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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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정보통신 기술은 ‘연애 도우미’

MIT 파텔 박사 ‘해비타트’ 기술 개발 착수 … 연인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느낌 가능

  • 이영완/ 동아사이언스 기자 puset@donga.com

    입력2003-12-18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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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단 정보통신 기술은 ‘연애 도우미’

    해비타트 기술 덕분에 연인들은 탁자에 놓인 커피잔과 그 영상을 통해 교감할 수 있게 됐다.

    주리혜씨는 요즘 무척이나 우울하다. 늘 함께하던 애인 노미호씨가 부산에 파견됐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만나 사랑을 꽃피운 사내 커플인 이들은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왔다. 그런데 노미호씨가 지방으로 파견되고 난 뒤 주리혜씨는 전화나 이메일로도 허전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미디어랩 유럽연구소의 디팍 파텔 박사는 주리혜씨가 느끼는 허전함은 연인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는 연인들이 늘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이 기술에는 영어로 거주지를 의미하는 ‘해비타트(Habitat)’란 이름이 붙여졌다.

    해비타트가 주로 펼쳐지는 곳은 주방이다. 사람들이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열쇠 꾸러미나 지갑 혹은 핸드백을 식탁 위에 놓는 일인 경우가 많다.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은 다음에는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차 한 잔을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늦은 저녁이 차려지는 것도 당연히 식탁 위다. 고민거리가 있을 때는 식탁 위에 놓인 담뱃갑을 찾기도 한다.

    라디오파 통해 연인의 행동 파악

    파텔 박사는 이처럼 식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보면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는 것에 주목했다.



    해비타트는 우선 라디오파를 인식할 수 있는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무선상품인식기술) 태그(Tag)를 식탁 위에 놓인 물건에 부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식탁엔 RFID 태그를 인식할 수 있는 센서가 장착돼 있다. 어떤 물건이 식탁 위에 있는지를 먼저 감지하기 위해서다. 식탁이 특정 물건의 라디오파 신호를 인식하면 이 신호는 식탁 아래 있는 리눅스(Linux·대형 기종에서만 작동하던 운영체계인 유닉스를 386기종의 개인용 컴퓨터에서도 작동할 수 있게 만든 운영체계)나 매킨토시 컴퓨터로 전달된다. 컴퓨터는 이 신호를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의 식탁 아래 있는 컴퓨터로 전송한다. 신호를 받은 컴퓨터는 물건의 형상을 식탁 위에 투사한다.

    예를 들어 서울의 주리혜씨가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면, 부산의 노미호씨 식탁에 커피잔이 보이는 것이다. 노미호씨는 이를 통해 주리혜씨가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전화를 하면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 주리혜씨의 식탁에 담뱃갑이 떠오르면 노미호씨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때 위로전화를 하면 노미호씨는 감동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담배는 끊어야 한다는 잔소리도 듣겠지만 말이다.

    파텔 박사가 해비타트를 개발한 것은 그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영국 브리티시텔레콤에서 일할 때 장기 해외출장을 자주 다녔다. 그는 출장지의 호텔방에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때마다 여자친구는 회의 중이거나 운전 중이었다는 것. 파텔 박사는 그때부터 전화를 ‘방해하는 기술’로 여기게 됐고 감정이 일치하는 시점을 어떻게 알아챌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만약 해비타트가 있었다면 파텔 박사와 여자친구가 서로의 상황을 몰라 엇갈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식탁에 비치는 영상은 특정 사물이 얼마나 오래 식탁 위에 있는지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커피잔이 오랫동안 식탁에 있었다면 좀더 크고 선명한 커피잔의 영상이 나타난다. 커피잔이 치워지면 영상이 흐릿해지다가 사라져 이동 여부를 인식하게 해준다.

    해비타트는 어느 곳에서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한 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이 제시한 컴퓨팅 기능이 있는 단추나 탁상시계 열쇠고리 같은 ‘스마트 오브젝트’, 미국과 유럽에서 추진하고 있는 ‘입는 컴퓨터’ 등이 유비쿼터스의 일종이다. MIT 미디어랩도 이러한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의 한 예

    한 예로 음악이 흘러나오는 향수병이 있다. 뚜껑에 컴퓨터칩과 소형 스피커를 장착해 병을 열 때마다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게 한 것이다. 향수의 향기와 그에 맞는 음악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고양하는 컴퓨터인 셈이다. 이는 실용적인 목적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혼자 사는 노인의 신발 밑창에 RFID 태그를 달아 집 안에서 이동하는 패턴을 컴퓨터에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 바로 그것.

    해비타트를 개발한 또 하나의 주역은 MIT 미디어랩 유럽연구소의 ‘인간 연결 연구그룹’이다. 이들의 연구목적은 사람들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언제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보다 정서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리혜씨와 노미호씨가 커피잔 옆에 책이 놓여 있으면 당장 보고 싶다는 뜻이라는 식으로 그들만의 해비타트 신호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보통신 기술이 사람들 사이의 내밀한 감정에까지 개입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첨단 정보통신 기술은 ‘연애 도우미’

    1,2 커피잔 영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가 마시고 나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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