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4

2006.07.18

탕으로 제격인 삼숙이를 회로 쳐?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07-14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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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으로 제격인 삼숙이를 회로 쳐?

    삼숙이와 삼숙이회

    10여 년간 농어촌을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은 농어민이 그들 손으로 생산을 해도 최상품은 그들 몫이 아니라는 점이다. 돈을 벌어야 하니 좋은 상품은 내다 팔고 질 떨어지는 하품만 먹게 되는 것이 농어민의 현실이다.

    어촌의 경우 도시 시장에서 볼 수 없는 생선들이 빨랫줄에, 채반에, 담벼락에 널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도미, 조기, 명태, 대구 같은 생선은 내다 팔고 이름 모를 이상한 생선들이 밥상에 올랐던 것이다. 최근 도시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물메기(물곰)가 그 대표적인 생선으로, 도시 사람들은 요즘에야 먹게 되었지만 예전엔 어부들만 먹었다.

    이런 생선 중 요즘 눈에 자주 띄는 것이 ‘삼숙이’다. 지역에 따라 삼숙어 또는 삼식이라고도 하는데 표준어는 뭔지 모르겠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아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머리가 크고 가시와 지느러미가 길게 나 있으며 피부는 꺼칠꺼칠 끈적끈적해 보인다. 징그럽게 생겨 이걸 어떻게 먹나 싶기도 하다.

    찬물에 헹군 맹탕의 맛 ... 물회로는 괜찮을 듯

    내가 삼숙이를 처음 먹었던 것은 8년 전쯤이다. 전북 부안 변산반도에 출장을 갔다가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초저녁부터 마신 술로 속이 엉망이라 해장국이 먹고 싶었다. 변변한 식당조차 없는 변두리 어촌이어서 여관 주인 아주머니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해장국을 얻어먹었는데 그게 삼숙이탕이었다. 삭힌 홍어에서 나는 암모니아 향이 가볍게 나면서 시원한 국물 맛이 속풀이에 딱이었다. 이튿날 아침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삼숙이라는 생선을 말린 뒤 끓여낸 탕이라고 했다. 그때 삼숙이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 다음 해였을 것이다. 동해안 어느 어시장에서 삼숙이를 대면하게 되었다. 시커먼 것이 엄청 못생겨, 변산반도에서 먹었던 그때 그 시원한 생선인지 의심이 갔다. 그 동네에서는 삼숙어라고 불렀다. 그러다 얼마 후 강화도에서도 이 생선을 다시 발견했다. 여기서는 삼식이라고 했다. 경남지방에서도 이 못생긴 생선을 만났는데 역시 삼식이라고 했다. 한국 어느 바다에서나 잡히고 예전부터 어부들이 흔히 먹던 생선이었던 것이다. 표준어가 뭔지는 몰라도 내가 이 생선을 처음 맛보았을 때 들은 이름이 삼숙이니 그냥 삼숙이라고 부르고 있다.

    어촌 사람들은 삼숙이를 탕으로 먹을 때가 가장 낫다고 말한다. 말린 것은 암모니아 발효가 일어나 홍어탕 비슷한 맛이 나며, 생삼숙이는 가볍고 개운한 국물맛을 낸다. 내 입에는 양쪽 다 해장 음식으로 참 좋았다.

    그런데 이 삼숙이가 최근에는 회로도 팔리고 있다. 나는 사실 탕에 들어간 생선 맛으로 처음 맛봤기 때문에 회로 먹으면 별 맛이 없을 것 같아 처음에는 회를 아예 먹지 않았다. 그런데 삼숙이회를 파는 식당이 점차 늘어나 혹시나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 딱 한번 맛을 보았다. 내 예측이 맞았다. 맛이 어떠냐 하면 ‘찬물에 헹군 광어 맛’ 정도! 쉽게 말해 맹탕이었다.

    또 어느 식당에서는 물메기도 회로 쳐서 팔고 있다. 이도 삼숙이회 맛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삼숙이나 물메기나 굳이 회로 먹는다면 새콤달콤 시원하게 물회로 말아먹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선회를 엄청 좋아한다. 생선이 싱싱하기만 하면 가리지 않고 회를 쳐서 먹으려고 덤빈다. 그러나 날로 먹어야 맛있는 생선이 있고, 구이나 탕으로 해야 제 맛이 나는 생선이 있는 법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물메기처럼 삼숙이도 도회지 식당에서 큰 인기를 끌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워낙 호기심이 강해 새로운 뭔가가 나타났다 싶으면 줄을 서서 먹으려고 드니 말이다. 그러나 삼숙이가 인기를 유지하려면 회로 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맹탕의 맛을 누가 지속적으로 찾겠는가. 사실 꾸덕하게 말린 삼숙이로 탕을 끓이는 것이 가장 맛있는데, 대부분 생으로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이름만큼 못난, 한때 어촌에서조차 홀대받았던 삼숙이가 상경해서 출세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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