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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껍데기 보고 물건 산다”

감성 대중 소비시대 패키지는 판매자 … 내용물보다 더 중요한 경쟁력 엄격한 관리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난 껍데기 보고 물건 산다”

“난 껍데기 보고 물건 산다”

① 이세이 미야케의 접착제 없는 패키지. ② 병과 병따개의 컨버전스 디자인.

‘크리스피 크림’이란 도넛이 젊은 여성들의 다이어트 결심을 위협하면서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다. 여성들을 유혹하는 것은 달콤한 맛이 아니라 피자 박스처럼 보이는 독특한 도넛 상자다.

피자가 들어 있을 것 같은 상자에 도넛을 넣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 ‘역발상’과 미국의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신문 망점 무늬는 ‘도넛은 싸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식’이라는 소비자들의 상식을 바꿔놓았다.

이 박스 디자인은 도넛이 중산층 가족을 위한 파티용 음식이 될 수 있고, 고급 오피스에도 썩 잘 어울린다는 점을 강조한다. ‘크리스피 크림’ 홍보팀의 이정민 씨는 “거리 홍보 때 한 개씩 나눠준 것이 아니라 박스로 줬다. 이들이 박스를 들고 다녀야 ‘크리스피 크림’의 컨셉트를 제대로 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TV시리즈물 ‘섹스 앤 더 시티’의 추종자들은 한눈에 이 패키지를 알아봤다. ‘섹스 앤 더 시티’ 주인공들이 다이어트와 남자친구 대신 선택한 바로 그 도넛이었기 때문이다.

패키지가 내용물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로 초록색 사이렌이 그려진 스타벅스를 빼놓을 수 없다. 소비자들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 TV시리즈물에 등장했던 스타벅스의 패키지에 열광한다.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신경질적으로 커피를 주문하던 톰 행크스는 까탈스런 취향의 뉴요커를 상징한다.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라면 사라 제시카 파커처럼 긴 머리를 흩날리며 한 손에 스타벅스 컵을 들고 바쁘게 걸어가야 한다.

소비자의 패션, 시각 정체성 형성



“값이 싸며, 상표 간 차이가 별로 없고 잘못 구매해도 위험이 없는 제품을 ‘소비자 관여도가 낮다’고 말합니다. 이런 제품은 즉흥적인 감성에 의해 구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패키지 디자인이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되죠. 도넛, 커피, 맥주 등이 대표적인 ‘저관여도 상품’입니다. 이에 비해 가전이나 보석 같은 제품은 소비자 관여도가 높아요. ‘고관여도 상품’의 패키지는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좋아요.”

한경대 디자인학부 이경선 교수는 “소비자가 슈퍼마켓이나 할인점에서 혼자 제품을 고르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감성적으로 소비가 결정되는 경향이 커지면서 패키지의 중요성도 증가하는 것이 대중소비 사회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즉, 패키지 자체가 판매자 역할을 한다는 것. 브랜드와 자신의 개성을 동일시해서 감정을 이입하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도 패키지의 역할이다. 길을 걸으며 전화하고, TV 보고, 음악을 듣는 ‘모바일’족에게 ‘테이크 아웃’ 패키지나 쇼핑백 디자인은 곧 그 자신의 패션이 되고, 그의 시각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패키지 디자인이 곧 내용물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성공적인 패키지 디자인이 히트 상품을 만들어낸 사례들도 늘어났다. 설탕 대신 자일리톨 성분으로 단맛을 낸 껌은 약통 모양의 패키지를 통해 ‘치아 건강에 좋다’는 인상을 소비자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저가 화장품 신화를 이룬 ‘미샤’의 패키지 디자인은 실용성을 중시하는(또는 스스로를 실용적이라고 믿는) 젊은 여성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했다. 같은 저가 화장품 시장에서 후발 브랜드라는 약점에도 ‘페이스샵’이 ‘미샤’를 앞지를 수 있었던 것도 패키지 덕분이었다. ‘페이스샵’은 웰빙 열풍에 맞춰 친자연주의적인 패키지를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난 껍데기 보고 물건 산다”

③ 리바이스 청바지의 빨간 태그를 단 쇼핑백. ④ 신문지를 이용한 컨버전스 디자인. ⑤ ‘테이크 아웃’ 시대의 상징이 된 스타벅스 패키지. ⑥ 국산 햄버거 크라제버거 패키지. ⑦ 피자 박스처럼 생긴 크리스피 크림 패키지.

외식산업 부문에서는 햄버거 레스토랑인 크라제버거가 포장으로 좋은 이미지를 얻은 사례다. 국내 업체인 이 회사는 햄버거의 패키지를 종이가 아닌 박스로 만들어 트렌드세터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북유럽 국가에서 건너온 듯한 인상을 주면서 ‘햄버거=정크 푸드’라는 소비자들의 저항감을 무력화한 것. ‘크라제버거’는 ‘크레이지 버거’를 살짝 바꾼 상호다.

현대 패키지 디자인은 마케팅 수단을 넘어서 실험예술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구호를 담기도 한다. 도쿄 하라주쿠의 라포레 백화점 쇼핑백은 그로테스크하고 유머가 넘친다. 쇼핑백에 반라의 여성 하반신 사진을 실제 비율로 넣어 쇼핑백을 든 여자들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배우-관객이라는 비일상적인 관계로 만들기도 하고, 상업주의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담은 사진을 사용하기도 한다.

실용적 기능 융합 디자인 각광

또 다른 중요한 흐름은 패키지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껍데기의 운명은 결국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패키지 디자인에 많은 투자를 하면 할수록 쓰레기에 돈을 쏟아 붓는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패키지에 실용적 기능을 ‘융합’한 ‘컨버전스 패키지 디자인’과 이타적인 ‘로하스(lifestyle of health & sustainability) 디자인’이 미래의 패키지 디자인으로 각광받는다.

예를 들면 신문지를 둘둘 말아 반으로 접은 패키지는 한쪽은 땅콩류를, 다른 한쪽은 껍질을 담게 한 컨버전스 아이디어다. 맥주 ‘투보그’는 병 아래 홈에 다른 병을 넣고 돌리면 뚜껑이 열리는 컨버전스 디자인을 내놨다.

일본의 패션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는 패키지에 접착제를 쓰지 않음으로써 옷 자체의 특성을 설명하고(이세이 미야케는 옷의 박음선을 거의 없앤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친환경적인 이미지도 강조한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택배 상자를 뒤집어 의류보관 상자로 쓸 수 있게 한 패키지도 로하스 디자인을 반영한 것이다.

패키지가 곧 제품이라는 인식에 따라 기업들도 패키지 관리에 한층 엄격해졌다. 정해진 사이즈를 절대 바꿀 수 없고, 공동 프로모션을 할 때엔 패키지에 타 업체 로고를 쓰지 못하게 하며, 보온성이나 물에 견디는 실험, 두께와 로고 인쇄의 색 등에서 본사 기준을 엄수하도록 하는 등이다. 또 자선행사처럼 특별한 목적에 쓰이는 패키지는 별도 디자인을 만들어 회사 이미지를 보호한다.

유감스러운 것은 스타벅스, 크리스피 크림 등 국내에서 인기 있는 다국적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컵 등 패키지를 거의 전량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포장업체들이 본사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업체들의 설명.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 아직 패키지 전문 디자인 회사가 전무할 정도로 패키지를 무시해온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커피를 만들었지만, 커피를 담는 컵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주간동아 531호 (p62~63)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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