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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가다|마지막 회

박물관 유물조차 ‘가짜’ 냄새 물씬

19세기 말 고문서 위조사건의 발생지 ‘허톈’ … 백옥강 주변에선 짝퉁 玉 장사꾼 활개

  • 글·문건영 변호사 사진·서해성 작가

박물관 유물조차 ‘가짜’ 냄새 물씬

박물관 유물조차 ‘가짜’ 냄새 물씬

흑옥 강변에서 옥(玉)을 캐는 주민들.

19세기 말, 쿠처 부근의 탑 안에서 원주민들이 다량의 문서를 발견했다. 베일에 가려졌던 이 문서의 내용은 독일계 영국인 훼른레 박사에 의해 비밀이 풀렸다. 그 가운데에는 5세기경 인도의 승려가 쓴 것으로 추측되는 현존 최고(最古)의 문서도 있었다. 이 문서들의 출판은 중국령 중앙아시아에 대한 근대 고고학 탐사활동을 촉발했다.

허톈에서는 이슬람 아훈이라는 원주민 유물 수색자가 허톈 주변의 모래에 파묻혀 있는 유적에서 출토한 다량의 고문서들을 공급해주었다. 그가 발견한 유물들은 1895년에서 1898년 사이에 런던, 파리,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의 주요 공공 컬렉션으로 흘러 들어갔다. 학자들은 ‘미지의 문자’ 앞에서 쩔쩔맸다. 이 보물들은 유럽의 주요 박물관에 소장됐다.

그러나 거기에는 ‘거대한’ 비밀이 있었다. 오렐 스타인이 그 의혹을 풀었다. 스타인은 이슬람 아훈을 심문해 그가 고문서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고 있었음을 밝혀냈다.

이슬람 아훈은 초기에는 진본 필사본의 초서체 브라흐미 문자를 본떴다. 그러나 유럽인 가운데 누구도 그 문자를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는 아예 문자를 만들었다. 수요가 점점 많아지자 그는 생산기술을 발전시켜 목판인쇄를 시작했다. 종이를 누렇게 착색해서 손이나 목판인쇄로 글자를 새겨넣은 다음 연기에 그을려 고서의 색조가 나도록 했다. 그리고 카쉬가르로 팔러 가기 전에 최종적으로 모래를 입히면 감쪽같이 고문서로 둔갑했다.

스타인은 “언젠가 대영박물관 수집품에 있는 텍스트들을 동양학 학자들이 분석해본 결과,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한 다스 이상이 날조된 서체였음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선명한 색의 동전 지갑이 漢代의 생활용품?

우리가 방문한 도시는 바로 이슬람 아훈이 살았던 곳, 허톈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허톈 박물관. 그곳에서 니야 유적에서 발견됐다는 휴대전화 주머니 모양의 동전 지갑을 보았는데,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색이 선명했다.

박물관 유물조차 ‘가짜’ 냄새 물씬

흑옥 강변에서 할아버지가 팔던 옥.

해설하는 안내 직원에게 “어느 시대 유물이냐”고 물으니 “한(漢)대의 생활용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강압적이면서 다변인 그 아주머니의 해설은 허술했다. 전시물 밑에 붙여놓은 영문 표기 중에도 틀린 부분이 많았다. 일행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필자도 동전 지갑이 한대의 유물이 맞는지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는 스타인처럼 진품과 위조품을 구별해낼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의혹이 생겨도 풀 길이 없었다. 꽤 많은 유물을 보았지만, 그것이 허상인지 실상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이유는 순전히 안내 직원의 불성실한 태도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옥을 찾으러 간 백옥강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허톈의 국명은 고대 인도어 계통의 ‘고스타나(Gostana)’였다. ‘대지의 유방’이라는 뜻이다.

젖줄처럼 허톈을 사이에 두고 흑옥강(黑玉江)과 백옥강(白玉江)이 흐른다. 옥이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에서는 요즘도 전 재산을 털어 포클레인을 장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강바닥을 파헤치며 옥을 찾는 사람들이다. 사회문제로 비화될 정도라니 ‘허톈식 로또’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꿈에 부푼 일행도 옥을 찾기 위해 강으로 몰려갔다. 겨울 강은 마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강바닥에는 예쁜 돌들이 많았다. 하얀색, 녹색의 동글동글한 돌들이 모두 옥처럼 반짝였다.

박물관 유물조차 ‘가짜’ 냄새 물씬

요트칸 유적지가 있는 엘라메라 주민들이 나귀를 앞세워 밭을 갈고 있다(위 사진). 허톈 인근의 시골 풍경.

하지만 아마추어 눈으로 ‘옥과 석’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았다. 예쁜 돌들을 막상 손에 놓고 봐도 그게 옥인지 돌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일행 중 옥에 대해 아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옥을 파는 할아버지가 우리 옆으로 다가왔다. 외면하던 일행이 차에 오르려고 하자 가격을 10분의 1로 내렸다. 싼값에 옥을 사려는 일행이 있었다. 그러자 다른 일행이 옥을 캐는 주민에게 들은 말을 전하며 주의를 줬다.

“그 할아버지 옥은 전부 가짜래.”

그 다음으로 찾은 곳은 엘라메라는 마을에 있는 요트칸 유적지. 2km에 걸친 포도넝쿨 터널은 이국적이었다. 터널이 끝나니 밭둑길이 일행을 기다렸다. 그렇게 걷기를 한참, 마침내 유적처럼 보이는 높은 흙벽이 나타났다. 오랜 도보에 지친 일행들이 안도하는 순간 가이드가 찬물을 끼얹었다.

“그 흙벽집은 주민이 근래에 만든 것입니다.”

“유적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지금 서 있는 곳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곳일 수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뜻일까.

유물 훼손 막기 위해 땅속에 묻어 … 가이드도 “여긴가 저긴가”

사연은 이랬다. 일행이 보고자 하는 유물은 10m 깊이의 지하에 묻혀 있다고 한다. 훼손을 막기 위해 유물을 묻어버렸다는 것. 따라서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결국 일행은 ‘유적지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는 땅’을 돌아다니는 데 만족해야 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막힌 상황에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유적지를 보지 못했지만 섭섭함은 없었다. 마을의 평화로움이 허허로운 마음을 감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귀를 앞세워 밭을 갈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해맑게 웃으며 주위를 뛰어다녔다. 햇빛은 호두나무 가지 사이를 지나 조용히 땅으로 스며들었다. 마른 풀 냄새에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졌다. 어릴 때 집 앞 숲 속을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이 떠올랐고, 일행들은 모두 그 평화로움에 취했다.

중국의 서쪽 끝에 위치한 ‘카스(喀什)’는 우리 여행의 종착지나 다름없었다. 카스의 옛 이름은 카슈가르다. 그곳에서부터는 비행기로 우름치, 시안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허톈에서 카스까지는 버스로 꼬박 하루가 걸렸다. 카스로 가는 길 위에서 필자는 끝나가는 여정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막상 동쪽을 향해 돌아가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하자 아쉬움은 사라지고 조용히 정리하는 기분에 잠겼다. 지난날의 카슈가르는 서역 북로와 남로 파키스탄, 인도로 이어지는 카라코람 하이웨이 등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였다.

예부터 교통의 요지는 부침이 많다. 1세기 초 후한의 무장 반초가 30년 넘게 이곳을 점령하며 머물렀다. 그 후 중국의 지배를 벗어났다가 7세기에 당에 다시 복속되었으며, 탈라스강전투 이후에는 아랍인에게 점령됐다. 20세기 초에는 영국 영사관과 러시아 영사관이 경쟁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며 유물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현지 정보와 숙소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박물관 유물조차 ‘가짜’ 냄새 물씬

허톈 박물관(왼쪽 사진). 카스의 한 호텔 경내에 위치한 옛 러시아 영사관.

마침 우리가 묵은 호텔은 경내에 러시아 영사관의 옛 건물을 보존하고 있었다. 고즈넉한 아침, 세월의 때가 낀 영사관 건물을 눈을 맞으며 혼자 둘러보고 있으려니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는 영국 영사관 자리도 둘러보았다. 영국 영사 마카트니는 이곳에서 28년 동안 머물렀다.

마카트니는 모든 여행객들을 환대했다. 특히 스타인은 항상 그의 집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니 이곳은 실크로드 유적지 약탈자들의 근거지가 된 셈이었다. 하지만 영사관 건물은 시치미를 뗀 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버스와 기차를 타면서 하염없이 달려온 것 같은데 서울로 돌아오는 건 금세였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승용차로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달렸다. 오랜 여행 때문인지 흔들리는 차 안이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졌다. 차창 밖의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행의 후유증을 치유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현실생활로 돌아가려면 또 한번 가슴앓이를 해야 할 듯하다.



주간동아 2006.07.04 542호 (p92~94)

글·문건영 변호사 사진·서해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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