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8

2006.03.28

책과 도서관 파괴, 야만을 고발한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6-03-27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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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도서관 파괴, 야만을 고발한다
    인간의 역사는 창조와 파괴가 반복된다. 숱한 문명과 기념비적인 건물이 세워지고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책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대 도서관 중 가장 방대한 장서를 자랑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기원전 48년 카이사르의 침공으로 철저하게 파괴됐다. 잿더미로 변한 그 장서는 인류 역사를 바꿔놓을 만큼 귀중한 책들이었다.

    역사적으로 책은 서민이 아니라 권력자의 손에서 놀아났다. 권력을 잡은 사람은 통치와 문화 창달을 위해 장서 늘리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정복한 지역과 적의 책은 금서로 만들거나 깡그리 파괴했다. 광기의 충돌로 인해 피땀 흘려 모은 수많은 책들이 불꽃 속으로 타들어갔다.

    수메르 문명 시절의 도서관 화재를 비롯해 아테네, 로마, 스페인, 중국, 인도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책 파괴 사건은 책이 얼마나 수난을 받아왔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은 도착했고, 끌어내고 불태웠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빼앗고, 가버렸다.” 유럽에서 몽골 군대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공포 그 자체였다. 1401년 바그다드와 시리아를 점령한 몽골 군대는 도서관마다 불을 지르고 책을 모두 끌어내 티그리스강에 던졌다.

    진시황제의 분서(焚書)는 아주 우연히 시작됐다. 진시황이 참석한 연회에서 한 학자가 “옛것을 모범 삼지 않고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승상 이사가 “지금 유생들은 옛것을 빌미 삼아 현재를 비난하기에 급급합니다. 진나라 것을 제외한 모든 역사 기록을 불태우시고, 감히 ‘시경’이나 ‘서경’을 논하는 자는 저잣거리에서 처형하십시오”라고 간언했다. 이렇게 해서 ‘시경’ 등은 모두 불에 태워졌다.



    본문에 거론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책 수난도 빼놓을 수 없다. 멀리는 거란의 고려 침공부터 임진왜란과 병인양요에 이르기까지 귀중한 왕실문고는 물론 사대부 집안의 사료까지 철저하게 파괴되고 일부는 약탈당했다.

    전 세계 곳곳서 아직도 책 수난 계속

    그렇다면 최근에는 도서 파괴가 중단됐을까? 아니다. 야만적인 행위는 아직도 그칠 줄 모른다. 2001년 3월 미국 피츠버그 근처 하느님의 교회 추수집회에서 헤밍웨이, 칼린 지브란의 작품을 비롯해 신을 모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판단되는 책들이 모조리 불태워졌다. 미국 도서관협회 웹사이트에는 그날그날 지구상에서 어떤 장서가 불타 없어졌는지 알려주는 코너가 있을 정도다.

    지구상에서 분쟁과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책의 파괴는 계속될 것이다. 저자가 호소하는 바는 명쾌하다.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책과 도서관을 제발 파괴하지 말라.”

    21세기 책의 수난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종이의 위기와 함께 책도 위기를 맞고 있다. 종이 책은 머지않아 생산을 중단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서재를 채우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스크린 속의 글자에 만족하는 것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

    뤼시앵 폴라스트롱 지음/ 이세진 옮김/ 동아일보사 펴냄/ 448쪽/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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