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6

2009.10.13

전자발찌보다 힘겨운 ‘마음의 딱지’

‘보호관찰제’ 도입 20년, 감금과 자유 사이에서 재기 몸부림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09-09-30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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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발찌보다 힘겨운 ‘마음의 딱지’
    보·호·관·찰

    [#장면 1] 송파구, 9월16일 수요일 오전 10시


    평상복 차림의 보호관찰관이 고시원 앞에서 전화를 걸자 비니를 눌러쓴 20대 남자가 건물에서 나온다. 성폭행으로 2년을 복역하고 풀려나 전자발찌를 차고 지내는 그는 한 달에 4번 보호관찰관을 만난다.

    전자발찌가 채워진 이들의 24시간 이동경로를 꿰고 있는 보호관찰관이 “요즘 왜 밤에 다른 동네엘 가느냐”고 캐묻는다. 남자는 “아는 동생을 잠깐 만났다”고 변명한다. 보호관찰관이 전자발찌를 확인하려 왼쪽 발목을 잡자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장면 2] 강동구, 9월16일 수요일 오전 11시



    30대 남자가 10초 간격으로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손으로 가린다. 어릴 때부터 본드를 흡입해 신경장애를 앓는 그는 얼마 전에도 본드에 손댔다가 보호관찰처분을 받았다. 보호관찰관의 살가운 질문에 시종 “네”라고만 답하는 그에겐 담배가 유일한 의지처인 듯하다. 10여 분 뒤 보호관찰관이 자리를 뜨자 뒤따라온 노모가 답답한 속내를 드러낸다. “고등학교 중퇴한 뒤로는 늘 방에만 있어요. 도대체 계획이라곤 없는 애라….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요즘엔 잠잠해요.”

    전자발찌보다 힘겨운 ‘마음의 딱지’
    [#장면 3] 광진구, 9월16일 수요일 정오

    보호관찰관은 마약사범을 만날 때면 화장실에까지 들어가야 한다. 소변검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 대상자가 소변보는 모습을 직접 봐야 하기 때문이다. 검사는 당연히 불시에 한다. 검사를 마친 50대 남자가 말했다. “예전엔 악상(樂想) 떠올리느라 그랬지만 요즘엔 절대 안 해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 2년을 선고받은 그 또한 한 달에 4번 보호관찰관을 만난다.

    신입 보호관찰관인 척하고 보호관찰관들을 따라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봤다. 보호관찰은 ‘범죄인을 구금하는 대신 일정한 준수사항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자유로운 사회생활을 허용하면서 국가의 지도, 감독을 받도록 하는 제도’. 보호관찰의 주요 대상자는 교도소에서 복역을 마쳤지만 죄질이 중한 사람, 형기를 마치지 않고 가석방된 사람, 교정시설에 보내 범죄자 낙인을 찍기보다 사회에서 재기할 기회를 줄 만한 청소년 등이다(표 참조).

    2008년만 해도 형법, 소년법, 치료감호법, 성폭력법, 가정폭력법, 성매매처벌법 등을 위반한 18만명이 보호관찰(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 조사 대상자 포함)을 받고 있다. 이 중 청소년은 30%인 5만여 명에 이른다. 보호관찰 대상자는 재범 위험성을 기준으로 ‘일반’ ‘주요’ ‘집중’으로 나눠 각각 한 달에 1번, 2번, 4번 보호관찰관을 만난다. 절반은 보호관찰관이 대상자의 주거지를 방문하고, 절반은 대상자가 보호관찰소에 출석하는 식이다. 보호관찰관은 대상자의 일상에 변화가 없는지,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는지 확인한다.

    범죄 저지를 가능성이 많은 경우 ‘야간외출 제한명령 음성감독 시스템’을 활용한다.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 대상자가 집에 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것. 보호관찰관은 대상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처분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그 결과 대상자의 집행유예가 취소되기도 하고 보호처분이 변경되기도 한다. 가석방, 임시퇴원 등 법원의 훈방 조처가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전자발찌보다 힘겨운 ‘마음의 딱지’

    서울보호관찰소에서 성구매사범들이 재범방지 교육(존 스쿨)을 받고 있다(위).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소외계층의 고충을 노동으로 덜어주고 있다(아래).

    안타까운 것은 마약사범을 제외한 대부분의 보호관찰 대상자가 하류층이라는 점. 청소년 가운데는 중·고등학교를 중퇴한 이가 상당수다. 이런 열악한 여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보호관찰관 1명이 담당하는 대상자가 150여 명이다 보니 현재 상태를 감독하는 것만도 벅찬 게 현실. 재사회화라는 보호관찰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그들의 미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렵다.

    “범죄자도 사회인이므로 시설에 구금하기보다는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편이 낫다. 보호관찰관들이 그들의 사회생활을 도와주는 건 효율적이기도 하다. 구금에 소요되는 비용이 보호관찰 비용보다 16배나 많을 뿐 아니라 보호관찰 대상자의 재범률(약 성인 5%, 청소년 7%)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주철현 국장)

    사·회·봉·사·명·령

    보호관찰제도에는 대상자의 행동을 관리·감독하는 보호관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자에 대해 일정 시간 무보수로 사회에서 근로하도록 하는’ 사회봉사명령제도도 있다.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유명 인사들과 일반인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한다. 집 개·보수, 세탁 지원, 목욕 봉사 등의 노동으로 소외계층의 고충을 덜어주는 것. 지난해 사회봉사명령에 참여한 사람은 4만7654명에 달한다.

    수·강·명·령

    [#장면 1] 성구매사범, 40대, 상업


    “오전에 에이즈 관련 교육을 받았는데 유익했어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가 그 여자가 적발되는 바람에 나도 여기 오게 됐어요. 벌금 300만원 낼 바에야 하루 8시간 교육받는 게 낫겠다 싶어 왔죠. 교육받는 걸 아내가 알게 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몰라요. 이런 교육 받는다고 여자 생각이 가신 건 아닌데, 이젠 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면 2] 폭력사범, 47, 무직

    “하루 소주 3병 반을 계속 먹다 보니 가족과 관계가 안 좋아졌어요. 어느 날 술 마시다 술집 주인과 싸움이 붙어 보호관찰 2년, 수강명령 40시간을 받았어요. 강의를 들어보니 대개 (술 마시는 걸) 말리는 사람이 없어서 술을 계속 마신다는데, 나는 가족이 말리는데도 계속 마셨어요. 하루 8시간씩 일주일에 5번 강의를 듣는데 오늘이 세 번째죠. 그동안 수강생들과 술 마신 적은 없어요. 얘기해보니 다들 나처럼 외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드네요. 교육받는 동안에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음주 횟수가 줄었습니다.”

    [#장면 3] 가정폭력사범, 59, 전직 공무원

    “춤바람 난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아무런 반응을 안 했더니 밤마다 나를 괴롭히기에 몇 대 때린 적이 있어요. 사실은 정당방위인데, 경찰서에 3번 갔었죠. 끝내는 이혼해서 위자료 3000만원 주고 재산도 반으로 나눴어요. 그전까지는 싸우지 않고 살았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여기 온 사람들이 다 그래요. ‘둘 다 문제가 있어 싸우는 건데 왜 우리만 교육받느냐’고. 맞아요. 남자만 치료받는 건 억울해요. 싸움 때문에 자식들이 상처받는다는 걸 알고 나선 마음이 아팠어요. 여기서 교육을 받아 마음이 진정되긴 했지만 앞으로 나 혼자서 살아 갈 거예요. 여자한테 아주 정 떨어졌습니다.”

    [#장면 4] 음주운전사범, 47, 상업

    “음주운전하다 사고를 내 4년간 운전면허가 정지됐어요. 식품 유통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운전면허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죠. 7명의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지금 일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는 술 마시면 반드시 대리운전을 부를 겁니다.”

    수강명령은 보호관찰제도의 또 다른 하부 항목. 성매매사범이 수강하는 ‘존스쿨’이 대표적인 수강명령이다. 그 밖에 약물치료, 가정폭력치유, 정신치료 등 16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성인의 최대 수강교육 시간은 200시간, 소년은 그 절반인 100시간이다. 학생들의 경우 방학에 교육이 실시되고, 성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여러 주에 걸쳐 진행된다. 존스쿨은 하루 8시간 교육으로 끝난다.

    조·사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받은 ‘판결 전 조사’도 보호관찰제도에 포함된다. 수사의 1차 목적이 유죄 증명인 데 반해, 판결 전 조사의 1차 목적은 ‘재사회화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다. 다시 말해 왜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판사는 중범죄자들에게 형을 선고하기 전 정황 파악을 위해 보호관찰소에 판결 전 조사를 의뢰한다. 유영철의 판결 전 조사를 담당한 이창한 울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와 서울보호관찰소 노일석 관찰팀장은 그 절차를 이렇게 설명했다.

    1. 생애 기록물을 찾는 과정 : 기록물을 우선적으로 확보한다. 출생신고서, 교우관계와 가정환경을 알 수 있는 학교 생활기록부, 교도관의 기록평가물 등 공식 문건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한다.

    2. ‘책임능력 파악’ 과정 :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자신에게 간질병이 있다고 주장하는 유영철에 대해 의학적, 심리학적 진단을 하게 된 것도 이 과정 중에 진행됐다.

    3. 관련자 인터뷰 : 주변 인물, 즉 친구, 교사, 가족 등을 인터뷰한다. 유영철의 경우에는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친구, 교사를 먼저 만났다. 수소문 끝에 담당관이 어머니를 만나 ‘복잡한 가정환경’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그리고 유영철에게 ‘처음으로 좌절한 경험이 무엇인가’ 묻는 것을 시작으로 미리 세워둔 가설 100여 개를 검증하기 위한 확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그 결과 “유영철 또한 사회환경이 잘 이끌어줬다면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절차 중에 PCL-R(사이코패스 심리검사) 등 다양한 심리검사가 진행되는 건 물론이다.

    유영철 사건 외에도 보성 어부 살인사건, 혜진·예슬 양 유괴살해사건, 청담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등의 강력사건에 대해 판결 전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판결 전 조사는 2006년 3000건 정도였으나 2008년엔 4000여 건으로 늘어났다. 또한 소년 수용자의 범죄 동기를 조사해 가석방 심사에 활용하거나 성인 가석방 예정자에 대한 보호관찰 필요 여부를 조사하는 ‘환경조사’ ‘사안조사’가 조사 영역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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