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5

2003.12.25

‘돈과 폭력’ 얼룩 태권도 기가 막혀!

국기원장 김운용씨 개인비리 수사 … 태권도협회 구천서씨도 구속 ‘최악의 상황’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3-12-18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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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과 폭력’ 얼룩 태권도 기가 막혀!

    2월5일 대한태권도협회장 선거 때 선배가 모범을 보이라며 플래카드를 들고 나온 학생들.

    1970년대 ‘태권 브이’와 ‘마루치 아라치’ 만화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검찰 수사를 통해 공개되고 있는 ‘태권 비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기(國技)인 태권도가 서울지검 특수2부와 강력부 양쪽으로부터 수사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특수부는 금전 비리를 전문으로 추적하는 곳이고, 강력부는 조폭이나 마약사범을 다루는 부서. 우리의 마루치 아라치가 언제부터 돈과 폭력에 물들었다는 말인가.

    태권도 문제를 다룰 때 반드시 거론해야 하는 인물이 있다. 유색인종으로서는 드물게 IOC 위원장 선거에까지 도전했던 김운용 민주당 의원(IOC 위원)이 바로 그 사람이다. 1960년대까지 한국 태권도계는 무덕관 청도관 지도관 등 여러 계파로 나눠져 있었다. 김의원은 1971년 이러한 계파를 한데로 모아 대한태권도협회(이하 협회)를 출범시킴으로써 국내 태권도계를 통일하였다. 대통령 경호실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의원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어 협회 회장에 당연히(?) 선출됐다.

    73년 한국 태권도계는 태권도 승단 심사 등을 하는 기구로 국기원을 만들었다. 이 국기원 원장에도 김의원이 취임했다. 그리고 같은 해 만들어진 세계태권도연맹(이하 연맹)의 총재도 김의원이 맡았다. 현재 김의원은 협회 회장은 아니지만 연맹 총재와 국기원 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김의원은 1971년부터 따지면 무려 32년간 태권도계를 장악해오며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으로 만드는 등 태권도 세계화에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말은 김의원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다. 태권도계의 오랜 고질 중 하나가 판정 시비다. 한국에서 태권도 국가대표선수로 뽑히는 것은 사실상 세계 태권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면 국가 연금을 받고 은퇴 후 세계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도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이러니 국내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지나쳐 승부조작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경쟁 치열 바람 잘 날 없는 판정 시비



    ‘돈과 폭력’ 얼룩 태권도 기가 막혀!

    위기에 놓인 김운용 의원.

    이런 상황은 돈이 있으면 이기고, 돈이 없으면 진다는 ‘유전무패 무전무승(有錢無敗 無錢無勝)’의 분위기를 만들며 태권도계를 어지럽혔다. 2001년 4월 경희대와 용인대, 경원대의 태권도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판정에 불복하는 시위를 벌인 데 이어 태권도계의 개혁을 요구하는 정풍운동에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은 이 운동이 일시적인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태권도살리기운동연합을 결성했다. 이 파문은 국내선수 선발과정을 문제 삼은 것이어서 협회로 불똥이 튀어 협회 간부 여러 명이 물러났고, 급기야 김의원도 회장직을 내놓게 되었다. 이때 정풍세력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은 L씨는 협회를 떠나는 것은 물론 사법당국에 의해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 L씨가 김의원의 아들에게 돈을 줬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소문의 진원지가 L씨라는 얘기가 돌아다녔다는 점이다. 태권도계에서는 이를 김의원에게 ‘나를 구해주지 않으면 다 불어버린다’는 L씨의 위협으로 이해했다. 소문이 사실이었던 것일까. 사법처리가 끝나자 김의원이 총재로 있는 연맹은 L씨를 스카우트해 근무케 했다. 정풍운동의 불꽃은 국기원으로도 튈 수밖에 없었다. 국기원은 돈을 만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돈은 국기원만 만지는 것은 아니다. 단증을 따거나 단수를 높이려는 태권도인은 국기원에 심사비를 내고 심사를 받는데, 여기서 부패로 나아갈 수 있는 먹이사슬이 형성된다. 국기원에서 요구하는 심사비는 2만∼3만원에 불과하나 응시자는 10여만원의 돈을 낸다. 이중 2만∼3만원은 국기원으로 가지만 나머지는 협회와 협회 시도 하위단체 등으로 간다. 그리고 도장에서도 여러 가지 운영비 명목으로 떼어내 활용하게 된다.

    아무튼 태권도계는 심사비 명목으로 내는 돈을 토대로 국기원을 비롯한 여러 단체가 생존을 유지하는 구조가 됐다. 회계감사 기능이 엄격하면 이러한 돈도 명분 있게 쓰일 수 있으나 태권도계는 회계감사 기능이 약하다. 정풍세력은 연맹이 국기원에서 매년 수십억원을 가져간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국기원이 비리 시비에 휩싸이자 2001년 11월 김의원은 국기원 원장에서 퇴임했다. 그러나 그는 재단법인체인 국기원의 이사장직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결국 김의원만한 사람이 없다며 2003년 3월 김의원을 다시 국기원장에 복귀시켰다.

    이렇게 되자 정풍운동에 관여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반발했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은 2003년 7월 초 결정된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이었다. 강원도 평창은 예선에서 1위였으나 결선투표에서 캐나다의 밴쿠버에 3표 차이로 져 고배를 마셨다. 패배 직후 유치작업에 관여했던 동료의원들이 김의원이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를 방해했다는 주장을 제기해 큰 논란이 일었고, 이때 김의원 아들의 비리 문제가 거론되면서 김의원은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일단 이를 빠져나가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투서 형태로 각종 정보가 서울지검 특수부로 접수되면서 작금의 김운용 사건 수사로 이어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국기원의 장부가 유출되는 사건이 일어나 검찰은 김의원이 국기원 돈을 연맹으로 가져갔는지를 정밀수사하고 있다.

    서울지검 특수부가 김의원이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한 비리를 캐고 있다면 강력부는 협회의 비리를 추적하고 있다. 지난 1월24일 협회는 공석인 회장을 뽑기 위한 선거에 돌입했는데 입후보자는 자민련 의원을 지낸 구천서씨와 민주당 이윤수 의원이었다. 선거의판세는 구씨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그러자 이의원을 지지하는 대의원들이 선거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며 방해해 선거가 무산되었다.

    이때 구씨측은 이의원측에서 사람을 동원해 선거를 방해한다며 서울 송파경찰서에 신고해 경찰이 출동했다. 그리고 2월5일 다시 선거를 치르게 됐는데 이때 입후보자도 역시 구씨와 이의원이었다. 먼저 선거에서 이의원측의 방해로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고 판단한 구씨측은 더 많은 사람을 동원했다. 이 과정에 일당과 밥값 등 상당한 자금이 투입됐고 이 대목이 서울지검 강력부의 조사를 받는 구씨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한국의 문화상품 참담한 현실

    1차 충돌이 있은 후 치러진 선거였기에 이때는 보다 많은 경찰이 동원됐으나 이의원측이 불참하면서 구씨가 손쉽게 회장에 당선되었다. 문제는 구씨 당선 뒤 일어났다. 구씨는 선거 때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사람을 협회 전무로 기용했다가 해임했다. 이 사람을 따르는 사람 중에 선거 때 인원을 동원하는 행동대 역할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선거 때의 인원 동원과 협회의 고질 비리를 사정당국에 알려주면서 김의원에 이어 구씨도 사법당국의 칼날을 받게 된 것이다. 구씨를 지지한 대의원 중에는 1960∼70년대 조폭계에 몸담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협회에 조폭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조폭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강력부가 나서게 된 것이다.

    국기원 자금 횡령이 커질 경우 연맹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여기서 정풍운동을 주도해온 사람들은 이 판을 벌이자고 정풍운동을 했는가라며 낙담하고 있다. 이들은 “태권도는 김운용씨 개인의 태권도가 아니다. 한국의 문화이자 도가 담긴 국기인데, 각종 비리로 얼룩지고 있다. 태권도인 전체가 조폭으로 매도되는 현실 앞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인 태권도가 언제 바로 설 것인가. 마루치 아라치를 꿈꾸는 태권 동자들의 눈망울엔 실망의 빛이 가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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