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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人文기행 ⑦ 군산

군산 사랑도 역사도 흉터투성이 아~ 검은 멍든 바다여

일제 때 수탈의 통로 ‘아픔’ … 많은 문인들 마음의 고향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군산 사랑도 역사도 흉터투성이 아~ 검은 멍든 바다여

군산 사랑도 역사도 흉터투성이 아~ 검은 멍든 바다여
경북 예천이 고향인 시인 안도현은 대학시절을 전북 익산의 원광대에서 보냈기 때문에, 오히려 소백산 아래쪽보다 금강하구의 너른 곳들에 대하여 오랫동안 사무쳐왔다. 예컨대 안도현은 군산 앞바다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군산 앞바다

올 때마다 가라앉는 것 같다

군산 앞바다,

시커먼 물이 돌이킬 수 없도록



금강하구 쪽에서 오면

꾸역꾸역, 수면에 배를 깔고

수만 마리 죽은 갈매기 떼도 온다

사랑도 역사도 흉터투성이다

그것을 아등바등, 지우려고 하지 않는 바다는

늘 자기반성하는 것 같다

이 엉망진창 속에 닻을 내리고

물결에 몸을 뜯어먹히는 게 즐거운

낡은 선박 몇 척,

입술이 부르튼 깃발을 달고

오래 시달린 자들이 지니는 견결한 슬픔을 놓지 못하여

기어이 놓지 못하여 검은 멍이 드는 서해.

- 안도현 ‘군산 앞바다’

시인이 정갈하게 묘사한 대로 군산에 오면,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전군가도를 달려오거나 서해안고속도를 이용하여 군산IC를 빠져나오거나 어쨌든 군산의 금강하구언을 들를 수밖에 없는데, 그 곁으로 다가가 강물이 바닷물과 교접하면서 이룩한 뻘밭을 보면 그야말로 ‘검은 멍이 드는 서해’라는 표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검은 멍’은 바다에만 국한되지 않고, ‘새만금’ 프로젝트를 기회로 삼아 안간힘을 쓰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군산의 구석구석에 아직은 배어 있다. 흡사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내항(內港)에 정박한 작은 배들처럼, 그렇게 세월에 묶여버린 듯 군산의 시가지는 부분적으로는 아직 ‘근대’에 머물러 있다.

거리 곳곳의 옛 건축물 일제 때 상흔 드러내

서해의 작은 마을치고는 산이 많아서 ‘군산(群山)’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조선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군영(軍營)까지 설치되었으나, 바로 일제강점기에는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막대한 양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던 창구 역할을 한 곳이 군산이다. 광복 이후 쌀 수송 일이 끊어지자 군산은 그즈음에서 변화를 잠시 멈추고 말았다. 그래서 거리 곳곳의 옛 건축물은 일제 때의 상흔이자 그 시절을 겪어낸 군산 사람들의 애틋한 기억이기도 한 것이다.

군산은 1899년에 개항하였고 지금의 내항에서 월명동에 이르는 거리에 일본인 마을까지 조성되었다. 밀물 때 떠올랐다가 썰물 때 바닥으로 가라앉는 다리, 즉 부잔교를 중심으로 도로와 철로와 배와 수레가 쌀을 실어날랐다. 이런 기억들을 군산 개항 100주년 광장 주변의 옛 조선은행, 나가사키 은행, 군산세관 건물, 그리고 부분적으로 경암마을의 낡은 철로가 증명해주고 있다. 세관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 군산세관 건물은 1908년에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산 붉은 벽돌로 지은 것이다.

내항의 기억이 이러하다면 큰길 건너편의 월명동과 신흥동은 일제 때 바둑판처럼 조성된 일종의 ‘신도시’로, 그 유허를 역시 포목상 히로쓰 옛 가옥이 증명해준다. 이 가옥은 장군의 아들이나 타짜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군산 사랑도 역사도 흉터투성이 아~ 검은 멍든 바다여

군산항

군산을 대표하고 또한 근대문학을 대표하며, 일제 말기에 체제 순응의 친일행위를 하였다가 광복 후 1948년에는 ‘민족의 죄인’을 발표하며 뼈저리게 뉘우친 소설가 채만식은 이 금강하구와 내항과 월명동 일대를 자신의 작품에서 자주 언급하였다.

지금은 곧 무너져버릴 듯이 폐가가 되어버린, 한때는 꽤 잘나가는 유흥업소였던, 그리고 무엇보다 1923년 이후 일제 수탈의 핵심적 기능을 했던 옛 조선은행 건물은 채만식의 대표작 탁류의 중심적인 배경이다. 탁류의 호색한 고태수가 근무했던 은행이 바로 이 건물이다. 중하류 인생의 음모와 허위와 죄의식들, 그리고 작은 꿈들을 흥미롭게 뒤섞은 세태소설 탁류을 시작하면서 채만식은 이렇게 썼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의 ‘탁류’ 안도현의 많은 시도 군산 배경 삼아

채만식의 탁류는 1930년대의 군산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데 이 시기에, 그러니까 1933년에 시인 고은이 군산시 미룡리(지금의 은파유원지와 할미산 부근)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부터 모진 시련이 그의 가계를 덮쳤고 고향 군산을 공격했다. 6·25전쟁 때 소년 고은은 마을 곳곳 참호와 방공호에서 처참한 죽임을 당한 시체를 파내고 다시 묻는 노역에 동원된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고은은 정신착란까지 앓아야 했다.

어디론가 먼 곳으로 늘 탈향하고 싶었던 고은은 금강이 마지막으로 서해로 스며드는 강의 둑에 앉아 맞은편 장항의 제련소를 바라보았다. “나를 까치발 디딘 듯 부쩍 키운 것은 강 건너 장항제련소 굴뚝이었다. 그 굴뚝의 기나긴 연기였다”고 고은은 쓴 바 있다. 소년 고은은 군산중학교를 등교하던 중에 우연히 한하운 시초를 줍게 되고, 벼락같은 우연의 선물에 감전되어 탈향을 하고 탈속을 하고 마침내 시인이 되었다.

그런 곳에 와서 경북 예천 사람 안도현이 또 시를 쓴다. 아무래도 군산은 그의 문학적 고향임이 틀림없다. 여러 권의 시집에서 안도현은 바다와 섬과 해안의 삶을 노래하였고, 미역줄기 같은 시들에서 군산은 그 내항의 내음과 해망동의 바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그 하나인 병어회와 깻잎을 읽어보자. 그리고 언제라도 틈이 나면 군산에 한번 가보자. 새만금 때문에 군산이 ‘근대’에서 너무 기이한 방식으로 ‘현대’에 접속하기 전에 말이다.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켰더니 병어회가 안주로 나왔다

그 꼬순 것을 깻잎에 싸서 먹으려는데 주모가 손사래 치며 달려왔다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 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 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 안도현 ‘병어회와 깻잎’



주간동아 2008.05.27 637호 (p66~68)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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