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6

2009.10.13

내 나이테 키우는 날 조촐 자급자족 생일상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10-07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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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이테 키우는 날 조촐 자급자족 생일상

    <B>1</B> 손수 차린 생일상. 곁에서 누군가 함께 먹어준다면 그만큼 복이다. <B>2</B> 덕유산 동엽령에서 동쪽을 바라본 풍경. <B>3</B>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계곡.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여러 뜻이 있는 것 같다. 부모님한테 몸을 받아 삶의 첫발을 내디딘 날은 아주 특별하다. 하여 백일만 돼도 기념을 하고, 돌에는 잔치를 해준다. 그런데 아이 잔치를 크게 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듯하다. 시골 내려온 다음 치른 우리 작은아이 돌잔치. 시골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좀 과장되게 했다. 손님이 많아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돌 지난 아기가 아는 얼굴이라곤 가족뿐. 아기는 낯선 분위기와 큰 소리에 놀라 울고, 그 와중에 사진 찍는다고 웃으라고 했으니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지 싶다. 부모의 자기만족을 위해 아이를 제물로 삼았다고 해야 할까. 진정으로 아이를 생각한다면 되도록 가족끼리 조촐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그 뒤 내 생일을 치르면서도 생각이 자주 바뀌었다. 남보란 듯 상을 잘 차리기보다 근본을 헤아려보자는 쪽이다. 자신이 태어난 걸 기뻐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일 테다. 만일 부족한 게 있다면 남이 챙겨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스스로 챙기면 어떨까. 말하자면 ‘생일잔치의 자급자족’이다.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나 내게 힘을 주는 사람들과 자연을 돌아보면서 자신을 더 사랑하고 싶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이번 내 생일에는 몇 가지 의식을 계획했다. 먼저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다. 보통 생일이라면 선물을 받는 문화에 익숙하다.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그리 흔쾌하지 않을 때가 있다. 기대보다 못하면 서운하고, 기대 이상이면 그만큼 갚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이런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 삶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감사한다면 그 마음을 담아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 어머니를 시작으로 함께 사는 식구, 그냥 조건 없이 선물하고 싶은 사람에게 내 방식으로 부담 없이 선물을 했다. 물론 가까운 사람들이 주는 선물은 고맙게 받았다. 큰아이는 나무목걸이를 직접 만들어줬고 작은아이는 막걸리를, 아내는 떡 케이크를 해줬다. 두 번째 의식은 생일상 손수 차리기다.

    이 역시 내 생일을 내가 먼저 기뻐하고자 함이다. 남이 기뻐해주기 이전에 스스로 그 기쁨을 누려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고 상을 거창하게 차리는 건 아니다. 되도록 제철에 나는 것들로 할 수 있는 만큼, 그리고 차리고 싶은 만큼.

    내 생일은 가을이라 오곡이 풍성하다. 직접 밥을 하고 들깨를 갈아 넣어 미역국을 끓였다. 밥에는 잡곡으로 이제 막 영글어가는 동부, 울타리 콩, 옥수수, 그리고 수수를 넣었다. 햇땅콩은 꼬투리째 고구마와 한꺼번에 삶아놓고, 한창 자라는 배추와 무를 솎으니 쌈 거리도 푸짐했다. 과일 역시 여러 가지. 끝물 복숭아에 한창 맛난 포도, 밤과 풋대추까지. 여기에 아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생일 떡이 놓이니 밥상이 넉넉했다.

    내 나이테 키우는 날 조촐 자급자족 생일상

    <B>4</B> 덕유산 정상 가까이에 핀 산오이풀꽃. <B>5</B> 누워서 바라본 소나무. 큰 산은 큰 기운을 갖는 것 같다. <B>6</B> 뭔가 말을 하려는 듯한 바위.

    이렇게 ‘손수’ 생일상을 차리니 부족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럴 때 식구가 함께해주는 건 그냥 덤이 아닌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들. 세 번째 의식은 일상을 벗어나 자신에게 휴가 주기.

    사람은 일상에서 벗어날 때 둘레를 좀더 찬찬히, 그리고 깊게 음미할 수 있다. 직장에서도 직원들 생일휴가를 제도적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회사도 나라도 그 탄생을 기념하는 데 비해, 인격을 갖는 사람의 생일은 제도적인 점에서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혼자 떠나는 오붓한 생일 여행

    밥상을 치우고 나서 그냥 쉬는 게 아니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 여행만은 혼자 떠나고 싶었다. 내가 태어난 이 무렵, 둘레에 잘 자라는 식물과 나무들은 무엇이고 이맘때 피어나는 꽃은 무엇일까. 새들은 무슨 새가 울며, 하늘과 바람은 어떤 흔들림으로 다가올까. 카메라 하나 달랑 챙겨 메고 가볍게 집을 나서 덕유산 칠연계곡으로 들어섰다.

    덕유산은 큰 산이라 들머리에서부터 공기가 다르다. 지금 내가 사는 곳도 둘레가 다 산이지만 큰 산은 큰 기운을 갖나 보다. 계곡 물소리가 힘차고, 나무는 우람하며 바위는 넉넉하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들꽃과 나무들을 살피면서 산을 올랐다.

    나무들이 조금씩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도토리는 이따금 후두둑 떨어졌다. 계곡 들머리에서 동엽령이라는 능선까지 오르는 데 2시간 남짓. 내게 딱 맞는 거리다. 느낌이 있는 나무와 바위, 그리고 들꽃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렇게 사진을 찍는 순간은 잠시 가쁜 숨을 고르며 쉬는 틈.

    산을 오르다 목이 마르면 계곡물을 손바닥으로 떠, 그대로 마셨다. 좀더 높은 곳에서는 물이 적으니 엉덩이 쳐들고 고개 숙여 입으로 마셨다.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산 들머리보다 높은 곳의 물맛이 더 좋은 것 같았다. 산 정상 가까이에 오르면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꽃들이 보인다. 산오이풀, 산부추, 수리취꽃이 아주 신선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산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이렇게 생일을 핑계로 여러 의식을 치르면서 한 가지 생각을 정리해본다. 사람 몸이 성장하는 건 20대 초반까지다. 그 후는 몸보다 정신이 성장한다. 보통 생일이란 어머니 자궁 속을 빠져나온, 생물학적인 날. 어른이 된 뒤 생일잔치는 자꾸 나이를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이제는 되도록 나이를 잊고 싶다. 그러자면 생일도 달라져야 하리라. 날짜에 매이기보다 자신의 성장을 기념하는 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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