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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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선 다리가 각선미 찾았어요

통증 거의 없고 곧바로 일상생활 가능한 수술 노하우 … 레이저 치료는 흉터도 안 남아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06-04 1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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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줄 선 다리가 각선미 찾았어요

    혈관경화주사요법으로 하지정맥류를 치료하는 모습.

    다리에 퍼런 핏줄이 튀어나와 있어 여름에도 반바지나 치마를 입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하지정맥류’라고 불리는 이 질환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병명은 물론 심각한 질병이라는 사실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금만 서 있어도 다리가 붓고 저리며, 자주 쥐가 나는 것이 하지정맥류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었다. 하지정맥류는 수술시 위험성이 높은 전신마취나 척추마취를 해야 하고 수술 부위에 흉터가 크게 남아 대학병원에서도 “웬만하면 수술하지 말고 그대로 살라”고 권하는 질환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도 있는’ 질환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하지정맥류를 간단하게 치료해주는 전문 클리닉이 생겨나면서 많은 환자들이 새 생활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 특히 혈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하지정맥류 전문 클리닉을 개원하면서 보다 안전하고 간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 영등포구 신세계백화점 옆 미래흉부외과의원이 바로 그런 곳 중 하나다. 이 의원의 정원석 원장(연세대 의대 외래교수)은 흉부외과 전문의로, 지난해 7월 이 의원을 개원한 후 하지정맥류를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다. 정맥류 전문 클리닉으로 이름이 나면서 치료를 받기 위해 일부러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도 늘고 있다.

    정원장은 “하지정맥류는 심하면 궤양이나 습진을 일으키고 드물게는 심부전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해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하지정맥류는 어떤 질환이며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하지정맥류란 다리의 피부 밑에 위치한 정맥이 늘어나면서 구불구불하게 구부러져 뱀이나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질환으로, 심장에서 발끝까지 내려온 혈액(동맥)이 피부 근처의 정맥(표재정맥)을 타고 거꾸로 올라가는 도중에 어떤 이유로 인해 혈액의 양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발생한다. 혈액의 양이 증가하면 혈액의 역류를 막는 판막이 고장나고 정맥 내부의 압력이 올라가 혈관의 길이와 굵기가 원래 상태의 몇 배로 늘어나게 된다. 다리 밖으로 드러난 혈관이 지렁이 모양으로 얽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지정맥류는 피부 근처 표재정맥의 일부가 늘어나는 질환이다.

    다리 붓거나 쥐나는 증상도 말끔



    하지정맥류 환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다. 발목에서 허벅지에 이르기까지 푸른색의 정맥이 피부 밖으로 비쳐 보이기 시작한다면 일단 정맥류를 의심해야 한다. 핏줄의 색깔이 검푸른색으로 변하고 구불거리면서 튀어나오기 시작한다면 정맥류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심한 사람은 튀어나온 핏줄의 굵기가 1cm에 달하고 다리 전체에 핏줄이 퍼져 있는 경우도 있다.

    혈관이 팽창하면서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데다 다리에 필요 이상의 피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신체에 각종 이상반응이 나타난다. 조금만 서 있어도 다리가 붓거나 아프고, 밤에 누워 있으면 다리가 저리고 자주 쥐가 나는 증상이 바로 그것이다. 심하면 습진이 생겨 가렵기도 하고 궤양(염증)이 생겨 헐기도 한다. 간혹 다리에 혈관이 비치거나 튀어나오지 않은 사람 중에서도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역시 정맥류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사람의 혈관이 갑자기 늘어나고 굵어지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돼 있지 않으나 체질적, 유전적 원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오랫동안 서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교사·백화점 직원·미용사·이발사 등)에게 많이 생기고, 여성의 경우 특히 임신 등에 의해 많이 발생한다. 이 밖에 체중과다, 운동부족, 피임약 및 호르몬제 복용 등도 정맥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실제 미래흉부외과의원을 찾은 환자 중에는 20년간 다리 핏줄이 밖으로 심하게 비쳐 해수욕장에 가서도 긴 바지를 입었다는 이발사부터 아이를 낳은 뒤부터 정맥류가 생겨 5년 동안 통증에 시달려온 재단사, 20여년 전 아들을 낳은 뒤부터 핏줄이 튀어나오고 쥐가 나 고생했다는 식당 주인 등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거나 임신으로 인해 정맥류가 생긴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치료 후 이들의 다리에 있었던 핏줄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졌고 다리가 붓거나 쥐가 나는 증상도 없어졌다.

    정원장은 “정맥류가 있다고 해서 혈액순환제를 먹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최근에는 듀플렉스 칼라 초음파와 같은 최신 정맥류 진단 장비가 나와 있고, 흉터도 안 생기고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부담도 없는 첨단치료법이 개발되어 하루에 몇 시간만 투자하면 정맥류를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광범위 절제술(스트리핑)은 사타구니 부분에서 다리 아래쪽을 크게 절개, 정맥류의 원인이 되는 혈관과 정맥류가 발생한 혈관을 들어내야 하는 까닭에 장기 입원은 필수였다. 게다가 수술 후 흉터가 크게 남고 통증이 심한 데다 전신마취(또는 척추마취)를 해야 하는 위험도 뒤따라 고혈압과 같은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사람은 아예 수술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핏줄 선 다리가 각선미 찾았어요

    정맥류가 심하지 않은 사람은 주사요법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

    환자 위한 다양한 맞춤 수술법

    하지만 미래흉부외과의원을 찾은 정맥류 환자는 아무리 증세가 심해도 내원한 당일 몇 시간만 치료하면 걸어서 병원을 나설 수 있다. 게다가 수술을 받고 난 후 통증이 거의 없어 바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미래흉부외과의원의 가장 큰 특징은 환자에게 맞는 여러 가지 수술법을 복합적으로 사용한다는 점.

    모세혈관 확장증 같은 굵기가 가는 정맥류 환자에게는 수술하지 않고 문제의 혈관에 가는 주사를 이용해 경화제를 투입하는 주사요법을 쓴다. 이때 주입된 약물은 혈관을 굳히고, 굳어진 혈관은 자연스럽게 얇아져 몸에 흡수된다. 흉터가 전혀 남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굵은 정맥류에는 효과가 떨어진다.

    핏줄 선 다리가 각선미 찾았어요

    하지정맥류 전문 클리닉 미래흉부외과의원 정원석 원장.

    굵은 정맥류를 제거하는 방법에는 피부에 1~2mm의 구멍을 낸 뒤 구부러진 주사침 같은 기구를 이용해 문제의 혈관을 빼내는 미세절제술(보행적 정맥류 제거술, 주사침요법)과 혈관 안에 레이저기를 넣은 뒤 레이저를 쪼여 혈관을 굳히는 레이저 치료술이 있다. 두 수술법 모두 전신마취를 할 필요가 없고 수술 후 즉시 퇴원할 수 있지만 미세절제술이 정맥류의 원인이 되는 큰두렁정맥(대복재정맥)을 치료하는 데 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레이저 치료술은 흉터가 전혀 남지 않고 시술방법도 아주 간단해 많은 환자들이 선호한다.

    이 밖에 내시경 수술을 하듯 광원(불빛)을 피부 아래 조직에 넣고 정맥을 투시해 정맥 적출기를 이용해 정맥류 혈관을 갈아 제거한 후 밖으로 빨아내는 광투시 전동형 적출술도 있다. 흉터가 작게 남고 짧은 시간의 수술로 복잡하고 많은 정맥류의 대부분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다른 치료법에 비해 수술 후 회복기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다. 이 수술의 경우 다리가 붓고 멍이 많이 들며 수술 후 통증도 상대적으로 심하다.

    정원장은 “환자들 중 정맥을 굳히거나 잘라내면 오히려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며 “정맥류 수술 때 제거되는 정맥은 피부 표면 가까이에 있는 표재정맥으로 다리에서 올라오는 피의 10%밖에 담당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정맥류 수술을 하면서 반드시 다리 안쪽 깊숙이 자리잡은 심부정맥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 심부정맥은 다리에서 심장으로 가는 혈액 수송의 90% 이상을 담당하는데 여기에 이상이 있는 것을 모르고 정맥류 수술을 했다가는 환자들의 우려대로 낭패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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