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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와이브로 동작 그만!”

“비용·성능 미검증” 軍 정보·작전 분야 난색 … 尹 국방 적극 추진에 실무자들 ‘속앓이’

  •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어설픈 와이브로 동작 그만!”

“어설픈 와이브로 동작 그만!”

기동훈련 중인 육군부대. 군은 이동이 많아 무선으로 통신체계를 구축해야 한다(큰 사진). 정통부 장관과 삼성전자 사장 시절 진대제 씨는 의욕적으로 와이브로 개발을 독려했다.

‘Wireless Broadband Internet’을 줄인 와이브로(WiBro). 우리말로는 무선(無線) 광대역 인터넷이다. 많은 국민이 사용하는 인터넷을 휴대전화처럼 선(線) 없이 즐기게 해주는 것이다. 단말기만 있으면 달리는 기차나 자동차 안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찾고 인터넷 게임을 할 수 있다.

이런 와이브로를 일반 국민에 앞서 군인들이 먼저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정작 수혜자인 군 쪽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특히 정보·작전 장교들은 ‘아니올시다’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그 좋다는 와이브로를 먼저 즐길 수 있게 됐는데, 군은 왜 반대하는 것일까?

방산업체 정책 반대 건의서 제출

먼저 첨단 정보기술의 상징이라는 와이브로가 군에 들어가려는 이유부터 살펴보자. 위의 문서는 와이브로 기술을 군에 넣는 데 반대하는 방산업체들이 방위사업청(방사청)에 보낸 건의서다. 네 개 업체의 대표들이 연명으로 작성한 이 건의서에는 “와이브로 원천기술을 군 무선통신체계인 TICN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정부와 기업체는 ‘갑(甲)’과 ‘을(乙)’의 관계에 있다. 비공식적인 자리라면 을(방산업체)은 자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갑인 정부(여기서는 방사청)를 상대로 갖가지 방법으로 로비한다. 그러나 공개적인 자리라면 갑이 갖고 있는 정책결정권이 두려워 반대 의견을 내놓지 못한다. 그런데 통념을 깨고 을이 모여 갑의 정책에 반대하는 건의서를 보냈다. 왜?



와이브로는 현재 일반인이 사용하는 휴대전화와 비슷한 체계로 움직인다. 휴대전화는 무선통신체계지만 그 밑에 거대한 유선망(網) 조직이 있다. 휴대전화망의 핵심은 기지국인데, 휴대전화는 항상 자기 위치를 기지국에 알려준다. 이에 따라 기지국은 자기 범위 내에 어떤 휴대전화 단말기가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반인이 휴대전화를 걸면 그 신호는 기지국에 접촉해 유선으로 전화국 교환기로 간다. 그러면 교환기에 연계된 컴퓨터는 전화를 건 사람이 통화하고자 하는 휴대전화와 연결돼 있는 기지국을 순식간에 알아내, 역시 유선으로 그 기지국까지 신호를 보내준다. 그리고 그 기지국이 통화하고자 하는 휴대전화 단말기에 신호를 쏴줌으로써 두 휴대전화 단말기가 연결된다.

“어설픈 와이브로 동작 그만!”

지하철에서 이용하는 와이브로. 그러나 와이브로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다.

기지국과 휴대전화 사이만 무선이고, 기간망은 유선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 휴대전화 통신망의 실체인 것이다. 와이브로도 이와 같아서 무선 인터넷망 뒤에는 강력한 유선 인터넷망이 있다. 그런데 와이브로 기지국의 통달 범위는 휴대전화 기지국 통달 거리보다 훨씬 짧다. 따라서 휴대전화보다 훨씬 많은 기지국을 세워야 자유롭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가 있다.

야전서 각종 충격 견딜 기술 필요

군대는 야지(野地)를 이동하며 훈련하고 작전한다. 특히 전시(戰時)에는 주둔지와 전혀 다른 곳에서 작전해야 하므로, 전투부대의 통신체계는 100% 무선으로 이뤄져야 한다. 휴대전화나 와이브로처럼 기지국과 교환기(전화국) 사이를 유선으로 연결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육군은 군사령부에서 연대급 사이 제대(梯隊)를 연결하는 무선통신체계로 ‘스파이더(Spider)’를 운용하고 있다. 1996년 육군은 이 체계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2000년부터 기초적인 연구에 들어가 올해 3월 TICN(Tactical Information Communication Network:전술통신체계 사업)이라고 이름 붙인 무선통신 개량사업 계획을 확정지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채 한 달도 안 된 3월21일 국방부가 돌연 이 사업의 순연을 발표했다. 그리고 국방부 내에 ‘국방 와이브로 연구단’을 만들었는데, 6월23일 이 연구단은 ‘TICN에 와이브로 기술을 접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국방부 장관에게 올렸다. 외형상으로는 국방부가 TICN에 와이브로를 접목할 수 있는지를 자체적으로 연구한 뒤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자, 이를 국방부 장관에게 건의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스파이더는 사람 목소리만 전달하는 무선체계지만, TICN은 목소리보다 훨씬 용량이 큰 데이터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기지국의 통달 거리는 TICN이 짧다. TICN을 채택하면 사단에서 스파이더 체계를 운용할 경우 필요한 기지국 수보다 두 배 정도 많은 기지국이 있어야 한다. 스파이더와 TICN의 기지국은 모두 차에 탑재돼 있다. 사단이 이동하면 차량 기지국도 함께 이동해 통신체계를 유지시킨다.

기지국 장비를 탑재한 차량은 고지(高地)에 올라가 작동하는데, 이러한 기지국 차량은 적이 가장 먼저 날려버리고 싶은 목표가 된다. 따라서 이 장비를 지키기 위해 별도 부대가 따라붙는다. 스파이더 체계를 TICN으로 교체하면 기지국이 증가하므로 이러한 부대도 두 배 정도 늘어나야 한다.

와이브로는 TICN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동영상은 물론이고 데이터링크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기지국 통달 거리는 스파이더의 20분의 1, TICN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와이브로 기지국의 출력을 올리면 좀 나아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기지국 차량과 이를 지키는 부대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체계를 30년 동안 운용할 경우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일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현재 개발된 와이브로 체계는 기지국과 교환기 사이를 유선으로 연결하지만, 군에서 사용할 와이브로 체계는 이것도 무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기지국과 교환기를 무선으로 연결하는 와이브로 체계는 지금부터 개발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얼마인지는 누구도 계산해본 적이 없다. 군 통신체계는 혹한과 혹서, 그리고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 겪게 될 각종 충격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어설픈 와이브로 동작 그만!”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의 영향을 받은 듯,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3월부터 와이브로 기술이 접목된 군 통신체계 개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한마디로 군용 와이브로 체계는 민간용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개발돼야 하는데 국방 와이브로 연구단은 이 부분에 대한 검토를 간과했다. 그리고 와이브로 개발을 독려해온 정보통신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사업에 와이브로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민간업체를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와이브로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업체는 방산업체가 아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방사청과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가 소란스러워졌다. 민간업체가 방산물자를 바로 개발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므로 이 일을 감독하고 추진해야 할 두 기관은 자신이 없어진 것. 민간업체가 개발에 실패하면 책임을 져야 하므로 두 기관은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가 반대 목소리가 특히 높은 두 기관의 관계자 5명을 주목하자, 국방부와 방사청 주변에는 “국방부가 와이브로 반대 ‘5적(敵)’을 꼽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5적으로 거론된 사람들의 이름이 나돌기 시작했다.

민간업체로 하여금 와이브로 기술이 접목된 TICN을 개발하게 하자는 것은 진대제 장관 시절 정보통신부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진 장관은 이른바 ‘황금박쥐’ 멤버의 일원으로 꼽혔던 노무현 정부의 실세 장관이었다. 그는 또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시절 와이브로 개발에 매진했던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상업 서비스에 들어간 와이브로는 성공적으로 시장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삐삐’에 이어 개발됐으나 휴대전화가 나오는 바람에 시장을 구축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시티폰’의 자취를 와이브로가 반복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와이브로를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이끌 성장동력으로 보고한 바 있는데, 불행히도 와이브로는 아직 이렇다 할 실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울며 겨자 먹으며 ‘폭탄 돌리기’

와이브로가 안고 있는 몇 가지 난점을 해결하려면 어디에선가 이를 구축하고 가동해봐야 하는데, 이러한 시험장이 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군 통신망이다. 군에서 집행되는 통신 예산을 활용해 와이브로를 가동해보고, 여기서 발견된 문제점을 개량해 군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도 쉽고 값싸게 사용할 수 있는 무선 인터넷을 만든다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유사시에 대비한 군이 그러한 시험장이 돼야 하느냐는 것이 방사청과 국과연, TICN 개발에 참여해온 방산업체, 그리고 합참이 반대하는 논거다. 이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기관은 거의 반대 목소리를 냈었다.

흥미로운 것은 외견상 국방 와이브로 연구단의 건의로 검토되기 시작했는데,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마치 자신이 이 아이디어를 낸 듯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6월21일 윤 장관은 이 사업 관련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방 와이브로 연구단 연구결과를 반영하지 않으려는 집단 이기주의는 안 된다”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

윤 장관의 의지가 강하자 방사청과 국과연 관계자 가운데 일부는 이를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동시에 각 부서별로 검토를 시키고 있다. 법무팀에는 민간업체에 방산물자 개발을 맡기는 것이 불법은 아닌지를 검토하게 하고, 기술팀에는 와이브로 체계를 접목한 TICN 개발에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올리게 했다.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폭탄 돌리기’에 들어간 것이다.

국방부는 과연 자체 판단으로 와이브로 기술을 TICN에 접목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일까. 국방부 소식통들은 ‘아니올시다’를 반복하고 있다.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의 의지가 정권 실세를 통해 국방부에 전해졌기에 국방부가 이를 추진하게 됐고, 결국 실무기관인 방사청과 국과연이 ‘울며 겨자 먹기’로 폭탄 돌리기를 하며 따라가고 있다는 분석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방사청과 국과연이 국방부를 따라가면 와이브로를 접목한 TICN 개발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TICN 원천기술 보유 업체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업체들은 방산물자 개발에 참여한 적이 없어 방산업체에 오히려 협조를 구하고 있다.

미군도 아직 와이브로 체계를 접목시킨 군 통신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신기술 개발은 중요하지만, 국가안보망을 신기술 개발의 시험장으로 활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주간동아 553호 (p10~12)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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