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9

2006.06.13

“한국-사하共 이젠 일촌지간이죠”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6-06-07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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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하共 이젠 일촌지간이죠”
    5월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사하 친선협회’ 출범식에서 유난히 자주 거론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거론될 때마다 박수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러시아 대사를 하면서 한 번도 사하에 가보질 못했다. 그래서 기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민간인 한 사람의 힘으로 이렇게 된 데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정치의 현실을 절감한다.”(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그가 없었다면 오늘의 이 행사도 없었다.”(안드레이 보리소프 사하 문화부 장관)

    “그는 정부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김진표 교육부총리)

    올해로 12년째 사하(야쿠티아)공화국(이하 사하)과 한국의 민간교류를 이어오고 있는 한국외대 노어과 강덕수 교수(노어노문학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 강 교수는 이날 친선협회 초대 회장으로 선임됐다. 강 교수는 친선협회 출범 배경에 대해 “향후 한국과 사하공화국 간의 경제협력에 대비해 문화적으로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사하 한국학교에 교사 보내는 등 물심양면 지원

    강 교수가 사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다. 1994년 5월 어느 날 오후 5시쯤, 막 퇴근하려던 강 교수의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강 교수는 노어과 학과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사하의 수도 야쿠츠크에서 왔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며 사무실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강 교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전화에 당혹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사무실로 찾아온 그들로부터 전해들은 전후 사정은 강 교수의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했다.

    “우리나라 모 대학 교수가 시베리아 민족연구를 하러 야쿠츠크 시에 갔다가 그쪽 관계자로부터 한국학교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한 모양이에요. 그 교수는 대가로 엄청나게 많은 민속자료를 받아왔고요. 대학에 박물관을 만들었을 정도였죠. 그런데 야쿠츠크 시 관계자들이 그 교수를 만나러 한국에 왔는데 연락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때 ‘또 사고가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뭘 도와주면 되겠냐고 물어보니 야쿠츠크 시의 한국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교사 3명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한국-사하共 이젠 일촌지간이죠”

    사하공화국 국기를 들고 있는 강덕수 교수.

    강 교수는 러시아에서 한국의 기업인이나 재산가들이 고려인이나 조선족 또는 교포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불신이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강 교수는 또다시 야쿠츠크 시 관계자들에게 실망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3명의 교사를 보냈다. 통역대학원생 1명과 한국외대 재학생 2명을 보냈는데, 정식 한국어 교사자격증은 없었지만 한국어 강의는 가능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당시 사하 정부와 야쿠츠크 시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국민을 잡기 위해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일환으로 외국어 영재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각국을 돌아다녔다. 그때 프랑스, 독일, 벨기에, 터키 학교와 함께 한국학교가 설립됐다.

    사하 정부와 야쿠츠크 시는 이들 학교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하 정부는 한국학교에 학생 250명과 교사 20명을 배치했다. 교사 1명당 학생 12.5명인 셈. 또 매년 학생 15명을 선발해 한국으로 연수를 보냈다. 한국에서 이 연수프로그램을 담당한 사람은 강 교수였다. 한국에서 1년 단위로 파견된 교사들은 한국학교에서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 태권도, 음식, 음악 등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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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하共 이젠 일촌지간이죠”

    지난해 6월 말 사하공화국 야쿠츠크 국립도서관에서 야쿠트족 민족서사시 ‘엘레스 보오투르’의 번역 출판기념회 직후 사인회를 하고 있는 강덕수 교수(왼쪽). 강 교수는 이날 야쿠츠크 국립대학의 명예교수로 선임됐다.

    그런데 몇 년 뒤 한국학교에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1998년 러시아가 외환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모라토리엄(국가부도)’을 선언한 것. 사하의 경제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사하 한국학교에 대한 재정지원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한국 연수프로그램에 대한 사하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강 교수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에 한 번 와보는 것이 소원인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라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그만뒀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기에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더라도 이어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강 교수는 평소 친하던 친구와 선후배들의 후원금으로 연수비용을 근근이 마련해오다, 5년 전 국제피플투피플(PTPI)이라는 민간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숨통이 조금 틔었다. 강 교수가 한 일간지에 사하 한국학교에 대해 쓴 글이 계기가 된 것. PTPI는 지난해 사하 한국학교 10주년 행사 때 스쿨버스를 학교에 기증했으며, 같은 해 강 교수가 사하 야쿠트족의 민족서사시 ‘엘레스 보오투르’를 번역, 출간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

    한국학교가 매년 졸업생을 배출하자 2000년 야쿠츠크대학에 한국학과가 생겼다. 이때도 강 교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오랫동안 깊숙한 인연을 맺어온 사하에 대한 강 교수의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사하는 나에게 어느 날 문득 떨어진 운명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러시아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을 때처럼. 사하는 그야말로 땅속에 묻힌 다이아몬드와 같은 곳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에 매료됐던 강 교수는 1972년 대학 입시 때 전기에서 떨어지자 주저 없이 후기였던 한국외대 노어과에 입학했다. 그 길이 당연히 가야 할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광활한 땅에 자원 많아 … 경제협력 땐 윈-윈

    강 교수는 조만간 야쿠트어 및 야쿠트족과 한국 고대문화의 연관 고리를 찾기 위한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계획이다. 그의 가설에 의하면 칭기즈칸에게서 쫓겨난 터키 계통의 타타르족 일부가 사하지역의 지배족이 돼 언어(야쿠트어)를 남기고, 우리나라에서 오랑캐로 불렀던 만주족이 현재의 야쿠트족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야쿠트어가 터키 계통의 언어고, 야쿠트족이 ‘용감한 무사’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우랑카이’가 오랑캐의 어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북방민족 중 가장 우수한 민족이 한민족이라는 게 강 교수의 추론이다.

    강 교수는 “터키족, 야쿠트족, 몽골족, 알타이족 등 시베리아 북방민족 중 가장 성공한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다른 북방민족이 월드컵에서 한국을 응원하는 것은 동질감을 느끼고 우리를 통해 미래의 희망을 보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경제 측면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 측면에서도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특히 사하에 대해 “과거적인 가치보다 미래적인 가치가 큰 곳”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영토의 5분 1을 차지하고 있는 광활한 땅. 그곳에 매장된 금과 다이아몬드, 철, 안티몬 등 희귀금속과 천연가스, 석탄 등 다양하고 무한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강 교수는 바라고 있다. 사하 한국학교에 대한 적절한 지원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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