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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으로 배우는 논술

학문 하는 목적

학문 하는 목적

제시문 1)

[가]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히 착한 데 머무르는 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나] 멈출 때를 안 뒤에야 안정할 수 있고, 안정된 뒤에야 고요할 수 있으며, 고요한 뒤에야 편안할 수 있으며, 편안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으며, 생각한 뒤에야 터득할 수 있다.(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 安而後能慮 慮而後能得)

[다] 물건에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마침이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라] 예전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챙겼으며, 그 집안을 챙기려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닦았으며, 그 몸을 닦으려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였으며,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참되게 했으며, 그 뜻을 참되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앎을 극진히 했나니, 앎을 극진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 있다.(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마] 사물을 탐구한 뒤에야 앎에 이르고, 앎에 이른 뒤에야 뜻이 참되게 되고, 뜻이 참된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이 닦이고, 몸이 닦인 뒤에야 집안이 챙겨지고, 집안이 챙겨진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格物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平天下).

[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자신의 몸을 닦음으로써 근본을 삼는다.(自天子 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사] 그 근본이 어지러우면서(其本亂) 말단이 다스려지는 사람은(而末治者) 없으며(否矣), 그 두텁게 할 것을 얇게 하고(其所厚者薄) 그 얇게 할 것을 두텁게 할 사람은(而其所薄者厚) 있지 않을 것이다(未之有也).(其本亂 而末治者 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 ‘대학(大學)’

제시문 2)

[아] 동양의 학문의 이념은 예로부터 수기치인(修己治人)이었다. 그런 만큼 실천과 실용이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서양 학문은 사물 자체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이념으로 삼아왔다. 실천보다는 이론 쪽에 강조점이 놓여졌던 것이다. 오늘날 학문 체계는 거의 전적으로 후자에 의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 학문사에 있어서 학문을 최초로 체계화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그 이후로 웬만한 철학자들은 자기 철학의 정당화를 위해서든 인식 세계를 정돈하기 위해서든 자기 나름의 학문 체계와 학문 분류를 천명하곤 했다. 플라톤은 인간 영혼의 상태를 억측(臆測)1), 견해(見解), 계산 능력, 이성(理性)으로 구분하고, 거기에 대상 세계를 대응시켰다. 대상 세계는 크게 가시계(可視界)와 가지계(可知界)로 나뉜다. 그런데 인식(認識)은 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문은 계산 능력 이상의 차원에서 성립한다. 계산 능력에서 성립하는 학문은 수학(특히 기하학)이고, 이성 능력에서 성립하는 학문은 철학이다. 비록 수학이 연구 수단으로 감각적인 것을 사용하고 가정(假定)2)에 대한 무반성에서 출발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철학이 이성을 통해 가정의 궁극적 원리(아르케)3)를 전체적·반성적으로 검토하고, 선의 이데아4)를 밝힌다 하더라도 학문이 ‘불변(不變)의 것’을 탐구하는 지적 노력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플라톤의 학문론에서 주목되는 것은 첫째, 수학을 학문의 전범(典範)으로 삼고 있다는 것. 둘째, 학문이 불변의 것에 대한 탐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간단없는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성을 정점으로 하는 일원론적 학문 체계는 그 자체로 완전하기는 하지만 실용적 학문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차] 이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융통성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탐구 대상이 서로 다름에 따라 서로 다른 원리(아르케)를 가질 수 있고, 따라서 상호 독립적인 학문이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아르케 밑에 한 그룹의 탐구 대상이 있으면 거기에 하나의 학문 분야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상의 성격과 연구 목적에 따라 학문을 이론학, 실천학, 제작학으로 구분한다. 이론학(자연학, 수학, 형이상학)은 ‘지식 자체를 위한 지식’을 탐구하는 학문, 즉 이성의 자기만족을 위한 학문이고, 실천학(정치학, 윤리학, 경제학)은 인간의 행위에 관한 학문으로서 행복한 삶을 위한 지혜이다. 제작학은 제작을 위한 일정한 규칙, 즉 기술에 관한 학문이다. 실천학과 제작학이 가변성(행위, 재료의 변형)을 전제하기 때문에 그 인식이 개연적이고 특정 목적에 수단으로서 봉사하는 데 반해, 이론학은 ‘불변적인 것’에 대한 필연적 인식이다. 여기에서도 수학은 필연적 인식을 보증하는 학문의 전범(典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카]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론에서 얼른 눈에 띄는 것은 학문의 위계화이다. 이론학은 이성적 관조의 학문으로서 그 자체로 최고의 학문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 봉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족적이고 귀족적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동양의 사농공상(士農工商)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은 현대의 평등 이념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그에게서 시사받을 수 있는 것은 학문의 다양화이다.

- 소광희, ‘학문의 이념과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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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을 바탕으로 ‘대학’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드러나는 학문의 목적 및 그 실천 방법의 차이에 대해 4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2. 위의 제시문 1과 다음 의 학문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비교하여 설명하시오.(300자 내외)

주자는 육경을 연마하여 진위(眞僞)를 분별하였고, 사서를 밝히어 심오한 뜻을 개발하였다. 조정에 들어와 관각의 관원(官員)이 되어서는 위태한 말과 과격한 언론으로 죽고 삶도 돌보지 않고, 임금의 숨은 허물을 공격하며, 권세 있는 신하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였다. 천하의 대세를 이야기하고, 군사의 기밀도 거침없이 말하며, 원수를 갚고 부끄럼을 씻는 대의(大義)를 천추에 펴고자 하였다. 또 지방에 내려가 고을의 태수로 있을 때는 어진 규모와 자상한 법으로 백성들 살림살이를 구석구석 살펴서 부역을 고르게 하고, 흉년과 역병을 구제하였다. 그 큰 강령과 자잘한 조목은 한 지방 고을을 다스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데 쓰기에도 족하여 그 물러나고 머물러 있음이 정당하였다. 임금이 부르면 오고 내쫓으면 몸을 감추었으나, 임금을 사랑하고 정성스럽게 간직하여 감히 잊지 못하였다.

각 단락의 소주제문

[가] : 학문의 목적은 삼강령주에 있다.

[나] : 삼강령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 :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라] : 삼강령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팔조목주이다.

[마] : 팔조목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바]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몸을 닦는 것이 중요하다.

[사] : 근본적인 것과 중요한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아] : 서양 학문은 사물 자체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이념으로 삼아왔다.

[자] : 플라톤은 학문을 불변의 것에 대한 탐구로 보면서, 수학을 그 전범으로 삼는다.

[차] :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상과 목적에 따라 학문을 구분하지만 역시 이론학을 최고의 학문으로 본다.

[카] : 학문의 위계화는 평등의 이념에 어긋나지만 학문의 다양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 글에 대하여

‘대학’은 중국 고대의 최고 학부로 ‘소학’과 대비되는 학교의 명칭이다. 오늘날 서양의 최고 학부인 유니버시티(University)를 동양에서 대학(大學)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대학’은 결국 중국 고대 최고 학부인 대학의 교육 이념을 적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서(四書)를 주석(註釋)한 주희는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라는 삼강령(三綱領)과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라는 팔조목(八條目)을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綱要〕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삼강령·팔조목은 배움과 실천의 순서를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광희 교수의 글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서양의 전통적인 학문 이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제지간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학문(특히 철학)의 커다란 두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톤이 ‘불변적이고 영원한’ 이데아를 탐구하는 것이 진정한 학문의 길이라고 생각해 수학을 바탕으로 합리론적인 전통을 마련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상의 성격과 연구 목적에 따라 학문을 이론학, 실천학, 제작학으로 구분하면서 경험론적 전통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 관조의 학문(이론학)을 최고의 학문으로 강조함으로써 이론과 실천의 틈새를 벌려놓고 있다는 점에서 동양의 학문 이념과 확연히 다르다.

어휘풀이

1) 억측(臆測) : 사실에 의지하지 않고 제멋대로 짐작함, 또는 제멋대로 하는 짐작.

2) 가정(假定) : ① 논리를 진행시키기 위해 어떤 조건을 임시로 설정하는 일, 또는 그 조건 ② 수학이나 논리학에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정하여 내세우는 전제 조건.

3) 아르케(arche) : ‘시작’, ‘기원’의 뜻. 처음에 이오니아 학파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우주만유(宇宙萬有)가 생성되는 것의 ‘원초적 요소’라는 뜻으로 쓰임.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존재의 근거, 운동인(運動因), 논증의 원리(전제) 등의 새로운 뜻이 덧붙여짐.

4) 이데아(idea) : 보이는 것, 모습·형체 등의 뜻으로 철학에서 인간이 감각하는 개개 사물의 원형으로서 모든 존재와 그 인식과의 근거가 되는 것을 뜻함.

예시 답안

1. ‘대학’에서 학문의 목적은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히 착한 데 머무르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일의 선후 관계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닦는 일이 중요하며, 근본적인 것과 중요한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에 비해 서양 학문은 사물 자체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이념으로 삼아왔는데, 특히 플라톤은 학문을 불변의 것에 대한 탐구로 보면서 수학을 그 전범으로 삼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상과 목적에 따라 학문을 구분하지만 역시 이론학을 최고의 학문으로 보는데, 학문의 위계화는 평등의 이념에 어긋나지만 학문의 다양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즉 동양의 학문은 자기 수양에서 출발해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며, 서양의 학문은 불변하는 것에 대한 탐구로 학문의 위계화를 가져왔다.

2. 제시문 1에서 학문의 목적은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라는 삼강령(三綱領)에 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라는 팔조목(八條目)이 필요하다. 팔조목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에서는 학문은 자기 수양이나 사물의 이치 탐구에서 끝나지 않고, 백성에게 베풀어 백성을 유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학문의 목적은 단순한 자기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백성에게 베풀어 유익하게 활동함으로써 완성된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551호 (p8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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