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5

2006.12.19

싱가포르·스웨덴 반값 아파트 어떻기에

토지 임대 반영구적, 장기 거주에 가치 유지 … 재산 증식보다는 ‘주택도 소모품’ 생각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6-12-13 14:4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싱가포르·스웨덴 반값 아파트 어떻기에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의 오랜 주민이었던 이상애(여·66) 씨는 최근 갈현동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26년 동안 살던 집이 은평 뉴타운 재개발지역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도 이씨는 매일마다 아직 헐리지 않은 옛 이웃의 집에 가서 막막한 마음에 눈물만 훔친다. 재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34평짜리 새 아파트의 분양권을 받게 되지만, 평당 1500만원에 달하는 분양가를 도무지 감당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7평 토지와 건물을 넘겨주면서 이씨가 받은 보상금은 1억6000만원. 세입자에게 전셋돈을 빼주고 이사비용을 쓰고 나니 수중에는 전세금으로 쓸 1억원만 남았다. 지난해 남편을 여의고 부모 잃은 손자 두 명을 키우고 있는 그에게는 별다른 수입이 없는 형편. 이씨는 “4억~5억원에 달하는 분양비를 무슨 수로 내고 입주하느냐”며 “반평생 살아온 멀쩡한 내 집을 내놓은 대가가 여생을 전세로 옮겨다녀야 하는 형벌이 될 줄은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출금 때문에 쪼들리는 일 없어”

    싱가포르의 파멜라 고(Pamela Koh·53) 씨는 두 명의 자녀를 둔 결혼 31년차 주부다. 파멜라 씨 가족은 1988년 싱가포르 동쪽 해안지역에 위치한 복층 아파트를 구입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구입 당시 가격은 12만7000싱가포르달러(약 7600만원). 파멜라 씨는 집값의 20%에 해당하는 2만5000싱가포르달러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정부로부터 연리 2.5%에 25년 상환 조건으로 빌렸다. ‘주간동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파멜라 씨는 “매달 납부금은 560싱가포르달러(약 36만원)”라고 밝혔다.

    이 납부금은 월급에서 일부를 떼내는 것이 아니라 파멜라 씨 부부의 중앙연금준비기금(CPF·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에서 매달 빠져나가고 있다. 파멜라 씨는 “우리 부부의 CPF 계좌에는 대출금을 갚아나갈 정도의 충분한 예금이 들어 있다”면서 “주택 구입 대출금 문제 때문에 생활비가 쪼들리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최근 한나라당이 ‘반값 아파트’ 법안(대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촉진을 위한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토지임대부 주택분양’이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고 주택만 국민에게 분양하는 이 정책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토지 비용을 덜어냄으로써 결국 ‘반값’만 지불하고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까.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정책이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는 싱가포르와 스웨덴의 사정을 살핌으로써 반값 아파트 현실화에 필요한 조건을 따져본다.

    싱가포르에서는 전체 국민의 86%가 공공주택에 산다. 공공주택이란 주택개발청(HDB)이 국가 소유의 땅에 주택을 지어 분양한 아파트. 파멜라 씨 가족이 사는 아파트 또한 HDB가 지은 공공주택이다. 공공주택을 구입할 때는 땅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민간주택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파멜라 씨가 밝힌 바에 따르면, 침실 4개가 딸린 전용면적 45평의 복층 아파트인 그의 주택은 현 시세가 42만 싱가포르달러(약 2억5000만원). 그러나 이와 비슷한 조건의 민간 아파트를 사려면 약 80만 싱가포르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즉, 파멜라 씨는 정부의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정책 덕분에 ‘반값 아파트’에 살고 있는 셈이다.

    싱가포르·스웨덴 반값 아파트 어떻기에

    재개발 공사 시작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린 가좌 뉴타운 지구의 풍경. 평당 1500만원의 고분양가로 인해 은평 뉴타운은 원주민 재정착률이 10%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주택 가격이 민간주택보다 저렴하게 형성되기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도 마찬가지다. 대한주택공사 산하 주택도시연구원에 따르면 스톡홀름은 1974년 현재 주거용지의 54%가 임대토지일 정도로 토지임대부 주택분양이 활성화된 도시다. 50년 전 스웨덴으로 이민을 간 교포 박부연(72) 씨는 “공공주택과 민간주택의 가격차는 약 2~3배”라고 말했다. 박씨 가족이 사는 34평짜리 민간 아파트는 230만 크로네(약 3억원)이지만, 비슷한 크기의 토지임대부 아파트는 100만 크로네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민간주택과의 가격차는 2~3배

    싱가포르와 스웨덴뿐 아니라 일본과 영국 등도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정책으로 좀더 싼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북부 외곽에 자리한 세계 최초의 정원도시 레치워스(Letchworth)는 땅값의 40~50%를 전세보증금 형식으로 받고 주택을 저렴한 값에 분양하고 있다. 일본은 1994년 민간 지주들이 조합을 결성해 토지를 임대해주는 ‘차지·차가(借地·借家)’법을 도입했다. 민간 지주들에게서 토지를 임대해 건물만 집주인이 소유하는 것이다. 보증금은 보통 땅값의 20~30% 수준이며, 토지 임대료는 매년 납부한다. 이런 주택은 일반 분양에 비해 가격이 62% 수준에 불과하다.

    해외 여러 나라가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정책을 성공리에 이끌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토지임대가 반영구적이라는 데 있다. 싱가포르와 영국은 99년, 스웨덴은 60년, 일본은 50년을 임대 기간으로 한다. 연장 또한 가능하다. 특히 스웨덴은 차지인(借地人)의 경우 언제든지 계약을 깨뜨릴 수 있지만, 임대료를 체불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사재판소의 결정 없이 임대 토지를 반환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파멜라 씨는 공공주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사하지 않고 오랫동안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의 한인교포 송요승 씨는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든, 임대토지 거주자든 스톡홀름 시민들 중 어느 누구도 쫓겨날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반값 아파트 실현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측에서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는 ‘주택 가치의 하락’이다. 즉, 감가상각 때문에 주택 가치가 매년 하락하므로 장기간 거주한 뒤 주택을 시장에 내놓을 경우 구입 당시의 값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정책연구실장은 “판교신도시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토지임대료까지 포함한 경우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가격은 일반 분양의 75% 수준”이라며 “건물의 가치는 매년 떨어지게 되므로 20년 후에는 맨손으로 나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건설된 지 30년이 넘은 공공주택에 살면서 부동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인교포 이모(51) 씨는 “대부분의 HDB 아파트는 ‘입지 가치’ 덕분에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라면서 “팔 때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이란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기적으로 입주자와 정부가 함께 비용을 부담해 외관 페인트를 다시 칠하거나 엘리베이터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등 업그레이드 사업으로 건물을 관리할 뿐 아니라, 재건축을 하게 될 경우 정부가 비슷한 조건의 대체 아파트를 제공하는 점도 싱가포르인들이 공공주택의 가치 하락을 걱정하지 않는 이유다. 이씨는 “재건축을 하면 정부가 토지 임대기간을 연장해주기 때문에 공공주택의 재건축 프리미엄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주택도시연구원 김진유 책임연구원은 “싱가포르 정부는 복지 차원에서 HDB 주택들에 대해 5년마다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이러한 관리체계를 도입해야 반값 아파트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 본부장도 “요즘 짓는 아파트는 100년 정도는 거뜬하기 때문에 주택 가치의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택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나 스웨덴의 공공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주택을 ‘재산’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정서와 크게 다른 점. 싱가포르 한인회의 김기봉 고문은 “이곳 젊은이들은 1500만~2000만원으로 공공주택을 구입해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나머지 주택 구입비용은 정부로부터 빌려 평생 조금씩 갚아나간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교민 이씨도 “이곳 집값은 크게 오르지 않기 때문에 재테크 수단이 안 된다”고 전했다. 스웨덴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교포 주강호(40) 씨 또한 “스웨덴 사람들에게 주택은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고가의 소모품일 뿐”이라며 “나이가 들면 살던 집을 처분해 양로원에 들어가 여생을 보내려고 생각하지,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굳이 집과 땅을 소유하려고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유지 확보 등 여러 선결 조건 필요

    반값 아파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선결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먼저 토지임대부 주택을 지을 수 있는 충분한 국·공유지를 마련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전체 국토의 90%가량을 국·공유지로 확보하고 있기에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정책을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었다. 스톡홀름 시 또한 20세기 초부터 ‘토지비축제도’를 도입해 주거용지로 쓰일 토지를 꾸준하게 매입해왔다. 이에 비해 주거용지로 활용할 수 있는 우리나라 국유지 중 도시용지 비율은 0.1%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러나 ‘반값 아파트’ 법안을 발의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재건축 용적률을 높이는 대신 민간 아파트조합의 대지 절반을 기부채납 받으면 반값 아파트 토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지임대료의 현실화도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다. 토지임대료가 비싸다면 ‘서민형 주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홍준표 의원은 34평형의 경우 매달 17만원의 임대료를 내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토지임대부 주택분양을 제안한 주택도시연구원은 토지임대료를 전세금 형식으로 지불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 연구원의 계산에 따르면 50평형 아파트의 토지 전세보증금은 송파 신도시의 경우 5억6000만원,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의 경우 9000만원(공시지가 기준)이다. 물론 토지보상비가 비싸지면 전세금도 오르게 된다. 전세보증금은 계약 해지 시 돌려받을 수 있다.

    낡은 건물들을 부수는 포클레인 소리가 요란한 은평구 진관내동에서 만난 주민들은 반값 아파트에 작은 희망을 나타냈다. 서울시 소유의 땅 한 귀퉁이에서 40년 동안 집을 짓고 살았다는 이연재(여·66) 씨는 “내가 바로 반값 아파트에서 반평생 넘게 살아온 셈”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매년 서울시에 200만원 가량의 토지 사용료를 내면서 지내왔다. 이씨는 “내 땅이 아니어도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며 “고분양가 아파트를 건설해 서민을 내쫓지 말고 반값 아파트로 서민 숨통을 틔워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민 주거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개시된 서울시의 뉴타운 사업은 오히려 원주민들을 내쫓고 있는 형국이다. 고분양가 탓으로 은평 뉴타운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10%도 안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상애 씨는 “비록 낡고 좁은 집이었지만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던 때가 행복했다”며 “몇 평짜리든 상관 없으니 정착할 집만 있다면 남의 집 설거지를 하며 먹고살 망정 걱정 없을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파멜라 씨는 이씨와는 상반되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우리 정부는 국민 모두가 자기 머리 위에 둘 지붕을 공급하는 일을 아주 잘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이 살 집에 대해 걱정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반값 아파트는 과연 이름값을 해낼 수 있을까. 아니면 또 하나의 장밋빛 공언(空言)으로 사그라지고 말까. 귀추가 주목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