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야(夜)의 ‘사모님’
지난 수년간 MBC 예능국에서 개그 프로그램의 연출을 배정받는다는 것은 PD들에게는 일종의 벌(?)이었다. 도무지 해법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그곳에 가봤자 ‘잘 해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MBC 내부에서조차 ‘개그 프로그램은 고사 위기에 처했다’라는 패배감이 팽배한 가운데 나온 이번 성과에 MBC는 환호하고 있고, 노 PD는 MBC 개그 프로그램 ‘부흥의 선장’으로 박수를 받고 있다.
올 상반기에 시작해 최근 종영된 MBC의 일일극 연출을 맡은 이모 PD는 삭발을 한 채 종방연에 나와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머리를 깎은 이유는 다름 아닌 시청률 때문. 경쟁사 프로그램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할 때 10%를 왔다갔다해야 했던 자신의 드라마에 대한 분풀이를 머리에 한 것이다. 별거 아니라면서도 연신 소주잔만 기울인 그가 털어놓는 이유는 서글플 정도다.
“시청률이 8% 정도 나온 날이었어요. 밤에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잠깐 화장실에 갔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갑자기 막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가위로 제 머리를 잘랐어요. 아내가 놀라더군요. 하하하.”
‘굳세어라 금순아’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주범은 역시 ‘시청률 지상주의’다. 시청률이 형편없는 프로그램은 가차 없이 조기 종영이라는 망신을 당한다. 그 어떤 명분도 매일 아침 책상에 배달되는 시청률 조사기관의 3사 프로그램 시청률 성적표를 이길 수 없는 것이 요즘 방송사들의 현실이다.
외주 제작사들이 자체 펀딩한 제작비로 만들어 공급하는 프로그램들이 방송사 내의 PD들을 압박하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도 힘든 부분이다. ‘창작의 장’이 되는 ‘드라마시티’, ‘베스트 극장’ 같은 공중파 방송사에 대한 신인 연출가들의 관심과 인기도 이젠 흘러간 노래가 됐다. 실험적인 접근 방식으로 참신한 단막극을 만드는 방송사의 전통 프로그램인 이들 프로그램은 웬만한 신인 한 명 캐스팅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조금이라도 얼굴이 알려진 신인들마저 바로 미니시리즈로 가려고 하지 시청률도 잘 안 나오는 단막극에는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
시청률 지상주의로 빠져들고 있는 방송계의 현실에 대해 한 중견 예능 PD는 “국장실 보드판에 적힌 ‘재미없으면 TV가 아니다’는 문구만 보면 가슴이 다 막힌다”면서 “프로그램의 무한경쟁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