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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 구설수? 집무실 탓도 커요”

풍수명리학자로 변신한 이기만 前 경무관 “같은 사무실에도 좋은 자리, 나쁜 자리 있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경찰청장 구설수? 집무실 탓도 커요”

“경찰청장 구설수? 집무실 탓도 커요”
이기만(60·사진) 전 경무관은 1979년 간부후보생 27기로 경찰에 투신해 강진·군위·군포경찰서장과 경기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을 지냈다.

“홍조근정훈장까지 받았으니 경찰로서 성공한 셈이죠.”

그런 그가 최근 서울 종로구에 사무실을 냈다. 그런데 사무실 이름이 그의 이력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 도선풍수 명리학회’. 사무실 책장은 명리서와 풍수서로 가득했다. 그는 공직을 떠난 뒤 기자와의 만남은 처음이라며 웃어 보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해 구설에 오른 이택순 경찰청장 얘기를 첫 화제로 꺼냈다.



“경찰청장 집무실의 풍수가 좋지 않아요. 최기문 허준영 전 총장도 임기를 못 채웠잖아요. 청장실의 층수를 풍수적으로 좋지 않은, 즉 대흉인 9층에서 탐랑생기궁인 7층으로 바꾸면 대길할 텐데….”

풍수가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군포경찰서장으로 일할 때의 일화 한 토막.

“경찰서 정문이 육살궁(요사하고 음탕해 바람기로 재산을 탕진하거나 패망하는 흉살 방위)에 자리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생기궁(건강 행운 부귀를 주관하는 방위)으로 위치를 바꿨더니 진급자와 승진자가 넘쳐나더군요.”

“운명적으로 자네는 판·검사가 될 수 없다네. 하지만 때가 되면 경찰서장 정도는 할 수 있을 걸세.”

그의 삶이 바뀐 건 스물한 살 때 도인(그는 스승님이라고 부르면서 선인, 도인이라고도 칭했다)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는 이 도인에게 3년간 역학과 풍수 등을 배웠는데, 경찰에 투신한 것도 도인의 조언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어요. 역경(易經)에도 나름대로 관심이 있었고요.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중 우연히 스승님을 만났죠. 스승님에게 배운 뒤 고서들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옥룡자답산가’ ‘건물풍수핵심비결’ ‘범위명운수비결’ ‘적천수특수비전’ ‘요해 도선비기’ 등 10여 권의 풍수 명리 주역서를 ‘필명’으로 냈다. 이 책들의 내용은 도인에게서 물려받은 자료를 기초로 한 것이다. 그는 “나는 ‘도사’나 ‘술사’가 아니라 ‘학자’로 불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문난 지관이던 S씨(사망)를 수사한 적이 있다. 쭛쭛도사로 불리던 S씨가 TV 토크쇼에 나와 “재벌 총수들은 터 한번 봐주면 한 10억원씩 안 갖다주나…”라고 말했고, 이를 본 그는 경찰로서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 여겨 S씨를 불러 캐물었다.

“누구 누구의 터를 잡아주고 10억원씩 받으셨는지 알아야겠습니다. 10억원씩 받거나 주었다면 세금문제도 있고 비자금 조성 등 해당 기업에 확인할 것도 있어서요. 영감님 쓰신 책 표지에 히로히토 일본천황과 장개석(장제스) 총통의 묘터를 잡아주셨다고 씌어 있던데, 출입국관리사무소와 해외공관에 알아봤더니 사실이 아니더군요.”

S씨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 책은 내가 직접 쓴 게 아니고 사실은….”

종로에 사무실 개설 … “생활풍수 주로 다룰 것”

“경찰청장 구설수? 집무실 탓도 커요”

이기만 전 경무관이 번역 중인 풍수 관련 중국 고서.

“풍수이론을 들이대며 S씨를 몰아붙였어요. 결국 땅속을 훤히 들여다본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실토하더군요. S씨는 그저 그런 술사도 못 되는 ‘가짜 도사’였어요. 그가 72억명을 다스릴 대제왕지라고 주장한 자미원 명당도 허튼소리입니다.”

그는 종로 사무실에서 양택풍수(집터의 길흉. 반면 음택풍수는 묏자리의 길흉), 그중에서도 생활풍수를 주로 다룰 계획이라고 했다.

“명리를 안다는 건 어떻게 보면 무서운 일이죠. ‘범위명운수비결’ 같은 책은 나도 들여다보기 겁나요. 풍수는 사람들이 풍토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땅에 대한 지혜인 동시에 사람에 대한 조화(調和)예요. 성공하려면 사무실을 생기궁에 둬야 하고 배우자가 바람나면 침실이 육살궁에 있는지 확인해봐야 하죠. 공부하기 좋은 방이 따로 있고, 같은 사무실에서도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의 아내는 경무관까지 지낸 그가 풍수 관련 사무실을 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게 마뜩잖은 눈치다. 그러나 그는 ‘경무관 이기만’에서 ‘풍수명리학자 이정암’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을 숙명으로 여기는 듯했다.

“나는 스승님이 말한 대로 때가 되어 경찰이 됐고 경찰서장이 됐으며 스스로 물러났어요. 경찰에서 일할 때 소문이 퍼져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에 입후보하려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괴롭힌 적도 있었죠. 그러나 천기를 누설한다는 것이 두려워 피하기 일쑤였어요. 지인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내가 아는 비술(秘術) 중 일부를 쓴 적은 있지만, 한 번도 직무를 망각한 적은 없어요. 공직을 떠난 지금 나는 학자입니다. 학문에 더욱 정진해 나와 뜻을 같이하는 후학들을 통해 내 학문의 맥이 계속 이어지질 바랄 뿐입니다.”

그는 삶을 바꾸는 수단으로서의 풍수를 길게 설명했다. 신이 하는 일을 빼앗고 하늘이 부여한 운명을 고칠 수 있을까. ‘탈신공개천명(奪神工改天命)’이라는 글귀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간동아 594호 (p54~55)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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