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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찾는 논술 비전|대중문화와 고급문화

낭만적 거짓 vs 소설적 진실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학부 교수·시인

낭만적 거짓 vs 소설적 진실

낭만적 거짓 vs 소설적 진실

2004 아테네올림픽 축구경기장에서 태극기 패션으로 응원하는 가수 이효리.

소설가 윤대녕은 최근 문단의 화두인 ‘재미’를 두고 그것 자체가 곧 창의성, 완성도, 발전 가능성이 아니라 단지 ‘독자가 좀 읽어주겠군’이라는 뜻에 좀더 가까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요즘 유행하는 ‘(고급)문학의 종언’에 대한 심경 고백으로, 독자에게 소설을 읽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독자 입맛에 맞는 ‘기획주문품’만을 생산하는 게 소설가의 임무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예술은 인간의 본질과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야 한다는, 즉 예술작품에는 신도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작가의 독특한 아우라(Aura·분위기)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문화상품의 표준화는 청중의 표준화를 낳는다. 문화산업은 어떤 사람을 다른 어떤 사람과 대체할 수 있는 부속물로 만든다. 아도르노는 ‘표준화는 청취자에게 자발성을 박탈하고 조건반사를 촉진한다’고 말했다. 대중문화와 그 청중이 모두 후기자본주의하에서는 급격한 의미의 상실을 겪는다는 것이다.” - ‘아도르노와 문화스터디’ 성균관대 2005년 정시

예술이 대중의 싸구려 감상이나 흥미 위주의 오락성, 시간 때우기 속성에 기대 상업성을 반복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아도르노나 아놀드 하우저 같은 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됐다. 특히 현대의 문화비평가들은 최루성 B급영화, 진부한 불륜드라마 같은 대중문화가 현대인의 불안을 몰아내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한다고 말한다.

문명의 발달로 현대인은 유례없이 많은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중문화라는 오락으로 시간을 때우는 탓에, 결국 현대인들은 바보상자인 텔레비전에 의해 신경이 무뎌지고 대중문화에 중독됨으로써 취향을 획일화할 뿐 아니라, 선정적이며 폭력적인 내용으로 마음이 들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비단 오늘날의 것만은 아니다.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에서 예리한 통찰력으로 저속한 통속소설이 주는 폐해를 고발한 바 있다.



“엠마 보바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소녀 시절에 탐독했던 시시한 읽을거리를 자주 읽지만, 더 이상 마음의 평온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는 기분을 전환하고 싶어서 그렇게 해보지만 더욱 악화될 뿐이다. 자신의 생활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취향의 획일화에 의한 정신적 공허감은 차치하더라도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대중문화는 고발되어야 한다.” - 버나드 로젠버그 ‘미국의 대중문화’, 숙명여대 2004년 정시

낭만적 거짓 vs 소설적 진실

TV 드라마 ‘가을동화’.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대중은 왜 드라마 ‘가을동화’처럼 주인공은 백혈병으로 죽는 비련의 여인이고,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나 ‘나쁜 여자’처럼 사랑은 삼각관계이며, 백마 탄 왕자와 신데렐라는 여전히 우상이고, ‘쿨’한 여자는 유부남을 사랑하며, 주인공은 꼭 죽거나 신분이 ‘90도’로 수직 상승하는 그 ‘빤한’ 공식의 대중문화에 그토록 빠져드는 것일까. 프랑스 문학평론가 르네 지라르가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말한 욕망의 삼각형이론은 우리 시대 대중의 욕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라르는 ‘돈키호테’(세르반테스), ‘적과 흑’(스탕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프루스트)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욕망을 ‘간접화한 욕망’이라고 했다. 예컨대 돈키호테는 이상적인 방랑의 기사를 욕망한다. 주체는 돈키호테이고 이상은 방랑의 기사 아마디스(전설의 기사)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아마디스를 모방(Imitation)할 뿐이다. 즉 돈키호테의 욕망은 아마디스라는 중개자에 의해 간접화되는 것이다.

물론 욕망은 언제나 자연발생적이며, 그 욕망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을 이어주는 간단한 직선을 하나 그리기만 하면 된다. 그 직선은 돈키호테의 욕망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 직선에는 주체와 대상 쪽으로 동시에 선을 긋고 있는 중개자가 존재한다. 공간적으로는 분명히 삼각형이다. ‘대상(이상적인 기사)-중개자(아마디스)-주체(돈키호테)’가 욕망의 삼각형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어느 기독교인이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예수를 모방하면 되고, 완벽한 남자를 만나고 싶다면 드라마 ‘겨울연가’ 속의 중개자 ‘욘사마’를 만나면 된다.

낭만적 거짓 vs 소설적 진실

영화 ‘돈키호테’(왼쪽). 영화 ‘보바리 부인’.

지라르는 현대인의 욕망 또한 삼각형 구조로 본다. 특히 시장경제체제에서 개인의 욕망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중개자에 의해 암시된 욕망이라는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극장이 없었던 19세기에 문화장르 패권자였던 소설, 특히 ‘보바리 부인’을 보자. 여주인공 엠마 보바리는 사교계의 여왕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중개자가 간접적으로 생성시킨 것이다. 그녀의 ‘사교계 여왕’ 욕망은 사춘기 시절에 읽었던 삼류소설과 잡지 등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의 생활에서 ‘암시받은(간접화한)’ 욕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착실한 의사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여유롭게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주부의 안정된 삶을 마다한 채 그녀는 낭만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미건조하고 따분한 일상에 진저리를 치던 보바리 부인은 낭만적인(?) 욕망의 중개자인 파리 사교계 여인들처럼 바람둥이 로돌프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자신이 욕망하는 중개자 아마디스를 모방하려 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지만, 보바리는 자기가 욕망하는 파리 사교계 여인들을 모방하는 사실을 감춘다. 말하자면 근대 이전에는 주체가 모방 대상을 밝혔지만, 요즘엔 주체가 타자를 모방하면서도 모방 대상을 밝히지 않은 채 모방 자체를 터부시함으로써 자기기만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바람을 피우고 싶지만 유교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돼 본능에 솔직하지 못하거나, 신분 상승 욕구를 날것으로 드러내는 것은 속물근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숨기는 위선에 빠져 있는 탓이다.

“보바리가 낭만적인 여주인공들을 모방하지 않았다면 로돌프를 멋진 왕자님으로 오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망’과 ‘질투’와 ‘무력한 증오’의 파리 사교계는 맘브리노의 투구와 마찬가지로 환상적이고, 마찬가지로 욕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서 모든 욕망은 추상적인 관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스탕달의 표현을 빌리면 ‘머리로 하는 욕망’인 것이다. 이게 바로 보바리슴(Bovarysme)이다.”-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물론 대중예술은 ‘낭만적 거짓’이기 때문에 ‘소설적 진실’을 주는 고급예술만 만들고 향유하자는 주장은 파쇼적이다. 그래서 어느 사회나 수용자 중심의 대중문화를 일정 정도 허락하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오락 차원에서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여가활동을 다양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진다. 또한 상업화에 대한 비판에도 예술은 날이 갈수록 ‘한류(韓流)처럼’ 경제적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막강 소프트 파워(soft power) 구실을 한다. 또 동질적 사회, 즉 전근대적 사회일수록 문화는 다양하지 않다. 이에 비해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일수록 여러 종류의 심미적 기준이 있게 마련이다. ‘문화 민주화’는 각자 자유롭게 스스로의 심미적 기준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말인즉슨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경계는 ‘있고도 없다’.

그래서 성웅(聖雄) 이순신이 영화 ‘천군’에서 한량이자 판타지의 주인공이 되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엄숙한 태극기가 처녀들의 치마로 섹시해지며, 테너 도밍고는 팝 가수 존 덴버와 함께 ‘퍼햅스 러브’ 음반을 발매해 음악계를 시끌벅적하게 하고, 이미자 패티김 조용필 박정현 김건모 등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보바리 부인’(플로베르, 민음사)

생각 & 토론거리



1. 예술작품의 음란성 여부를 둘러싸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입장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게 더 앞서는가? -서강대 2004년 정시

2. 통속성은 예술의 공공의 적인가?

3. 이순신 등을 유머러스하게 재가공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입장은? -가톨릭대 2005년 수시1

4. 예술작품이 상품이 되는 것은 합당한가? -프랑스 바칼로레아 1994년

5.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구분해 전자가 후자에 비해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한가?

6. 돈을 주고 예술작품을 살 때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7. 교양, 도덕, 문화사랑 등을 목적으로 예술을 후원하는 것은 정당한가?

8. 대중예술은 감상자를 수동적, 일차원적 인간으로 만드는가?

9. 크로스오버 현상이 문화 발전에 시사하는 바를 논술하시오. -성균관대 2005년 정시

10. 시의회에서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 대중예술 공연장을 지을 것인지, 오페라하우스 등 고급 예술공연장을 지을 것인지 격론이 벌어졌다.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서강대 2006년 수시2




주간동아 2007.06.26 591호 (p91~93)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학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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