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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에 약한 그대 이름은 남자

자신을 위한 사치 여성보다 쉽게 지갑 열어 … 전자기기·술에 이어 의류·구두 매출 급증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명품에 약한 그대 이름은 남자

명품에 약한 그대 이름은 남자

‘블렌딩족’을 겨냥한 최고가 담배.대표적인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리벳.싱글몰트 위스키의 성장세에 위기를 느끼고 있는 블렌딩 위스키의 반격. 발렌타인 헤리티지 디렉터가 한국의 오피니언리더를 대상으로 블렌딩의 ‘비밀’에 대한 강의를 했다(맨 왼쪽부터).

명품에 약한 그대 이름은 남자

‘A.테스토니’ 구두. 한국과 일본에선 악어, 타조, 상어, 이구아나 등 고가의 특피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

사치품, 우리나라에선 흔히 명품이라고 불리는 물건들은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들은 명품 열풍을 비난하는 한국의 남성 소비자들이 자신을 위한 사치에는 더 쉽게 지갑을 연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한 백화점의 퍼스널 쇼퍼는 “여성들은 세일과 사은품을 따져가며 쇼핑하지만, 남성들은 명품 앞에서 값을 묻지 않는다. 남성들이 명품이란 ‘이름’에 오히려 더 약하다”고 말한다.

남성들 사이에선 ‘머스트해브 아이템’으로 꼽히는 가죽 전문 브랜드 A.테스토니의 홍보담당자 윤희성 씨는 “올해 초부터 남성 명품시장이 눈에 띄게 확대됐다. 세계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 남성시장을 노리고 모두 입성한 상태다. 특히 한국은 선거 등 남성 이미지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시기에 명품 매출이 크게 늘어나는 편이어서, 대통령 선거 특수를 기대하는 중이다”라고 말한다.

대선 특수 기대 명품 브랜드 모두 한국에 진출

남성들의 사치품 소비 증가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선 전통적인 남성 기호품이나 전자, 생활용품이 프리미엄 마켓으로 바뀌고 있는 것. 즉 자동차나 오디오, 디지털카메라 등이 점점 더 패셔너블하고 하이테크화해져서 가격 경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술, 담배 브랜드들이 한국 남성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럭셔리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다.

지금 가장 볼 만한 싸움은 위스키계에서 벌어지는 ‘순수’와 ‘블렌딩’ 대결. 한국의 위스키 시장 규모는 아시아에서 일본과 1, 2위를 다툰다(세계 5위). 특정 증류소에서 제조, 숙성되어 다른 몰트/그레인 위스키와 혼합되지 않는 싱글몰트 위스키 붐이 일면서 2006년 매출이 22% 이상 늘어났다. 서울 신라호텔은 올해 4월 싱글몰트 전문 바 ‘더 라이브러리’를 오픈하고 90종의 몰트 위스키를 취급해 남성 명품족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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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몰트 전문 바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좌).럭셔리 워치로 남성들 사이에서 선호되는 롤렉스 오토매틱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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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을 위한 장신구’전에 모델과 디자이너로 나온 버시바우 미국 대사 부부.

‘싱글몰트 위스키의 정신적 지주’라는 별명을 가진 ‘글렌리벳’을 홍보하는 박선영 씨는 “술 마시는 방식이 자신의 스타일이란 생각이 정착함으로써 좋은 술을 제대로 즐기겠다는 남성들이 싱글몰트 붐을 주도한다”고 말한다. 고가 마케팅 전략과 ‘단일성’을 유달리 좋아하는 한국 남성들의 취향도 싱글몰트 붐에 한몫했음이 틀림없다. 술을 ‘섞는다’는 것을 ‘죄악’시한다는 싱글몰트 마니아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위기감을 느낀 블렌딩 위스키의 대표주자 발렌타인과 조니워커 본사에서는 한국에 블렌딩 마스터들을 파견해 ‘복잡미묘하게 섞는 블렌딩 비법이 진짜 명품을 만든다’며 홍보하고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 베스트셀러인 발렌타인은 최근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발렌타인 17·21·30년산을 테이스팅하는 행사를 마련했는데, 한국에선 위스키 판매를 최소 17년산 이상, 초고가 시장에 맞추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블렌딩=명품’이란 공식이 ‘블렌딩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자, 블렌딩을 강조한 향수 아르마니 ‘블랙 코드’, 키엘 ‘블렌드 No.1’ 등이 ‘CEO 남성의 향기’로 마케팅되고 있다. 담배회사 BAT는 담배마다 고유한 블렌드 넘버를 달아 던힐 ‘D-시리즈’를 내놓았다. 725·512·205 같은 넘버를 통해 개성 있는 블렌딩의 맛과 향을 제공한다는 프리미엄 제품으로, 가격은 최고가인 2800원으로 책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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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라면 비쌀수록 좋다는 확신을 가진 남성들이 최근 불타는 욕망으로 기웃거리고 있는 곳이 시계와 자전거 매장이다. 애비뉴엘 시계 바이어 박상옥 씨는 “롤렉스 오토매틱이 가장 인기지만 브레게, 바쉐론 콘스탄틴 같은 초고가 시계도 매출이 늘고 있다. 시계 구입가가 크게 높아져 1000만원대 제품이 럭셔리 워치에선 일반적이다”라고 말한다.

자전거의 경우, 제4회 서울자전거대회(12월8~10일)가 올해 처음 유료로 열리고, 강남에 잇따라 쇼룸이 오픈할 만큼 남성들의 관심이 높은 아이템이다. 현재 스페셜라이즈드, 트랙, 캐논데일 등 외국 브랜드가 럭셔리 마켓을 독점하면서 연평균 20%씩 성장하자, 국내 브랜드 삼천리자전거도 고가 라인 ‘첼로’를 런칭했다. 마운틴 바이크로 유명한 스페셜라이즈드를 수입, 판매하는 박승관 대표는 “자전거 등 탈것은 기계에 따라 성능에 큰 차이를 보이므로 남성들의 경쟁심이나 성취욕을 자극한다. 입문용으로 60, 70만원대를 타다가 곧 1800만원대까지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라고 말한다. 럭셔리 자전거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처럼 튜닝 비용 역시 만만찮다.

명품에 약한 그대 이름은 남자

젊고 스타일리시한 남성들에게 잘 어울리는 돌체앤가바나 스트라이프 슈트.

남성들의 사치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경향은 패션에서 나타난다. 올해 남성 패션지들이 잇따라 창간됐고 브룩스 브라더스 같은 ‘점잖은’ 브랜드가 들어왔는가 하면 돌체앤가바나, 비비안웨스트우드, 폴 스미스 같은 화려한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옴므(남성)’라인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12월1일 쇳대박물관에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남자들을 위한 장신구’전을 연 전용일 교수(국민대 금속공예과)는 “남성들이 자신이 어떻게 보이느냐를 생각하는 시대다.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박한 관심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한다. 이 전시는 공예가인 리사 버시바우 미국 대사 부인과 서상영, 한젬마 등 패션 및 미술 작가 78명이 참여하고 남성 관람객들로 성황을 이뤘다.

“넥타이 하나만이라도 사장님과 같은 것 구입”

명품에 약한 그대 이름은 남자

‘남자들을 위한 장신구’전에서 눈길을 끈 장제희의 다이아몬드 원석 커프링크스.

명품 마케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스타마케팅이다. 여성 명품시장에선 연예인이 절대적이지만, 남성 명품 마케팅에서 ‘따라하기’의 모델은 보스인 경우가 많다. 음식점에서 신발을 벗거나 양복을 걸 때 ‘높은 분’이 애용하는 브랜드를 알아두었다가 그것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보스나 상사가 선호하는 술이나 담배로 입맛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다(시바스 리갈, 발렌타인의 인기는 정확히 역대 대통령들의 취향에 의한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모 유명정치인이 ‘A.테스토니’ 구두를 애용한다는 사실이 정치지망생들 사이에 알려진 것을 계기로 이 브랜드의 매출이 급증한 일도 있었다. 에르메스 코리아 우현주 이사는 “한국에서는 남성복 매출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다. 슈트는 어려워도 넥타이 하나만이라도 회사 사장님과 같은 것을 구입하겠다는 샐러리맨들이 많다”고 말한다.

한식집에서 보스가 벗어놓은 명품 신발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매장에 가져오는 남성도 꽤 많다고 하니, 남성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땐 새 몰트 위스키나 어려운 구두 이름을 외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간동아 565호 (p56~57)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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