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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 약으로 고친다

주간동아·한국뇌학회 공동기획

  • 오세관 이화여대 의대 뇌신경과학교실 교수

마음의 병, 약으로 고친다

마음의 병, 약으로 고친다

인간의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복잡한 연결망을 이룸으로써 고도의 인지능력을 발휘한다. 여러 뇌 신경세포끼리 연결돼 특정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한 이미지.

‘마음의 병’은 ‘신경세포의 기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신경세포의 기능에 왜 문제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상세한 메커니즘은 많이 밝혀지지 않았다. 비교적 원인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간질과 파킨슨병,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 등이다. 간질은 뇌파를 조사하면 이상이 발견되고, 뇌 신경세포의 과잉흥분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킨슨병은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부족해 발병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한편 통합실조증이나 우울증, 불안장애 등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진행됨으로써 신경전달물질의 관여가 부분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결정적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분비 및 대사, 수용체의 변화 등에 의해 행동의 변화나 동작의 움직임이 조절되는데, 이러한 기능이 장애를 일으키면 병이 생긴다. 옛날에는 이 같은 분자생물학적인 변화에 대한 식견이 부족해 뇌 속에 마귀가 들어가서 정신질환을 유발한다고 믿고 악령을 쫓는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

원인이 불분명하면 치료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통합실조증이나 우울증에서도 각각의 증상에 따른 치료가 이뤄지고 있고, 비교적 양호한 치료 효과를 얻고 있다. 그리고 그 치료의 중심에는 ‘향정신약’이라는 약을 사용한 약물요법이 있다.

향정신약에는 수면약(최면 진정약), 항불안약, 항우울약, 신경안정약, 항정신병약, 정신 자극약(ADHD 치료약) 등이 있다. 여기에 항간질약이나 항파킨슨병약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뇌 기능 이상 증상에 사용되는 약물



향정신약은 신체의 병에 사용되는 약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그 하나는 감기에 감기약, 복통에 위장약처럼 단순한 처방 형태를 갖는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는 우울증에는 항우울약, 불안장애에 항불안약이 처방되지만, 우울증에 항불안약 또는 수면약이 처방되거나 불안장애에 항우울약이 처방되기도 한다. 뇌 속의 뉴런은 마치 전자제품의 회로도처럼 복잡하게 연결돼 있기도 하고, 과부하가 걸리면 차단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컨트롤 타워(두뇌)의 기능을 유지한다.

마음의 병, 약으로 고친다

SSRI 계열의 항우울제인 ‘세로자트’.

마음의 병에 걸리면 약을 많이 먹게 된다. 약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과다복용’이 된다는 편견이 생긴 것도 이러한 점에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병에 하나의 약제라는 방식이 항상 성립되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 환자는 대부분 불면이나 불안 증상을 동반한다. 그 때문에 각각의 증상에 대해 수면약이나 항불안약을 처방받는다. 우울증이 나으면 불면이나 불안 증세도 해소되지만, 완치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환자가 삶의 질을 유지하고,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해나가려면 이러한 치료를 거를 수 없다.

이밖에도 통합실조증에서 불안이나 불면을 동반하는 경우에는 항불안약이나 수면약이 처방되기도 한다. 동시에 우울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는 항우울약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울증의 경우 일반적으로 항우울약을 사용하지만, 증상에 따라서는 항간질약이나 항우울 작용이 있는 항정신병약 등도 빈번히 사용된다. ‘SSRI(선택적 세로토닌 저해약)’라는 항우울약은 불안장애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약의 이름은 ‘항우울약’이지만 공황장애나 강박증,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에도 사용된다. 게다가 수면약과 항불안약은 본래부터 같은 작용을 한다. 진정·최면 작용이 강한 것은 수면약으로, 항불안 작용이 강한 것은 항불안약으로 사용된다.

마음의 병, 약으로 고친다

항우울약인 ‘푸로작’은 우울증 외에 불안장애 등의 치료에도 쓰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환자 자신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약을 먹으려는 의사를 갖는 것이다. ‘먹으라고 해서 먹는다’는 기분으로 복약하는 한 ‘과다복용’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다만 의사가 말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복용할 것이 아니고, 개개 약물의 작용에 관심을 가지고 의문이 있으면 의사에게 물어볼 만큼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왜 이 약이 자신의 증상에 필요한지를 이해한 뒤 복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기 복용할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

마음의 병, 약으로 고친다

‘마음의 병’에 걸리면 여러 종류의 약을 함께 복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약의 종류가 많아질 것’이란 편견 이외에 ‘좀처럼 약을 끊기 힘들 것’이라는 편견도 있을 수 있다. 장기 복용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약효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향정신약 중에 항우울약, 항불안약, 항정신병약은 일정량을 1∼2주 동안 계속 복용하지 않으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릴 필요가 있다. 한편 수면약이나 항불안약은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즉효성이 있어서 당장 불면이나 불안·긴장을 풀 수 있다.

둘째, 환자와 약의 궁합 및 적정 복용량을 정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행착오가 불가피한 약이 있다. 예를 들면, 항우울약이나 항정신병약은 대부분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기 때문에 초기엔 소량을 복용하기 시작해 효과와 부작용의 상태를 비교하면서 조금씩 양을 늘리고, 환자에게 맞는 분량을 정해간다. 종종 약과의 궁합이 나빠서 너무 효과가 없거나 강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다른 약으로 바꾸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복용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셋째, 증상이 완화되어 약 복용을 중단할 때도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양을 줄여나가야 한다. 증상이 없다고 약 복용을 갑자기 중단하면 반동으로 이전보다 더 심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성질상 재발하기 쉬운 병도 많고, 예방적으로 소량을 유지해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의 체질이나 성격, 병의 종류나 증상의 경중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증상이 없어지고 나서 빨라도 수개월, 때로는 수년에 걸쳐 약 복용을 중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약을 서서히 줄여나가는 이유는 환자 스스로도 약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위한 ‘마음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병 있어도 풍요로운 인생 가능

‘마음의 병은 낫기 어렵다’ ‘일생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선입관이 적지 않다. 확실히 마음의 병 중에는 증상이 심해도 재발을 조절하기 쉬운 병이나, 증상이 가벼워도 완치가 어려운 병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마음의 병에만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을 생각해보자. 이 병들은 환자의 체질이나 생활환경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며, 약을 먹는다고 곧 낫는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 여러 해에 걸쳐 정기적으로 통원 치료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 아닐까?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어도 약으로 증상을 다스리면서 사회생활을 지장 없이 할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병의 완전한 치료에 연연해하지 않고, 그것과 공생하면서도 일상을 가능한 한 쾌적하고 활기차게 보내는 것을 지향하는 편이 훨씬 적극적인 생활방식이 아닐까? ‘치료’란 반드시 병을 없애는 것만이 아니다. 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풍요로운 인생을 보낼 수 있으면 그것도 환자에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마음의 병 치료는 그야말로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는가.



주간동아 551호 (p38~41)

오세관 이화여대 의대 뇌신경과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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