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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 싸움 얼룩 ‘어글리 쇼트트랙’

오직 메달 명분 그동안 편 가르기 ‘쉬쉬’ … 투명한 선수단 구성 약속 지켜질까

  • 김성규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imsk@donga.com

파벌 싸움 얼룩 ‘어글리 쇼트트랙’

파벌 싸움 얼룩 ‘어글리 쇼트트랙’

파벌 싸움의 정점에 서 있는 쇼트트랙 대표팀 송재근(왼쪽), 박세우 코치.

“선수들과 코치가 짜고 안현수의 1등을 막았다. 스포츠맨십도 없다.”

미국에서 열린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대회에서 남녀 개인종합 1위를 휩쓸고 4월4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선수단의 환영식은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49) 씨의 행패로 아수라장이 됐다. 흥분한 안 씨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빙상연맹) 김형범 부회장과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안 씨는 ‘세계 최강’이라는 한국 쇼트트랙이 내부적으로 심한 파벌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방송 카메라 앞에서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보여준 셈이다.

지난 2년 남짓 쇼트트랙 대표팀은 여러 사건에 휘말려 몸살을 앓았다. 2004년 9월 김기훈 당시 대표팀 코치가 자신이 운영하는 용품점의 스케이트화를 선수들에게 강제로 신겼다는 이유로 옷을 벗었다. 그해 11월에는 여자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선수 ‘구타 사건’이 있었다. 2005년 4월에는 코치 인선 문제로 남자 대표 선수 7명이 선수촌 입촌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의 이면엔 파벌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럴듯한 이유에 가려 드러나지는 않았다.

말도 안 하고 밥도 같이 안 먹어

쇼트트랙계의 심한 편 가르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불과 보름 앞둔 1월 말 한 방송사가 대표팀 코치의 ‘파벌 선수 레이스 방해 지시’ 주장을 보도하면서다. 이를 계기로 대표팀이 성별이 아닌 학연에 따라 사실상 두 개의 팀으로 나뉘어 훈련을 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한국체대 출신인 박세우 코치가 한국체대 재학생인 안현수·최은경 등 4명을, 단국대 출신인 송재근 코치가 이호석·진선유 등 6명을 지도하는 식이다. 뒤에 밝혀진 바로는 ‘파벌 훈련’은 선수들이 먼저 제안했고, 빙상연맹이 이를 허락해줬다.



곪은 속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파벌 훈련’은 동계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명분에 밀려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올림픽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파벌이 다른 선수와는 태극기도 같이 들지 않았고 자기 코치하고만 얘기하는 등 분리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파벌 문제가 부각될 경우 국제적 망신이라는 인식 때문에 공론화되지 못했고, 한국 쇼트트랙은 금메달만 6개라는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그런데 올림픽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민의 관심이 덜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선수단 내의 파벌 문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파벌 훈련’은 올림픽 이후에도 계속됐다. 올림픽 때와는 달리 취재진은 선수단에 비교적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는데, 기자들의 눈에 비친 파벌 훈련의 실상은 경악할 만한 수준이었다. 선수들은 코치가 다르면 서로 말도 안 하고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코치들은 다른 파벌 선수들이 호텔 몇 호실에 투숙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러한 분위기는 당연히 경기에서도 감지됐다. 여자의 경우 진선유의 실력이 워낙 월등해 다른 파벌 선수들이 견제할 여지를 주지 않았지만, 남자의 경우는 안현수와 이호석의 기량 차이가 별로 없어 자주 부딪쳤다. 둘은 대회 첫날 1500m 결승에서부터 결승선을 바로 앞에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등 매 경기 위험한 대결을 벌였고, 결국 마지막 날 3000m 슈퍼파이널 결승에서 안현수가 이호석을 밀어 넘어뜨리고 자신도 실격당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이어 벌어진 여자 3000m 계주에선 마지막 주자로 나선 진선유가 결승선 바로 앞에서 미끄러지며 보호벽에 심하게 부딪혀 얼음판 위에 쓰러졌는데, 여자 팀 계주를 지휘하는 박 코치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고 송 코치 혼자 수습에 나섰다.

현재 쇼트트랙 내 파벌 싸움은 과거 한국 쇼트트랙을 이끌었던 J 씨와 Y 씨가 뿌리라는 것이 빙상인들의 한결같은 답변이다. 이 둘이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세를 불렸고, 세력을 넓히는 데 가장 중요한 대표팀 장악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는 것이다. J 씨가 수년 전 한국체대 교수로 임용되고 빙상팀 감독을 맡으면서 이 싸움은 한국체대와 비(非)한국체대의 대결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표팀을 장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코칭스태프를 자신의 파벌에서 인선해야 한다. 빙상연맹은 코칭스태프 선발 기준을 명확하게 명문화하고 있지 않다. 코칭스태프를 뽑는 과정이 구린내를 풍기며 진행된 이유다. 지난 2년 남짓 대표팀 코치를 거쳐간 사람이 10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빙상연맹 지도부가 쇼트트랙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양쪽 인사들의 말에 갈대처럼 흔들린 것이다.

쇼트트랙은 스피드스케이팅과 달리 몸싸움이 일어나고 ‘레이스 견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코칭스태프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마음만 먹으면 ‘선수 하나를 살리고 다른 선수를 죽일 수도 있는’ 자리인 것이다. 대표팀 코치를 지낸 이준호 씨는 “국내대회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서도 승부 조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코칭스태프의 인선을 놓고 선수와 선수 부모들이 득달같이 반대하거나, 옹호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빙상연맹은 4월6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올해 안에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선수단을 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빙상연맹이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쇼트트랙의 파벌 문제가 일소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빙상연맹 박창섭 부회장(스피드스케이팅)은 “이쪽 말 듣고 흔들리고, 저쪽 말 듣고 흔들리는 연맹 지도부에 무슨 희망을 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주간동아 531호 (p64~65)

김성규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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