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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는 私債를 알려주마!

영화·소설 통해 ‘남의 돈’ 무서움 경고 … 대부업체 평균금리 210% 평범한 삶도 한순간 파괴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피도 눈물도 없는 私債를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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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잔혹한 출근’(좌)에서 사채업자는 이전의 빚쟁이들과 전혀 다르게 그려진다.
다양한 채무자들이 등장하는 ‘사채꾼 우시지마’(우).

“남의 돈 함부로 만지거나 쓰지 마십시오. 큰~일 납니다.”

11월2일 개봉하는 영화 ‘잔혹한 출근’의 시사회에서 배우 김병옥이 관객들에게 한 인사말이다. 영화에서 그는 기업형 사채회사의 오너 주백통 역을 맡아 남의 돈의 ‘무서움’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영화 ‘잔혹한 출근’에서 주인공 동철(김수로 분)이 ‘생계형 아마추어 유괴범’으로 나서게 된 이유는 살인적인 고금리 사채 때문이다. 겉으론 양복 입은 멀쩡한 중산층 직장인이지만, 속은 시꺼멓게 탄 상태다. 이자 납기일이 돌아오면 동철은 ‘눈이 벌게’진다. 어떤 달엔 여동생의 자동차를 몰래 중고 자동차상에게 팔아넘기고, 그 다음 달엔 동창회에 나가 회비를 걷은 뒤 도망치기도 한다.

속이 타들어가는 멀쩡한 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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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의 말로를 냉혹하게 그린 소설 ‘라스트’.

이런저런 영화의 주인공들이 동철처럼 ‘돈’ 때문에 사고를 치는 일은 흔하다. ‘크게 한탕 해서 큰소리치며 살고 싶다’는 것이 ‘조폭’에 몸담는 주인공들의 명분이다. 빚쟁이들도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 속 빚쟁이들은 대개 빚 독촉을 하면서도 어딘지 정을 버리지 못한 ‘이웃집 영감’이거나, 과도한 폭력 장면에서 대사 한두 마디로 빚쟁이라는 사실을 암시할 뿐이었다. ‘비열한 거리’에서 주인공 병두(조인성 분)는 사채를 받으러 다니지만, 사채업자는 아니다.



그러나 ‘잔혹한 출근’에서 보이는 사채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마치 대기업 같은 대부업체의 로비와 기업 CEO 같은 대부업체 사장은 ‘양아치’들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매월 이자납기일 마감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나타나는 채무자들의 표정엔 공포가 서려 있다. 마감시간에서 1초만 지나면 채무자들은 고객이 아니라 생명보험을 들고 죽어도 하소연할 데 없는 노예가 된다.

영화에서만 가능한 과장이 아닐까? 통계를 보자. 2002년 대부업법이 시행된 이후 사채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금융감독원은 1995년 사채시장 규모 4조원에 업체 수 3000개이던 것이 10년 만인 올해 시장규모 39조~41조원, 업체 수 4만 개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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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사용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전엔 주로 금융채무 불이행자나 급전이 필요한 중소기업가들이 사채를 썼지만 최근엔 생활자금이 필요한 중년층, 학자금이 필요한 학생 등 정상 금융거래자들이 사채를 쓴다. 대부업체 평균금리는 210%이며, 하루 1~2%를 받는 곳도 있을 만큼 고율인 것으로 나타났다.

채무자들 대부분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추심업체 직원이 집으로 찾아오거나 아이들 학교 또는 부모를 찾아가 큰 소리로 ‘망신’을 주는 불법 추심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사채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탱하는 동시에 언제든 파괴할 수 있는 현실이 된 것이다.

실제로 ‘잔혹한 출근’의 김태윤 감독도 “대부업체를 자주 들락날락했다. 학자금은 물론이고, 생활자금을 꾸러 하도 많이 가서 익숙한 곳”이라고 말했다.

‘잔혹한 출근’은 한국 현실로서의 대부업체를 다룬 첫 번째 영화지만, 일본 소설과 만화에서는 대부업체 및 사채가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사채가 성실한 가장을, 주부를 어떻게 ‘마지막’으로 몰고 가는지 섬뜩할 정도로 냉정하게 보여준 소설이 바로 인기소설가 이시다 이라의 ‘라스트’다.

남자에게서는 어떤 증오심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받아야 할 돈을 받겠다는 분위기였다. … 마치 연기라도 하듯 무릎이 달달 떨렸다. … 남자는 파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중소기업 경영자 보험이란 걸 들었을 거야. 그리고 다른 생명보험도 들었어. 이제 슬슬 때가 된 것 같지 않나?”

주인공 슈지에게 남은 선택은 딸과 부인을 팔 것인가, 자신의 목숨으로 빚을 갚을 것인가뿐이다.

또 다른 소설 ‘아웃’(기리노 나쓰오)도 있다. 미국의 에드가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던 이 추리소설에서 대부업체와 사채는 단 한 번의 폭력 없이도 평범했던 주부들을 엽기적인 시체 청소업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일본 만화가 다루는 사채업자의 길은 훨씬 다채로워서 순정물에서 폭력물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가장 최근의 탁월한 사채 장르 만화로는 ‘사채꾼 우시지마’(마나베 쇼헤이)가 있다. 술,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는 성실한 대부업체 사장 우시지마를 중심으로 다양한 군상이 등장하는 ‘사채꾼 우시지마’는 경제대국 일본의 ‘음지’를 리얼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소설 ‘라스트’에 비견될 만하다. 매일 잔업에 시달리면서 연봉 300만 엔을 받는 샐러리맨, 명품에 빠진 젊은 여성,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낸 주부, 회사에 은행대출 기록이 남을까 걱정하는 중년 직장인, 화끈하게 젊음을 즐기고 싶은 청소년, 채무 상담을 받고 변호사에게 빚 독촉을 받은 사업가 등등. 이들은 매일 아침 우시지마에게 일수 이자를 내고, 하루치의 삶을 허락받는다.

또 다른 일본 만화 ‘돈이 없어’(도후루 구사카)는 신주쿠의 젊은 금융업자 가노가 빚 담보로 산 소년 아야세를 사랑하는 이야기로, 채권-채무 관계가 주종관계로 이어지는 ‘야오이’(남성 동성애)물이다. ‘18 어게인’은 내일모레 서른이 되는 호스티스가 거액의 사채 때문에 고민하다가 비참하게 죽은 뒤 18세 고등학생으로 환생하는 이야기다.

일본 만화와 소설에선 자주 등장

일본 만화와 소설에 사채업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일본에서 고율을 받는 대기업형 사채업이 법적으로 인정받아 활성화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라스트’는 사채라는 일본 사회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일본의 ‘사회파 소설’처럼 보이지만, 사채가 좋다 또는 나쁘다라는 작가의 판단 없이 냉혹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회파 소설’과 다르다. 최근 일본 젊은 작가들이 방화범, 도둑 등 반사회적 범죄를 다루면서 주관을 배제한 채 ‘캐릭터화’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엔 돈을 갚지 못하면, 채무자는 불법일지라도 채권자의 처분에 따라야 한다는 정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양억관, ‘라스트’ 등 일본 소설 전문번역가)

이에 비하면 대부업이나 사채를 본격적으로 다룬 한국 소설을 찾기란 어려운 편이다. 출판평론가 한미화 씨는 “백수나 소비의 달콤함 등을 그린 소설들이 있지만, 이것도 ‘현실적’인 접근은 아니다. 최근까지 한국 소설의 트렌드는 ‘역사’다. 한국 소설가들은 현실에서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고 말한다.

‘라스트’의 막막함은 바다 건너 일로 끝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라스트’와 ‘사채꾼 우시지마’를 낳은 일본계 사채 회사들이 우리나라에 다수 진출해 있고, 일본이 먼저 겪은 불경기는 놀랄 만큼 우리의 현재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판 ‘사채꾼 우시지마’라고 할 수 있는 김성모와 야맹장의 장편만화 ‘돈빨’의 부제는 ‘사채업 리얼스토리’. 작가는 “저축한 돈으로 산 주식이 휴지가 되고 담뱃값이 없어 길거리 꽁초를 주워 피우며 돈의 무서움을 느꼈다”라고 하면서 “6개월 동안 안양과 수원 등의 사채업자 사무실에 출근하며 만화를 기획했다. 신용사회가 얼마나 모순된 말이며 악용되기 쉬운지 보여주겠다”고 밝힌다. ‘돈빨’은 빚 때문에 가정이 파탄난 주인공이 사채업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는데 소액대출, 카드깡, ‘끌기’ 등 사채업자들의 불법 및 합법적 방식이 자세히 소개된다.

‘잔혹한 출근’에서 사채업자 주 사장은 채무자에게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 있다는 러시아 속담을 들어봤느냐”고 묻는다. 사채가 영화에서 조폭을 대신하고, 소설에서 ‘존재의 조건’을 대신할 날은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주간동아 2006.11.07 559호 (p54~55)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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