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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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맹모강남지교 계속된다

비강남권 출신 끊임없이 유입 … 전세 거주·신문배달도 불사, 자녀교육에 ‘올인’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7-07-11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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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맹모강남지교   계속된다

    거주자의 80% 이상이 전·월세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SBS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6월 말 방영을 시작하자마자 전국의 엄마들 사이에서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교육 현실의 적나라한 풍자다, 지역간 위화감을 조성한다, ‘강남’을 터무니없이 왜곡한다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극중 하희라나 정선경처럼 자녀교육을 위해 서울 강남으로 이사 온 ‘비(非)강남권’ 엄마가 무척 많다는 점이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대치동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서울 강북뿐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심지어 제주에서까지 강남유학을 온다고 전했다.

    부산·대구·제주에서도 유학

    “대치동 학원가와 가까운 아파트에 전세로 살면서 자녀들을 공부시킵니다. 애들이 대학에 들어간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상당수예요. 새로 강남유학 오는 사람이 그 집을 이어받는 식이죠.”

    비강남권 출신의 대한민국 맹모(孟母)들은 어떤 꿈과 희망을 안고 강남으로 모여들까. 이들의 강남 인생은 기대만큼 만족스러울까?



    “달리는 말에 올라탄 거랄까요? 예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가게 돼요. 고향에 살 땐 미국 유학은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은 유학생 엄마가 됐죠.(웃음)”

    2년 전 외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김모(여·43) 씨는 7년 전 경북 상주에서 대치동으로 이사 왔다. 기대한 대로 강남은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고 한다. 매달 300만원의 사교육비가 들어간 아들은 중학교 때 내신 3등급의 성적을 올렸고,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김씨는 “아들의 꿈은 미국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는 것”이라며 “여름방학 때마다 귀국해 대치동 학원에서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며 흡족해했다.

    김씨는 아들의 유학 비용으로 매달 400만원을 쓰고 있다. 이는 한국에 오고 가는 비용이나 월 500만원인 SAT 학원비는 제외한 금액이다. 김씨는 맞벌이하는 부부의 소득 중 3분의 2가 교육비로 지출되는 셈이라고 했다. 따로 저축은 못하지만 ‘강남 엄마들 하는 대로’ 집값의 절반을 대출받아 아파트를 사는 식으로 재테크한 덕분에 재산이 오히려 몇 배로 불어났다.

    “양재천에서 운동하다가 고향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했어요. 다들 저처럼 교육문제 때문에 대치동으로 이사한 거더라고요.”

    김씨가 강남유학을 결심한 것은 공교육 불신 때문이다. 자신 또한 중학교 교사였던 김씨는 “가르치려는 성의나 자기계발 노력`이 부족한 동료 교사들에게 아들을 맡길 것을 생각하니 싫었다”고 고백했다.

    역시 비강남 출신 엄마인 백모(38) 씨와 이모(46) 씨의 목표는 특목고다. 3월 전북 익산에서 서울 압구정동으로 옮겨온 백씨는 자녀 둘을 특목고에 진학시키려 한다. 직장 문제로 남편은 익산에 남았고 백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사는 친정어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주말에도 아이들이 공부하느라 바빠 백씨 혼자 남편을 보러 익산으로 내려간다. 백씨는 “남편이 소외되는 것 같아 좀 안됐지만, 아이들이 대학 들어갈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강남 못지않은 ‘교육특구’ 목동에서 강남으로 이사한 경우다. 대원외고 진학률이 높은 압구정동 소재 학원을 다니기에는 왕복 거리가 너무 멀어 아예 학원 근처로 이사했다.

    그래도  맹모강남지교   계속된다

    대치동 학원가 전경. 새로 강남에 진입한 엄마들은 “강남 밖에서는 대치동처럼 수준 높은 학원 선택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목고가 아니라도 강남으로 올 이유는 충분하다. 성동구 행당동에 살았던 박모(여·43) 씨는 중학생인 큰딸이 특목고에 갈 성적이 안 된다고 판단한 뒤 대치동으로 이사 왔다. 이왕 일반고에 진학할 거라면 성동보다는 강남의 면학 분위기가 훨씬 좋기 때문이다.

    양재천을 사이에 두고 타워팰리스와 마주보고 있는 개포 주공1단지는 ‘강남 서민’들의 보금자리다. 재건축 기대감으로 낡은 15평형 아파트 값이 10억원을 넘나들지만 그건 집주인들에게나 해당하는 얘기고, 1단지 주민의 80% 이상은 전세나 월세를 사는 사람들이다. 이곳 주민의 상당수도 자녀교육 때문에 강남으로 온 사람들이다. 단지 안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오모 씨에 따르면 새로 전·월세 들어오는 10집 중 3집은 자녀교육 때문에 강남유학을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전세금이 싸고 대치동 학원가까지 버스로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으며, 고등학교의 경우 대치동과 마찬가지로 휘문고 숙명여고 경기여고 등에 배정받을 수 있다.

    공교육 불신도 한 원인

    “방 두 칸짜리 15평형 전세금이 요즘 8000만~8500만원입니다. 애들한테 방 하나씩을 주고 부모는 거실을 쓰는 집도 있어요. 거실에 커튼을 쳐놓고 밤에는 안방으로 사용하는 거죠.”

    4년 전 개포1단지로 이사 온 김모(여·44) 씨 가족은 아직 내 집 마련을 못한 채 전세를 살고 있다. 김씨는 10년 전부터 독서·논술학원을 운영했지만 저축은 거의 하지 못했다. 매달 300여 만원이 남매의 학원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소수정예 수학 단과학원비만 월 50만원이에요. 강남 엄마들은 학원비나 과외비가 싸면 실력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강남 부자들이 올려놓은 학원비 때문에 저희 같은 서민들 허리가 더 휘는 셈이죠.”

    빌라촌이 형성된 대치4동이나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일원1동 또한 강남 서민들의 동네다. 이곳에도 강남유학 가정이 많다고 한다. 대치4동 주민 김모 씨는 “반지하에 사는 사람도 강북이나 경기도에 아파트 한 채씩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귀띔했다. 자녀교육을 위해 자가 소유 아파트는 전세 놓고 그 돈으로 이 동네에서 전세를 산다는 것이다. 4년 전 강남으로 입성한 일원1동 주부 최모(40) 씨는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새벽마다 신문배달을 한다. “아이가 중학교 올라가니까 학원비가 훨씬 비싸지더라고요. 그렇다고 안 보낼 수는 없고요. 신문배달 하는 엄마들 대부분이 저처럼 학원비에 보태기 위해서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되면 마음껏, 그렇지 않으면 가능한 여력을 다해 자녀교육에 나서는 것이 오늘날의 강남 엄마들이다. 압구정동 정보학원의 문원열 교육이사는 “엄마 없이 혼자 학원을 찾아오는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강남에선 엄마들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정통 강남 주민이든, 비강남 출신의 강남 거주자든 이들의 강남 예찬은 과연 올바른가. 아니면 그것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내 아이의 미래가 걸린’ 절체절명의 문제인가. 대치동 논술학원에서 1년 가까이 강사로 일한 명문대 출신 김모(30) 씨는 “학원강사들끼리 하는 말 중 대치동에 가장 많은 것이 학원과 성형외과, 정신과 학습클리닉, 그리고 은행의 유학이주센터지점이라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그만큼 지위와 돈에 대한 욕망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곳이다. 양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위선적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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