현은 문학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팝아트는 그 반대다. 그림이 삽화처럼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일상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팝아트의 미학은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전유물이었던 개성과 아우라를 작품에서 탈각해 무의식적 보편성에 이르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그러므로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이미지는 실재 만화를 설명하거나 홍보하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 이것은 아무 지시대상이 없는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만약 그림의 내용 때문에 가치가 매겨진다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보다 원작 만화가 더 비싸야 할 것이다. 팝아트는 조형적으로 쉬운 미술처럼 보이지만, 사실 개념적으로는 어려운 미술이다.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작품의 가치는 조형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 가치이고, ‘수사적인 발언’이 미술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리고 개념이 강할수록 양식은 자유로워져서 다원화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다원주의 시대일수록 확실한 개념이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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