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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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해 건강 도우미 자전거는 내 친구

출퇴근 시 이용자 및 동호회 급증 … 차 없는 날 행사 등 자전거 활성화 위해 ‘조용한 혁명’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12-06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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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공해 건강 도우미 자전거는 내 친구

    네덜란드의 자전거 연습도로. 이 나라의 어린이들은 자전거 신호 읽는 법, 안전운행법 등을 정규 교과과정을 통해 배운다.

    다리 너머로 동이 튼다. 찌익~ 찌익~. 안개 자욱한 중랑천의 침묵을 깬 것은 새들의 울음소리. 한 놈이 울음보를 터뜨리자 무리가 합창을 한다. 넓적부리, 쇠백로, 고방오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침을 연다.

    낮이 부쩍 짧아진 겨울 아침의 천변(川邊)을 우수연(32·서울 노원구 중계동) 씨가 자전거로 저어간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아가면 풍경이 몸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땅의 질감은 자전거를 타고 흘러 온몸으로 전해진다.

    우씨처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자전거 출퇴근족’은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자전거 시장도 현재 연간 200만 대 규모로 확대일로다. 바야흐로 ‘자전거 혁명’의 서곡이 울리는 것이다.

    160cm, 44kg. 우씨의 기름기 없는 탄탄한 몸은 8할이 자전거 덕분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여 “학교 가느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고. 자동차가 화석연료를 태워 공해를 만들 때, 자전거는 지방을 날려 ‘몸짱’을 만든다.

    “다이어트에 자전거 타기만한 운동이 없어요.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재미도 있죠.”(울산대 의대 진영수 교수)



    우씨가 자전거에 매료된 것은 수년 전 네덜란드의 델프트를 여행하면서부터다. 네덜란드는 자전거의 천국이다. 그중에서도 델프트의 자전거 정책은 공해와 교통체증을 동시에 해결한 성공사례로 꼽힌다.

    교통수송분담률 3%로 선진국과 큰 격차

    ‘자신의 삶이 지나치게 빠르다고 생각하면 페달을 밟자. 우리 아이들에게 숨쉴 공기를 주고 싶다면 페달을 밟자.’

    델프트가 시민들에게 자전거 이용을 권장하며 만든 구호다. 20년 넘게 이어진 시(市)의 노력 덕택에 자전거는 델프트 사람들에게 주머니 속 휴대전화 같은 존재가 됐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현재 이 도시 도로망의 30%를 넘는다.

    “그물 스타킹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는 델프트의 늘씬한 오피스걸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자전거가 녹색의 운하를 달리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죠.”(우수연 씨)

    좁은 도심에 넘쳐나는 자동차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델프트는 1979년부터 교통정책을 자전거 중심으로 바꾸어나갔다. 차량 증가에 따라 도로를 늘리던 기존 정책을 포기하고 자전거를 대안으로 선택한 것.

    델프트는 자전거 도로망을 확충하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감세 혜택을 주는 한편, 서울의 버스전용차선처럼 승용차가 불편하도록 도로 구조를 바꾸었다. 도심의 주차장 확충 계획안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이 도시의 학생 3분의 2가 자전거를 이용하는데, 도보로 통학하는 학생까지 고려하면 화석연료에 의지해 등하교하는 학생은 거의 없는 셈이다. 델프트의 자전거 교통수송분담률은 50%에 가깝다.

    네덜란드의 국토와 인구는 어림잡아 각각 한국의 3분의 1이다. 네덜란드와 한국처럼 인구가 조밀한 국가의 도시들은 환경과 교통문제를 안고 있는데, 델프트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법률 공포에도 불구 자전거도로 천대받아

    그렇다면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지난해 한국의 자전거 교통수송분담률은 3%로, 네덜란드(43%, 이하 2002년 기준), 독일(26%), 일본(25%), 덴마크(25%)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인구 대비 자전거보급률도 17%로, 70%가 넘는 자전거 선진국들과는 차이가 크다.

    한국도 자전거 활성화에 적지 않은 돈을 써왔다. 1998∼2002년에 걸쳐 이뤄진 ‘1차 자전거 활성화 사업’(4789억원 규모)을 통해 자전거 전용 및 겸용도로 4419km를 닦았다. 2007년 마무리되는 ‘2차 사업’(2003~2007년)의 예산도 5000억원에 이른다.

    인터넷 동호회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하 자출사)의 회원 김영호 씨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영등포구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한강변을 따라 페달을 밟으면 집에서 회사까지 40분가량 소요된다. 러시아워 때의 승용차는 물론이고 환승을 해야 하는 지하철보다 시간이 덜 걸리는 셈이다.

    “운이 좋았죠. 직장이 여의도에 있지 않았다면 자전거 출퇴근은 어려웠을 겁니다. 한강과 하천을 제외하면 서울의 자전거도로는 대부분 허투루 돈을 쓴 사례거든요. 페인트로 ‘자전거 표시’를 해놓았다고 자전거도로가 되는 건 아니죠.”(김영호 씨)

    한강의 자전거도로는 마라토너,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이 뒤섞여 위험하다. 주말엔 보행자가 많아 아찔하기까지 하다. 시내의 보도에 만들어진 자전거도로는 ‘자전거도로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유명무실하다. 1조원 가까운 돈을 쏟아 부었음에도 출퇴근은커녕 통학용으로 자전거를 이용하기에도 인프라가 열악하다.

    “한강과 지천변에 자전거도로를 잘 만들어놓았음에도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 보행자, 마라토너가 무질서하게 오가는 모습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는 ‘저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만큼 부주의한 사람들을 업무적으로 믿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당연히 갖게 될 것이다.”(명지대 영문과 데이비드 두보우 교수)

    무공해 건강 도우미 자전거는 내 친구


    무공해 건강 도우미 자전거는 내 친구

    박찬석 의원은 “자전거 타기는 나와 나라,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잠시 델프트로 돌아가보자. 델프트에는 거의 모든 간선도로에 자전거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자전거도로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자전거길(fietpad)’이라고 쓰인 자전거 표지판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 도로엔 자전거 이외의 교통수단은 들어갈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 공놀이하는 모습을 그려 넣은 ‘보네프 표지판’은 ‘차와 사람이 공존하는 도로’를 나타내는데, 이곳에서 차량은 시속 15~18km로 서행해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차량은 10km 미만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보네프 표지판이 있는 도로는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설계돼 있으며, 과속방지턱을 곳곳에 만들어 운전자가 과속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자동차 이용을 더욱 불편하게 만듦으로써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다. 델프트의 차량 억제책은 서유럽 한 도시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독일, 덴마크, 일본 등 자전거 선진국들은 델프트처럼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영국 BBC 조사 결과)인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다시 끌어안았다.

    1995년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음에도 자전거가 도로에서 계속 천대받자, 한국에선 라이더들이 자전거 활성화를 위해 ‘차 없는 날’ 행사를 개최하는 등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자출사 회원들은 동호회의 로고가 적힌 저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데, 7만여 명에 달하는 이들은 자전거 혁명의 예비군 격이다. 이 밖에도 자전거사랑연합회, 자전거21, 자전거타기운동연합, 천만인자전거, 한반도자전거에사랑을싣고 등 자전거 관련 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압박할 태세다.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단순히 탈것 정도로 인식하고 있어요. 보도 쪽 차도의 105m 가량을 자전거 전용으로 만들어야 해요.”(자전거21 오수보 상임대표)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11년 전 제정됐으나, 도로교통법 등 관련 법과 상호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아 도로에서 자전거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통행 방법에선 자동차보다 순위가 뒤지며, 보행자는 항상 먼저 보호해야 하므로 자전거는 이동수단 중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다.

    서울의 자전거도로는 상당수가 인도에 설치돼 있다. 반면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車)로 정의된다. 교통수단으로서 개념 정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자출사의 운영자 이원영 씨는 서울광장에서 “자전거도로가 인도에 설치돼 있어 사고의 위험이 상존한다”며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수상택시와 연계 땐 효과 더 높일 수도

    “일반인의 인식 부족으로 입법에 어려움이 많다. 일본의 차선 폭은 우리보다 좁은데, 일본처럼 차선 폭을 줄이면 도로에 1~1.5m 폭의 자전거도로를 만들 수 있다. 도로 중앙에 버스전용차선과 비슷한 형태로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드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또한 미니벨로(접이식 소형 자전거)를 이용한 지하철과의 연계도 활성화해야 한다.”(열린우리당 박찬석 의원)

    눈과 비가 오락가락한 11월30일 오후 여의도 윤중로에서 만난 박 의원은 자전거를 끌고 막 퇴근길에 오른 참이었다. ‘자전거 혁명 세력’의 구심점 구실을 하고 있는 그는 60대 후반의 나이에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국회까지 25km를 거의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그는 “자전거를 활성화하기 위해 내가 국회에 들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웃었다.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일본과 서유럽에선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이 됐습니다. 자전거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가장 경제적인 교통수단이면서 건강까지 관리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닙니다. 자전거 혁명은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박 의원의 장기적인 소망은 일본처럼 지방의 도시들을 연결해 자전거 관광도로를 만드는 것. 박 의원에 따르면 4000억원으로 자동차도로는 40~160km밖에 만들 수 없지만 자전거도로는 전국의 해안을 일주할 수 있는 4000km를 놓을 수 있다. 한국도로공사의 예산 중 일부만 돌려도 관광상품의 기능을 갖는 자전거도로망을 꾸릴 수 있다는 것.

    교통수단으로서의 자전거는 문화사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GNI) 2000달러에 도달하면 자취를 감추었다가 2만 달러 시대에 르네상스를 맞이한다고 한다.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경제 성장과도 무관치 않다. 과연 자전거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2007년 9월 한강에 서울의 주요 지점을 10분 안팎에 오가는 고속 수상택시가 등장할 예정이다. ‘하이서울 바이크’ 정류장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선착장에서 수상택시로 갈아탄 뒤 다시 자전거로 직장에 출근하는 시스템이다. 자전거와 대중교통, 수상택시의 조합은 대안으로서 자전거 타기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에도 자전거도로가 꾸려질 수 있을까? 미니벨로가 지하철에 넘쳐날 수 있을까? 자전거를 탄 외국인들이 덕수궁, 창덕궁 등으로 도심 관광에 나서는 모습과 서유럽의 도시들에서처럼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로 오가는 ‘퀵 서비스’는 또 어떤가.

    자전거 혁명가들의 복음서가 된 ‘아메리카 자전거여행’의 저자 홍은택 씨는 “자전거를 타면 몸이 점차 주인이 되고, 그 전에 내 주인이라고 생각하던 정신이 몸의 지시를 따라간다”고 말한다. 우수연 씨도 “몸은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원한다”고 단언한다. 몸의 가치와 삶의 질을 강조하는 ‘자전거 혁명군’의 주장에 당신은 동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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