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커버스토리|‘위태위태’ 내 아이 정신건강

어린이 4명 중 1명 “엄마, 마음이 아파요”

정서·행동장애 앓는 소아·청소년 많아… 급격한 사회 환경 변화로 정신건강 악영향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어린이 4명 중 1명 “엄마, 마음이 아파요”

어린이 4명 중 1명 “엄마, 마음이 아파요”
중학교 2학년 민정(가명)이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가을 자살을 시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민정이는 유독 아빠에 대한 공포심이 크다. 아빠는 손찌검을 하지는 않지만 민정이가 보는 앞에서 늘 엄마를 무시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2~3년 전부터 민정이는 아빠만 생각해도 진땀이 날 정도로 불안해하고 무서움에 떨었다. 결국 민정이는 올해 초부터 아빠와 떨어져 살기로 했다.

참을성 부족, 걸핏하면 화내고 짜증

초등학교 1학년 홍석(가명)이의 엄마는 홍석이가 요즘 부쩍 ‘죽는다’ ‘죽인다’는 말을 자주 해 걱정이다. “엄마, 내가 형들한테 맞아서 피 많이 흘리고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거인이 돼서 걔네들 다 밟아 죽여버릴 거야” “중학생 되면 공부 많이 해야 하니까 그전에 죽어버릴래”…. 홍석이가 최근 내뱉은 말들이다. 홍석이 엄마는 “반년 전부터 동네 형들과 PC방에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때문인가 싶어 걱정된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정호(가명)는 선택적 함구(緘口)증을 앓고 있다. 집에서는 엄마, 아빠, 동생과 이야기를 잘하지만 집 밖에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선생님이 말을 걸어도 배시시 웃기만 한다. 정호 엄마는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유치원에 다닐 때도 말을 안 해 ‘더 크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심리 상담을 받을 계획”이라고 했다.

어린이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올해 상반기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7700명의 초등학생 중 26%가 정서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부모와 교사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로 4명 중 1명이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쉽게 화를 내거나, 매사에 의욕이 없는 등의 이유로 부모나 교사의 걱정을 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시 소아청소년광역정신보건센터가 서울대병원과 함께 실시한 소아청소년 정신장애 유병률 조사 결과도 눈에 띈다. 서울시 초·중·고교생 2672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35.9%가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공포증이 15.57%로 가장 높았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13.25%), 적대적 반항장애(11.34%), 틱장애(3.89%)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두 가지 이상의 정신장애를 겪는 소아청소년도 13.2%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어린이 4명 중 1명 “엄마, 마음이 아파요”


어린이 4명 중 1명 “엄마, 마음이 아파요”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초등학생과(좌) 소아정신과의 놀이치료 모습(우).

“예전과 다른 어린이들 통솔하기 너무 힘들어”

최근 나온 이러한 연구조사 이전에는 소아청소년의 정신건강 전반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소아청소년들의 정신장애 유병률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객관적으로 따져보기란 어렵다. 전문가들은 이혼 등 가정해체의 증가,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 게임문화 확산 등 여러 사회 환경의 변화가 소아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은 과거보다 어린이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 거리낌 없이 소아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정신장애가 발견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양대병원 안동현 교수(소아정신과)는 “다른 나라들의 유병률 조사결과도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이 필요한 어린이는 25% 내외,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는 10% 내외로 나오기 때문에 특히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정신장애 유병률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들은 경험적으로 볼 때 요즘 어린이들이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30년 경력의 초등교사 구모(51) 씨는 한 학급당 학생 수가 지금보다 두 배에 가까웠던 10~20년 전이 오히려 학급을 통솔하기가 훨씬 수월했다고 한다. 구 씨는 “요즘 아이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의 눈치도 안 볼 뿐 아니라 선생님이 체벌을 못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고 말했다. “참을성 없고 충동적이며 공격적인 아이들도 눈에 띄게 늘었어요. 다른 친구가 수돗가에서 손을 씻다가 자기에게 물을 튀기면 아무리 실수라고 사과를 한다고 해도 그 친구를 반드시 때려야 한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어요. 그래야만 화가 풀린다면서요.”

초등교사 이모(53) 씨는 “자기 아이가 꿀밤 한 대 맞았다는 이유로 밤늦은 시간에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노발대발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학교에서 고분고분하게 지낼 리 만무하지 않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중국에서 중학교 교사를 했던 조선족 입주가정부가 주인집 아이 준비물을 가져다주러 학교에 온 적이 있습니다. ‘이 학교 아이들은 어쩜 이렇게 말을 안 듣느냐’며 저 보고 ‘참 불쌍하다’고 하더군요.”

김모(32) 교사는 교실에 ‘화장실 목걸이’를 하나 만들었다.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 목걸이를 목에 걸고 나갔다 와야 하는 규칙이다. 이는 수업 도중 몇 명이 화장실에 몰려가 떠들거나 간식을 먹는 일이 부지기수라 어쩔 수 없이 만든 고육지책. 김 교사는 “다른 친구가 방금 했던 질문을 똑같이 반복하는 일은 다반사”라고도 했다. 남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궁금한 점을 좀 참았다가 나중에 해결하는 걸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부모나 교사 소아우울증 알아차리기 쉽지 않아

최근에는 이른바 ADHD 판정을 받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과거에는 아이가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을 잘하지 못하면 ‘본래 성격이 그렇다’고만 여겼지만, 최근 들어 전문적인 검사를 통해 ADHD로 판정받고 있는 것이다. 소아청소년광역정신보건센터의 유병률 조사에서 두 가지 이상의 정신장애를 보이는 소아청소년 중에는 ADHD와 적대적 반항장애를 함께 가진 아이들이 38명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대병원 이철순 전문의(소아정신과)는 “산만하고 부주의한 특성 때문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교사에게 혼이 나면서 불만이 쌓이다가 적대적 반항장애까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안동현 교수는 서울 성동구 정신보건센터와 함께 2002년부터 해마다 성동구 지역에 사는 2~4학년 초등학생 300여 명을 선발해 정신건강 검진을 하고 있다. 매해 ADHD 유병률이 4%로 나타나는데, ADHD만큼 빈번하게 반항·품행장애도 4%가량 나타나고 있다. 안 교수는 “ADHD가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정신적 장애라면 반항·품행장애는 환경적인 요인, 특히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태도 때문에 발생하는 장애”라고 말했다. 즉 부모가 자녀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떠받들며’ 키울 때, 혹은 부모가 행실이 부도덕할 때 반항장애에 빠지기 쉬우며 품행장애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에 사는 상원(가명)이는 부모의 방임으로 품행장애까지 앓게 된 경우다. 부모가 이혼해 아빠와 둘이 사는 초등학교 6학년인 상원이는 도벽이 심하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부터 친구들의 물건을 하나 둘 훔치는 것이 버릇이 되어 학교 앞 문방구에서 학용품을 훔치다 붙잡혀 파출소에 넘겨진 적도 벌써 여러 번이다. 상원이를 상담하고 있는 부산의 한 복지기관 관계자는 “상원이는 욕심 때문에 물건을 훔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훔친 물건을 그냥 친구들에게 나눠줘요. 원인은 상원이 아버지의 양육 태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상원이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내버려두거든요.”

양육 환경에 문제가 있는 남자 어린이들이 반항·품행장애 등 행동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면, 여자 어린이들은 우울·불안장애 등 정서 문제가 나타나기 쉽다. 그러나 문제는 부모나 교사들이 소아우울증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는 점. 어린이들은 성인과 달리 우울감을 호소하기보다는 쉽게 불안해하거나, 행동이 과격해지거나, 신체적인 아픔을 호소하곤 한다. 실제로 소아청소년광역정신보건센터에서 실시한 유병률 조사를 보면 부모와의 면접조사에서는 어린이 우울증상의 비율이 0.86%에 불과했지만, 어린이 직접 조사에서는 7.37%로 나타나 큰 차이를 보였다.

초등학교 5학년인 재현(가명)이는 인터넷 게임 ‘메이플스토리’에 빠져 벌써 여러 번 가출까지 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PC방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인계된 것도 여러 번이다. 재현이의 부모는 맞벌이를 하고 있다. 외동아들인 재현이는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도 없고, 할 일도 없어서 2학년 때부터 PC방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재현이 엄마는 “늘 밝고 명랑하던 아이인데, 게임에 빠진 뒤부터 쉽게 싫증을 내고 짜증이 늘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재현이처럼 인터넷 게임중독을 호소하는 초등학생들이 늘고 있다. 병원에서 ‘중독 판정’을 받지 않더라도 인터넷 과다 이용은 부모들의 큰 걱정거리. 보건복지부 앞의 조사에서 7700명의 부모와 교사 중 26%가 ‘자녀(혹은 학생)의 인터넷 사용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다.

게임중독 정신장애와 밀접한 연관성

이미 인터넷 게임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가장 비중이 큰 놀이문화로 자리잡았다. 초등학교 3학년 박모 양은 “보통 학원 끝나고 집에 오는 저녁 7~8시에 친구들과 인터넷에서 만나 밤 9~10시까지 함께 게임을 해요. 어떤 남자아이들은 부모님 몰래 밤새 게임하고 학교에 오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은 ‘심심해서’ 인터넷 게임에 빠지고,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터넷 게임을 즐긴다. 사는기쁨신경정신과 김현수 원장은 저서 ‘아이들이 인터넷게임 때문에 너무 아파요’에서 “인터넷 중독 문제로 찾아오는 아이들 가운데 맞벌이 가정의 외동아들, 혹은 남매 중 아들이 전체의 70%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이 같은 게임중독이 정신장애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서울대병원 김붕년 교수가 2005년 9월부터 12월까지 게임중독으로 병원을 찾은 30명의 청소년을 분석한 결과 30명 전원에게서 게임중독과 동반된 정서·행동 문제가 발견됐다. ADHD가 18명, 우울증이 14명, 반항·품행장애가 4명 등이었다. 김 교수는 “ADHD를 가진 아이들은 좀더 쉽게 인터넷 게임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호기심이 많고 즉각적인 반응을 선호하는 ADHD 아동의 특성상 인터넷 게임에 쉽게 빠진다는 것. 또 일상생활에서 부모와 교사에게 혼이 나는 등 좌절의 상처가 많아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인터넷 게임을 통해 심리적 보상을 얻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반항·품행장애는 게임중독으로 인해 생기는 행동장애로 보이며, 우울증은 게임중독과 선후 관계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어린이 정신건강 관련 용어

특정공포증

동물, 어둠, 비, 피 등 특정 대상을 두려워하며 피하는 증상. 보통 유아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나타나며 특별한 치료 없이도 나이가 들면 사라진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은 비교적 위험도가 낮은 질환으로 보고 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또래보다 더 빈번하고, 심하고, 지속적으로 부주의하고 충동적이며 과잉행동을 나타낸다. 지속적인 주의집중이 힘들어 학습에 어려움을 느끼며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산만해진다. 사회생활에서 규칙 지키기, 대화 집중을 어려워한다.

반항장애

거부적·적대적·반항적 행동양상이 최소 6개월 이상 지속되고, 그러한 행동이 사회생활과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쉽게 화를 내고 자기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어른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다. 일부러 다른 사람을 화나게 만들고 앙갚음하려고 한다.

품행장애

반항장애가 더욱 발전된 형태. 거짓말과 도벽 등을 자주 하며 쉽게 싸움을 벌인다. 무단 결석, 가출, 본드 흡입 등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행동들을 실행한다.

불안장애

분리불안장애, 사회공포증, 특정공포증, 강박증 등으로 나뉜다. 분리불안장애는 주요 애착대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과도한 공포를 느끼며, 사회공포증은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 또는 학교생활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나타난다.

우울장애

슬프고 무력하며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는 상태. 초조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이거나 과격하게 행동하는 양상으로도 나타난다. 신체적인 아픔을 호소하기도 한다.

틱장애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내거나 근육의 움직임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반복해 눈을 깜빡거리고, 어깨를 들썩이고, 머리를 흔들기도 한다.
어린이 4명 중 1명 “엄마, 마음이 아파요”

국내 한 종합병원의 소아정신과 진료실 모습.





주간동아 551호 (p20~23)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306

제 1306호

2021.09.10

시어머니도 엄지척! 여수 삼합·해운대 대구탕·강릉 짬뽕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