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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는 무선인터넷 요금 용서 못해!

휴대전화 과당요금 피해자 집단 소송 움직임 … 유사한 사건 일본 소비자 승소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 일본어 자문 = 류호중

사람 잡는 무선인터넷 요금 용서 못해!

사람 잡는 무선인터넷 요금 용서 못해!

미성년 자녀의 휴대전화 무선인터넷 사용으로 수백만원의 요금이 청구되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남자 중학생이 휴대전화 요금 370만원 때문에 자살한 사건(‘주간동아’ 525호 34~35쪽 참고)이 알려진 뒤, 휴대전화 무선인터넷 과당요금 피해 소비자들이 본격적으로 이동통신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집단소송 추진을 원하는 피해 소비자들이 나타나자 최근 녹색소비자연대, 대한주부클럽연합회 등 시민단체는 소송 준비에 착수했다. 중학생 아들이 한 시간 가량 휴대전화로 만화를 본 것에 대해 23만원이 청구된 장성우 씨는 이통사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할 생각이다. 자살 학생의 아버지 강복식 씨 또한 조만간 KT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피해 소비자 대부분은 미성년 자녀의 무선인터넷 사용으로 고액의 요금청구서를 받게 된 부모들. 부모 명의의 휴대전화를 미성년 자녀가 사용하다 과당요금 피해를 보거나 미성년 자녀가 부모의 휴대전화로 무선인터넷을 사용하다 고액이 청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만화 한 편 본다고 20만원 기막혀”

이들은 “이통사는 무선인터넷 요금체계를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약 당사자이자 요금을 납부하는 장본인인 부모에게 미성년 자녀의 무선인터넷 사용을 동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서비스를 제공했다”며 법적으로 이통사의 책임을 가릴 태세다. 실제로 무선인터넷 집단소송이 제기된다면 법원은 과연 ‘성난 소비자’의 손을 들어주게 될까.

이와 관련, 우리나라 소비자가 처한 상황과 매우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일본 소비자의 승소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



2001년 일본의 최고재판소(우리나라 대법원에 해당)는 일본 최대 통신회사 NTT의 유료서비스 요금 분쟁에 관련한 두 건의 소송에 대해 소비자의 승리를 선언하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최고재판소는 △소비자는 정보이용료를 지불할 의무가 없다 △NTT는 지불된 정보이용료를 소비자에게 돌려주라 △소비자는 유료서비스 이용 시 발생한 통화료에 대해 50%만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10년 가까운 법정 다툼 끝에 일본 소비자들은 통신회사의 부당한 유료서비스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은 데 성공한 것이다.

일본의 상황은 이러했다. 우리나라의 KT와 같은 통신회사 NTT는 1989년부터 각 가정에 설치된 일반전화 회선을 통해 ‘다이얼 Q2 서비스’(이하 Q2 서비스)라는 유료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소비자가 전화를 걸면 유료정보를 제공하고 정보이용료와 통신료를 청구하는 방식.

Q2 서비스의 부작용은 금세 나타났다. 90년대 초반부터 미성년 자녀들이 부모 몰래 Q2 서비스를 사용해 수백만원의 전화요금이 청구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문제가 된 Q2 서비스 대부분은 음란 대화를 나누는 성인용 서비스. 그 정도가 심한 서비스를 제공한 업자가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지는 등 Q2 서비스는 심각한 사회문제로도 대두됐다.

사람 잡는 무선인터넷 요금 용서 못해!

휴대전화 무선인터넷 과당요금과 관련해 이통사에 불만을 터뜨리며 소송 필요성을 제기하는 소비자들의 게시글.

이에 피해 소비자들이 “계약 당사자인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진 Q2 서비스 이용에 대해 요금을 낼 의무가 없다”며 줄줄이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 93년 오사카재판소는 첫 번째 소비자 승소 판결을 내렸다. 부모가 모르고 있는 2개월 동안 미성년 자녀가 사용한 Q2 서비스 이용요금 50만엔(약 500만원)에 대해 부모는 지불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한 것.

2001년 3월27일 최고재판소가 내린 두 건의 확정판결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먼저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무단으로 이용한 Q2 서비스의 정보이용료 41만엔(약 410만원)을 돌려달라는 ‘부당이득 반환 청구사건’에 대해 최고재판소는 NTT 측에 ‘소비자가 이미 납부한 정보이용료를 연 5%의 이자를 덧붙여 되돌려주라’고 판결했다. NTT는 Q2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일반전화 계약자에게 계약자 아닌 다른 사람이 Q2 서비스를 사용할 경우에도 요금을 지불하겠느냐는 의사를 확인한 적이 없기 때문에 계약자에게는 지급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NTT는 Q2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개통해 누구든 접근 가능하게 했을 뿐, 기존 계약자들에게 일일이 의사 확인 절차를 밟지 않았다.

역시 2001년 3월27일 확정판결된 ‘통화요금 청구사건’의 핵심은, 최고재판소가 NTT에게 민법에 명기된 ‘신의 성실의 원리(신의칙·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민법 제2조 1항)’를 다하지 않은 책임을 물었다는 점이다.

“Q2 서비스 신의 성실 책무 위반”

NTT는 전화요금 납부를 거부하는 계약자에 대해 통화요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계약자의 중학교 3학년 아들이 1992년 1월부터 2월 초까지 집 전화로 Q2 서비스를 이용, 약 10만엔(약 100만원)의 Q2 서비스 관련 통화료가 청구됐던 것. 이에 대해 최고재판소는 계약자에게 ‘통화료의 50%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Q2 서비스로 인해 전화요금이 쉽게 고액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NTT가 잘 알고 있음에도 이러한 정보를 계약자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은 민법이 규정하고 있는 신의칙상의 책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휴대전화 무선인터넷 과당요금 실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 같은 일본 판례를 법원이 적극 숙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당요금 피해 발생에 제동을 걸기 위해 민법이 규정한 신의칙 책무를 적극 원용해야 한다는 것. 법무법인 문형의 김보라미 변호사는 △이통사가 계약 당사자인 부모에게 자녀의 무선인터넷 이용에 관한 동의를 얻은 바 없고 △고액 요금 발생의 위험성을 사전에 성실하게 설명한 바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소송이 제기될 경우 소비자가 승소할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다. 법무법인 지평의 이은우 변호사(진보네트워크 운영위원)는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 등은 요금이나 이용조건을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게 표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 무선인터넷은 이 법의 취지에 걸맞게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최고재판소의 판결 이후 사회문제로도 부각된 Q2 서비스의 횡포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 판결이 내려진 한 달 뒤인 2001년 4월24일 NTT는 두 가지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소송 당사자 이외의 계약자들이 Q2 서비스와 관련한 정보이용료나 통화료를 반환해줄 것을 요청할 경우 최고재판소 판결대로 반환하겠으며 △미성년자들의 무단 사용을 막기 위한 조치로 패스워드를 입력해야만 Q2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패스워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NTT가 Q2 서비스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연간 500억원 규모로 ‘알짜 사업’이지만, 수익 감소가 예상됨에도 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무단 사용 예방 조치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이통사에 대한 집단소송은 기만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휴대전화 무선인터넷 사업을 바로잡는 계기로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밝힌 통신회사의 신의 성실 의무란

새 서비스 요금 고액화 계약자에 정보 제공해야


사람 잡는 무선인터넷 요금 용서 못해!

2001년 3월27일 일본 최고재판소가 NTT의 유료서비스 요금 분쟁과 관련해 ‘소비자 승소’ 확정 판결을 내린 두 건의 판례.

현재 일반 가정에 널리 보급된 전화는 필수불가결한 일상생활의 통신수단이다.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가족이 예상 범위 내에서 전화를 이용하고, 그 요금도 예상 가능한 범위라는 전제 아래 전화계약자는 누가 전화를 사용했는지를 따지지 않고 전화이용료 전부에 관해 지급 의무를 진다.

통신회사는 사업 내용에 관한 정보를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유료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요금 고액화의 위험이 존재한다면 통신회사는 계약자가 그 사실을 충분하고 구체적으로 주지하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고액화 위험의 현실화를 가능한 한 방지하기 위해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신의 성실의 의무가 있다.

통신회사가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자의 예상과 현저히 다른 고액 요금이 발생할 경우, 통신회사가 계약자에게 통화료 지급을 청구함에 있어 제약을 받게 돼도 어쩔 수 없다.




주간동아 528호 (p40~42)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 일본어 자문 = 류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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