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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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700회 ‘항일 상경’

  • 구가인 여성동아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6-03-27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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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 동안 700회 ‘항일 상경’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이어진 정기집회.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의 방한으로 1992년 1월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700회를 맞았다. 3월15일 정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11명의 할머니와 200여 명의 취재진이 모인 가운데 700차 수요시위가 열렸다.

    “우리가 또 왔다. 이번이 700번째다. 네놈들에게 당한 치욕을 갚기 전까지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죽을힘을 다해 또 올 거다!”

    대구에 사는 이용수(79) 할머니는 1회 시위부터 15년 동안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에 올라왔다. 아침 9시 서울행 버스를 타고 오후 5시30분 대구행 버스를 타기를 700차례. 이 할머니는 이날 시위에서 피해자들을 대표해 발언을 하기도 했다.

    “92년 처음 시위에 나왔을 때는 예순다섯의 나이였어요. 이제 일흔아홉입니다. 15년이나 데모했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열여섯 살에 일본군에 붙들려 갔다고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어요….”

    15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255명의 위안부 할머니들 중 105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세상을 등진 할머니만 무려 17명. 여든을 바라보는 이 할머니는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한다.



    “그동안 설움도 많았고, 눈물도 많았어요. 일본의 죄를 세상에 알려야 하는데 나이만 자꾸 먹어가고…. 700번이나 시위했는데 일본은 변한 게 없어요. 일본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생각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우리 정부가 참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할머니는 무엇보다 일본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적절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요구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더불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우리 정부에 대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열여섯 나이에 끌려갔어요. 어린 나이에 모진 일을 당하고 2년 뒤 광복이 돼서 고향으로 돌아가니까 집에서는 내 제사를 지내고 있더라고요. 부모님은 화병으로 돌아가셨고요.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더러운 친일파 놈들이랑 무능한 정부 때문에 나라가 없어서 그런 꼴을 당한 건데…. 65년 한일협정 때 위안부 문제는 쏙 빼놓았잖아요.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그걸 알았더라면 할머니들이 그렇게 원통한 맘을 안고 세상 떠나진 않았을 거예요. 우리나라 정부가 앞장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합니다.”

    이할머니는 좀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일본 정부에 맞서기 위해 96년 경북대 사회교육원에 진학, 명예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좀더 배웠더라면 책으로 쓰고 싶을 만큼 하고픈 말이 많다”며 아쉬워했다. 요즘에는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최대한 활동을 줄이고 있다. 다만 수요시위만은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생각이다.

    “혈압도 높고 심장도 안 좋다고 하고…. 그래도 수요시위는 계속 해야지요. 나는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100년이고 200년이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내가 해야 해요. 내가 외치지 않으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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