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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포괄적 ‘북한 금융제재’ 들켰나

국내 기업 ‘방코델타아시아’ 계좌에 송금했다 ‘압류’ … 전문가 “사실상 직접 금융제재”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미국의 포괄적 ‘북한 금융제재’ 들켰나

미국의 포괄적 ‘북한 금융제재’ 들켰나

대니얼 글라서 미국 재무부 부차관보(맨 오른쪽)가 1월23일 외교통상부 청사 상황실에서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만나 북한의 위조지폐 및 돈세탁 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북한과 위탁가공무역업을 하는 국내 한 기업이 지난해 홍콩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를 통해 북한 기업에 결제대금을 송금했다가 미국의 ‘금융제재’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남한 기업은 10여 년간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북한 공장에서 의류를 납품받아 온 D사. 이 회사가 상대하는 북한 기업은 조선민족경제인연합회(민경련) 산하 ‘샛별총회사’다. 양측 간 무역 규모는 매년 100만 달러 수준. 그런데 지난해 9월16일 D사가 BDA에 개설된 샛별총회사 계좌로 송금한 결제대금 2만 달러가 미국 정부에 의해 ‘압류조치(Holding)’를 당했다.

D사 대표 한모 씨는 “주거래은행인 기업은행에 결제대금 해외송금을 의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업은행과 환거래 계약을 체결한 JP모건 체이스 쪽으로부터 미 정부기관의 모니터링에 적발돼 홀딩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이 자금의 성격을 입증할 수 있는 관련 증거와 소명자료를 제출해서 통과해야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한 씨는 “직접 확인한 건 아니지만 우리처럼 중간에 압류된 경우가 적지 않고, 압류된 자금 규모도 상당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5개월 만에 2만 달러 돌려받아

한 씨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거래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씨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이에 대한 북한의 태도다. “대금을 받지 못했으니 다시 보내 달라”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압력을 행사했던 것.



한 씨는 JP모건 체이스에서 요구하는 소명자료를 제출하는 등 다각도로 해법을 모색한 결과 올해 2월 초 5개월 만에 돈을 되돌려 받았지만 그동안의 이자는 고사하고 환전수수료까지 고스란히 물어야 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선 자금의 이동경로와 시기를 살펴보자.

외환거래 전문가에 따르면 외환은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 은행은 해외 은행계좌로 송금할 경우 JP모건 체이스나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계 대형 금융기관을 주로 이용한다. 달러 환전도 손쉬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금융기관에 계좌를 보유하고 있어 자금 이체가 빠르기 때문이다. 환거래는 현금이 직접 이동하지 않고 계좌 간 이체 형태로 이뤄지는 게 훨씬 편리하다. 통상 해외송금에 걸리는 시간은 5~7일 정도.

D사의 주거래은행인 기업은행이 환거래(Corres) 계약을 체결한 곳은 JP모건 체이스다. BDA의 샛별총회사 계좌로 보낸 문제의 2만 달러가 JP모건 체이스를 거치게 된 것도 이런 시스템 때문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D사가 2만 달러를 송금한 9월16일, 미 정부가 중대 발표를 했다. “북한이 BDA를 통해 위조달러 지폐를 유통시키고 마약 등 불법 국제거래 대금을 세탁하는 창구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미국 내 금융기관들에게 BDA와 일체의 직간접 ‘거래’를 하지 말라”고 발표한 것이다. 미 국내법 중 하나인 ‘애국법 제311조’를 근거로 한 조치였다.

미국의 포괄적 ‘북한 금융제재’ 들켰나

미국 뉴욕 시내에 위치한 JP모건 체이스 본사 건물.

하지만 미 정부는 이날 미국 금융기관이 BDA로 중계하는 제3국의 자금을 ‘압류’한다고까지는 발표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미 정부는 마카오 BDA의 북한 계좌에 대해 직접적인 금융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그에 상응하는 분명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그건 미국으로서도 부담이다.

미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미국 내 금융기관들의 직간접 ‘거래’만 중단하도록 한 것인 만큼 JP모건 체이스는 송금의뢰자인 D사에 ‘거래 불가’를 통보한 뒤 2만 달러를 곧바로 되돌려줘야 정상이다.

물론 미국이 북한 기업의 자금을 동결하거나 압류하는 등 직접적인 금융제재를 가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지난해 6월29일 대량살상무기(WMD) 확산과 연루된 북한 기업과의 거래를 포괄적으로 금지한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 행정명령에 포함된 북한 기업은 조선광업무역회사, 단천상업은행, 조선련봉총회사 등이다.

미 정부는 이어 10월21일 해성무역과 조선종합설비수입, 토성기술무역 등 8개 북한 기업을 추가했다. 이들 11개 기업과 관련된 자금은 미 재무성 산하의 외국자산통제국(OFAC)에 압류돼 제재가 풀리기 전까지 완전히 동결된다. 하지만 D사가 거래하는 샛별총회사는 미 정부의 행정명령 대상 11개 기업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D사가 금융제재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 외환 전문가는 “미 정부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직접적인 대북 금융제재를 취하면서도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고려해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제재 수위를 완화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관련 부처 사실 파악도 못해

또 다른 외환 전문가는 “다른 나라 간의 환거래를 미국계 은행이 중계할 경우 그 자금이 미국 내 금융기관에 잠시 예치되었다가 나가게 되는데, OFAC은 이때 국내법을 적용해 홀딩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D사의 경우도 이런 경우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건 미국 정부와 달러의 횡포”라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전 세계 달러 거래의 90%가 미국을 거치도록 돼 있는 상황에서 미국 내 모든 금융기관이 BDA를 포함한 11개 북한 기업과 거래를 못하도록 금지한 것은 사실상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금융제재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포괄적 ‘북한 금융제재’ 들켰나


실제 업무를 담당했던 기업은행 외환거래팀 관계자는 그러나 “미국 정부의 마카오 BDA 금융제재와 관련됐다는 것만 알 뿐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면서 JP모건 체이스 쪽으로 공을 넘겼다. JP모건 체이스는 “마카오 BDA의 계좌를 갖고 있지도 않고 거래도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하다가, D사의 사례를 제시하자 뒤늦게 “고객의 은밀한 정보이고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아무런 답변도 할 수 없다”며 답변 자체를 거부했다.

한편 통일부와 외교부 등 관련 부처는 국내 대북경협 업체가 미국의 금융제재를 받은 사실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통일부 남북교역팀 김의도 과장은 “북한과 위탁가공무역을 하는 업체들은 마카오 BDA 계좌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BDA 북한계좌로 대금을 송금했다가 미국의 금융제재를 받은 업체가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도 마찬가지. 다만 북미1과 김형진 과장은 “북한 금융제재와 관련한 북-미 간 협상은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이며,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수위도 그대로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D사의 대북 송금이 5개월 가까이 보류된 것에 대해 “JP모건 체이스나 JP모건 체이스로부터 D사의 환거래를 넘겨받은 미국 내 또 다른 금융기관이 불법행위 방지나 비즈니스의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통상적으로 실시하는 ‘자금실사(Due deligence)’ 과정에서 금융거래가 보류됐다가 풀린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주간동아 528호 (p16~17)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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