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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는 경주에 있다”

국정원 진실위 오충일 위원장 “KAL 858기 사건 의혹 정리 위해 면담 요청 중”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김현희는 경주에 있다”

“김현희는 경주에 있다”

2003년 말 이후 종적을 감춘 김현희 씨.

2004년 11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과거의 의혹 사건들을 규명하기 위해 구성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가 활동을 개시한 지 어느덧 만 1년 4개월이 흘렀다. 진실위는 2005년 2월 기자회견을 통해 KAL 858기 폭파, 민청학련·인혁당, 동백림 유학생 간첩단, 김형욱 실종, 김대중 전 대통령(DJ) 납치, 부일장학회 헌납, 중부지역당 사건 등 7대 의혹사건을 우선적으로 재조사할 것이라 공언한 바 있다. 이 중 지금까지 진실위가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김형욱 실종(2005년 5월, 중간조사 결과 발표), 부일장학회 헌납(2005년 7월), 민청학련·인혁당(2005년 12월), 동백림 유학생 간첩단(2006년 1월) 사건 등이다.

“어떤 경로 통하든 진실 고백이 바람직”

아직 조사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3개 의혹사건 중 단연 국민적 관심을 끄는 것은 1987년 11월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향하다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KAL 858기 사건. 재조사 대상 7대 사건 중 가장 많은 미스터리를 지녔기 때문이다. 특히 2003년 말 모 방송사가 자택과 가족을 촬영한 일을 계기로 완전히 종적을 감춘 사건 장본인 김현희(44) 씨야말로 진실위의 조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물이다. 적지 않은 언론매체들이 김 씨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그의 행방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경주의 시댁을 떠난 지도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김 씨의 남편인 전 국정원 직원 정모 씨 또한 휴대전화를 아예 꺼놓은 상태다. 과연 KAL 858기 사건은 진실위의 당초 계획대로 4∼5월 중 조사결과가 발표될 수 있을까.

현재 김 씨의 소재와 근황을 알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정확한 정보를 쥔 이는 바로 진실위를 이끄는 오충일(66·목사) 위원장이다. 세 차례의 전화통화 끝에 3월16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를 전제로 한 만남도 아니고 2시간 30분이나 대화를 나눴음에도 그는 진실위가 진행 중인 의혹사건과 관련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KAL 858기 사건 재조사 결과는 예정대로 발표되나.



“힘들 것 같다. 조사가 덜 끝난 의혹들이 꽤 많다. 300여 가지의 의혹 가운데 80% 정도가 정리됐다고 보면 된다.”

-더 늦어질 수 있다는 뜻인가?

“어차피 100점짜리 진실 규명은 있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결과를 발표할 생각이다. 시점을 못 박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조사는 어느 정도 이뤄졌나.

“국정원이 생산한 자료와 외부자료 스크랩, 검찰기록 등 캐비닛 3개 분량을 뒤졌는데, 사실상 필요성이 약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김현희는 경주에 있다”

지난 1월1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KAL 858기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

-조사에 어려움은 없나.

“자료는 많은데 꼭 필요한 자료가 거의 없다. 종이 말고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된 자료도 많은데 체계적인 분류가 안 돼 있어 검색에 애로가 많다. 이는 KAL 858기 사건뿐 아니라 모든 사건이 마찬가지다. 김형욱 실종이나 DJ 납치를 지시한 문건이 있을 수 있겠나? 두 번째 어려움은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다.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고 증언한 이후 그 가족과 친지, 친구들이 받을 정신적 피해를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증언을 관용적으로 용서하고 화해할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게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진실위의 사명은 진실 규명이지 처벌은 아니다. 세 번째는 7대 의혹사건 대부분이 박정희 정권 당시 발생한 일이어서인지 조사결과를 발표하면 일부 야당에서 정치공세를 곧잘 편다. 하지만 우리는 진실에 근접하려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KAL 858기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기존의 상식틀을 뒤집을 만한 증거가 있는가?

“현재까지는 북한이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팩트(사실)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 외 다른 의혹들은 어떤 것인가?

“많다. 예를 들면, KAL 858기 사건 피해자 상당수의 사망신고가 그 가족들이 직접 한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게다가 김현희 씨의 전력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혀진 게 없지 않은가.”

-조사 작업은 누가 어떻게 진행하나.

“진실위의 민간위원들 밑에 각 소위원회가 있고, 거기에 조사관이 2∼3명씩 배속돼 조사활동을 벌인다.”

진실위의 회의는 매주 월요일 오후 국정원 청사 내에서 열린다. 물론 비공개다. 회의 내용은 빠짐없이 녹취된다. 오 위원장에 따르면 거의 모든 위원이 참석한다고 한다. 최근엔 조사활동이 너무 바빠 10명의 민간위원 중 2명을 상근시키고 있다.

-김현희 씨와의 면담은 이뤄졌나.

“아직 못했다. 2005년 10월쯤 조사관 2명을 파견했는데 김 씨 측이 면담을 완강히 거부했다. ‘제발 조용히 살게 해달라. 자꾸 찾아오면 자폭하겠다’고까지 했다. 국정원 측과 언론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 후로는 면담을 요청하지 않았나.

“조사관들에 의한 비공식적 접촉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결과는 매번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최근(3월)에 내 명의로 공식적인 면담요청서를 보냈다. 아직 답은 오지 않았다.”

-김 씨는 지금 어디에 있나. 기자가 접촉한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울산에 있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내가 보고받기로는 분명 경주에 있다.”

오 위원장은 3월6일 기자와의 통화 당시 “김현희 씨가 어디 있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아래쪽’에 있다”고만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경주라면 어디를 말하는가? 시댁? 국정원 안가? 아니면 제3의 장소인가?

“안가는 아닌 것으로 안다. 김 씨가 국정원 측을 극도로 꺼려 국정원이 경호 등 별도 관리는 하지 않고 소재만 파악해놓고 있는 것으로 안다.”

오 위원장은 그러나 김 씨의 근황이나 정확한 소재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김 씨가 끝내 면담을 거부하면 그의 증언 없이도 조사결과를 발표할 수 있다고 보나.

“글쎄…. 그런 상황은 예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김씨의 증언이 없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의 과거 진술도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설사 그가 면담에 응하더라도 그의 말의 사실성 여부를 다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씨의 증언이 빠진 조사결과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의 진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조사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그 점이 문제다. 고민이다. 차라리 김 씨가 어떤 경로를 통하든 스스로 진실을 고백했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다. 사회적 강압에 의한 증언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김 씨가 사용했다는 폭발물 정도로 큰 비행기가 폭파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있다. 이에 대해 진실위는 시뮬레이션까지 해야 할 것 같다고 밝힌 적이 있지 않나.

“비용과 시간의 문제 때문에 아직은 고려 중이다.”

-다른 나라 정보기관에 관련 자료가 있는지 더 찾아봐야겠다고 한 적도 있는데….

“거의 마무리 단계다.”

-KAL 858기 사건 재조사에서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 있는가.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혹의 상당 부분은 정리됐다.”

-당초 3월 중에 발표하려 했던 DJ 납치사건과 중부지역당 사건의 조사결과는 언제 발표할 생각인가?

“예정보다 늦어질 것 같다.”

-7대 의혹사건 외에도 의혹이 제기된 국정원 관련 사건 90여 건에 대해서도 조사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와 관련한 리스트가 작성돼 있다. DJ 노벨상 수상 로비의혹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될 것이다.”

오 위원장은 고민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말 그대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탄생한 진실위의 소명으로 이어져야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다.



주간동아 528호 (p14~15)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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