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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교수의 5분 한국사

보름달아, 이산의 아픔을 아느냐

올해로 1978번째 가배(한가위) … 언제쯤 하나 되어 달맞이 즐겨볼까

  •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 hanguksaok@hanmail.net

보름달아, 이산의 아픔을 아느냐

보름달아, 이산의 아픔을 아느냐

언제쯤 남북이 하나 되어 한가위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을까. 그림은 김홍도의 ‘씨름’.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 32년) 봄, 왕이 6부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눠 두 왕녀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를 거느려 7월16일부터 날마다 새벽부터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게 했다.

밤 10시경에 파(罷)하게 하고, 8월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다소(多少)를 심사했다. 진 편은 주식(酒食)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여기서 가무와 온갖 유희가 벌어졌는데 이를 가배(嘉俳)라 했다.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會蘇), 회소(會蘇)’라 하니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로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했다.”

‘삼국사기’ 유리왕 9년조에 나오는, 가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조선 중종 때 ‘동국여지승람’을 증보, 수정해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 경주부에도 ‘을야(乙夜)의 길쌈(績麻)’이라는 내용이 전한다. 가배라는 말은 가운데(中) 또는 반(半)의 어근인 ‘갑’에 명사형 접미사인 ‘∼이’가 붙은 것으로 가을의 반, 즉 중추(仲秋)의 한국식 표기로 보인다. 회소곡의 ‘회소’에 대해서는 ‘아소(아소서·知)’로 풀이하는 견해와 ‘모이소(集)’로 해석하는 견해, 그리고 ‘아서라·말아라(禁)’라 보는 견해가 있다.

우리의 세시풍속 가운데 음력 8월15일을 한가위(추석)라 하여 1년 중 가장 중요한 명절로 쇠고 있는데, 그 기원은 신라 이전까지로 올라간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을 보면 초기국가(Primitive-state)에서 공동체의 집단적인 농경의례 가운데 하나로 풍성한 수확제, 추수감사제(Thanksgiving Day)가 거행됐음을 알 수 있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 삼한의 시월제(十月祭)가 그것이다.



풍작 기원 종교의식으로 공동체 결속

추수감사제에서는 노래와 춤이 행해졌는데 이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어로, 수렵, 농경 등의 중요한 생산활동을 모두 씨족원의 공동 노동으로 행했기에 풍작을 기원하는 종교의식이면서도 씨족사회 이래의 전통을 이은 축제이자 전체적인 행사였으므로 ‘국중대회(國中大會)’라 불렀다. 특히 부여에서는 형옥(刑獄)을 중단하고 죄수들을 풀어주면서 결속을 강화했는데, 이는 오늘날 국경일에 모범수를 사면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고구려의 동맹이 고려의 팔관회로 계승됐음을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처럼 면면히 이어온 가배는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에게는 봄에서 여름까지 땀 흘려 가꾼 곡식과 과일을 수확하는 계절이었고, 1년 중 가장 큰 만월(滿月)을 맞아 마음이 풍요롭고 유쾌한 명절이었다. 더구나 기후도 여름처럼 덥지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 살기에 적합했다.

그래서 조선 후기 김매순(金邁淳)이 열양(한양)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매양 가배만 같아라(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라는 말이 전한다.

“신라 원성왕 6년(790) 3월에 일길찬 백어(伯魚)를 북국에 사신으로 파견했고, 헌덕왕 4년(812) 9월에 급찬 숭정(崇正)을 북국에 사신으로 파견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나타난 신라와 북국의 교류 기사다. 여기서 북국은 발해를 지칭하는데 왜 남북국시대 대립기에 신라가 북국에 사신을 파견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위기에 처한 내부의 불만과 정치적 관심을 타개하기 위한 포석인 듯하다. 나당전쟁(670∼676) 이후 신라가 일통삼한(一統三韓)을 이뤘지만,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발해가 들어서면서 우리 역사는 통일신라시대가 아닌 남북국시대가 전개됐다.

보름달아, 이산의 아픔을 아느냐

경기 파주시 문산읍 경의선 철도중단점에서 어린이들이 철길 위를 천진난만하게 걷고 있다.

신라와 발해, 두 나라는 적극적으로 교류하기보다 원만하지 못한 관계에서 소극적인 경제·문화 교류가 있었을 뿐이다.

신라와 발해는 이처럼 200여 년을 대립으로 보내다가 발해는 거란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세운 요(遼)에게 멸망하고(926), 신라는 후삼국시대를 거치면서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부(歸附)해 멸망했다(935).

발해 멸망 후 열만화(烈萬華)가 압록강 중류에 정안국(定安國)을 세워 거란에 대항했으나 실패해 우리 역사는 만주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 후 고려의 후삼국 통일로 하나가 되어 조선으로 발전했지만 일제에게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지로 전락했다.

통일열차는 힘차게 달리고 싶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1945년 8월, 일제 식민지의 사슬에서 해방됐으나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됐으며 1300여 년 전 남북국시대의 역사가 이 땅에 다시 펼쳐져 60년 이상을 반목과 질시 속에서 보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남북국시대를 지속시킬 이유가 없다. 1990년 10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서독의 브란트와 동독의 슈토프가 얼마나 긴 여정을 보냈는지를 곱씹어봐야 한다.

이 두 총리는 공식 6회, 비공식 3회 등 무려 20년이 소요된 9차례의 정상회담을 했다. 우리도 ‘냄비근성’을 버리고 은근과 끈기로 통일회담을 차근차근 준비해 분단의 아픔을 종식하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를 만들어야 한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선유2리, 경의선이 끊어진 지점에 서 있는 철도중단점 푯말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We want to be back on track)”라고 적혀 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경의선·동해선 연결 복원공사가 진행되면서 통일이 오는 듯도 했으나 현재는 공사가 중단돼 비운의 철도가 됐다.

서울과 신의주를 달리던 518.5km의 경의선이 서울-도라산 간 65.5km 철도노선을 일컫는 기형적인 용어가 되고 말았다. 하루빨리 남과 북을 잇는 통일열차가 서울을 출발, 개성∼사리원∼평양∼신안주를 거쳐 신의주로 기적을 울리며 달릴 날을 손꼽아본다. 최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9월26일∼10월1일 금강산에서 남·북한 각 100명의 추석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치르기로 했다.

70세 이상 고령의 상봉자 중 특히 6·25전쟁 때 여고생 딸을 잃은 어머니 얘기가 눈길을 끄는데, 지금 100세의 남한 어머니가 75세의 할머니가 된 북한의 딸을 만난다고 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그래도 그들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형제·자매를 만나 50여 년 만에 함께 보름달을 보며 지나간 세월을 얘기하겠지만, 남한의 국군포로 및 납북자 가족에게는 그 달이 결코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 애타게 고국행 비행기를 타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는 사할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머나먼 이국땅 우리의 또 다른 이산가족에게도 마찬가지리라. 신라 유리왕 때 첫 번째 가배행사를 했으니, 올해는 1978번째의 가배가 된다. 수천 년을 보아온 보름달이지만 언제 저 달이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달’이 되어 떠 있을까.



주간동아 2009.10.13 706호 (p156~157)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 hanguksa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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