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9일 인터넷 안티 자살 사이트를 통해 만난 30대 남자 김씨와 여고생 2명이 껴앉은 채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여기서 의문 하나. 평소 힌두교의 칼리와 시바신을 모시며 염세주의에 빠졌다는 김씨는 왜 혼자 죽지 않고 앞날이 창창한 여학생들에게 죽음을 가르친 뒤 자신의 죽음에 동반자로 삼았을까. 그 답을 얻기 위해 60년 전 슈테판 츠바이크의 죽음으로 돌아가보자.
1942년 브라질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치사량의 베로날을 삼키고 ‘어제의 세계’로 돌아갔다. 죽음의 동반자는 아내 샤로테 알트만이었다. 당시 츠바이크는 61세, 샤로테는 34세.
츠바이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시절(오스트리아 제국)에 대한 향수로 우울증에 시달렸고, 나이 공포증까지 있어 61세에 자살할 이유는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여비서였다가 아내가 된 27세 연하의 샤로테까지 죽을 이유는 없었다. ‘역사의 거울에 비친 세기의 자살자들’을 쓴 프리드리히 바이센슈타이너는, 츠바이크과 샤로테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유부단해서 하염없이 망설이는 햄릿형의 츠바이크는 혼자 죽을 용기가 없었고, 젊은 여비서는 맹목적으로 그에게 헌신했다. 죽음조차도 무조건 따를 만큼.’
1945년 권총으로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쏜 아돌프 히틀러의 옆에도 에바 브라운이 있었다. 히틀러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살이라는 도피를 택했지만 에바 브라운의 죽음은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을 남긴다. 그러나 동반자살에서 추종자의 죽음에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바이센슈타이너가 쓴 ‘역사의 거울에 비친 세기의 자살자들’은 근대 이후 자살한 유명인사 7명-고흐, 츠바이크, 헤밍웨이, 클라이스트, 히틀러, 롬멜, 루돌프 황태자-의 짧은 전기다. 고흐는 정신적 절망 상태에서 자살했고, 앞서 소개한 츠바이크는 세상에 대한 혐오로, 세기의 마초였던 헤밍웨이는 만년에 육체적인 한계에 부딪히자 결국 자살을 택했다. 역시 천재적 창조력을 지녔던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동시대에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비관 끝에 자살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영웅이었던 육군원수 롬멜은 엄밀한 의미의 자살로 보기 어렵다. 그는 히틀러 테러의 공모자로 몰려 정치적으로 ‘자살’을 종용받았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히틀러가 자살을 선택했듯 히믈러, 괴링, 괴벨 등 전범들이 그 뒤를 따랐다.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황태자처럼 세기말의 징후를 일찌감치 깨닫고 어린 애인 마리와 함께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경우도 있다.
바이센슈타이너가 개인의 죽음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스트리아 역사가인 게르트 미슐러는 자살의 사회적·시대적 배경을 연구했다. ‘자살의 문화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자살)를 구속했거나 여전히 구속하고 있는 사회, 정치, 종교, 윤리적 주장과 강요들을 정리한 책이다. 즉 어느 시대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자유로웠지만, 다른 시대에는 자살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금지했다.
심지어 중세 유럽에서는 자살을 신에 대한 모독으로 해석하고 자살한 자의 시체 훼손이나 재산 몰수를 통해 자살을 막으려고 했다. 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인구 감소로 한 사람의 노동력도 아쉬웠던 중세 봉건체제가 신을 내세워 자살로써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하층민들을 막으려 했다고 해석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대적 상황에 의해, 혹은 그 사회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삶을 포기할 권리’가 철저히 이용당했다고 주장한다. 개인을 자살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사회나, 자살을 경멸하고 금지하는 사회나 모두 인간을 모독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 저자는 ‘스스로의 삶에 종지부를 찍어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자는 과격한 주장에 무게를 두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전에 ‘개인을 자살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사회적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인터넷 자살 사이트와 같은 역효과를 내지 않길 바라며.
자살의 문화사/ 게르트 미슐러 지음/ 유혜자 옮김/ 시공사 펴냄/ 268쪽/ 8500원
역사의 거울에 비친 세기의 자살자들/ 프리드리히 바이센슈타이너 지음/ 신혜원 옮김/ 한숲 펴냄/ 248쪽/ 1만2000원
여기서 의문 하나. 평소 힌두교의 칼리와 시바신을 모시며 염세주의에 빠졌다는 김씨는 왜 혼자 죽지 않고 앞날이 창창한 여학생들에게 죽음을 가르친 뒤 자신의 죽음에 동반자로 삼았을까. 그 답을 얻기 위해 60년 전 슈테판 츠바이크의 죽음으로 돌아가보자.
1942년 브라질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치사량의 베로날을 삼키고 ‘어제의 세계’로 돌아갔다. 죽음의 동반자는 아내 샤로테 알트만이었다. 당시 츠바이크는 61세, 샤로테는 34세.
츠바이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시절(오스트리아 제국)에 대한 향수로 우울증에 시달렸고, 나이 공포증까지 있어 61세에 자살할 이유는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여비서였다가 아내가 된 27세 연하의 샤로테까지 죽을 이유는 없었다. ‘역사의 거울에 비친 세기의 자살자들’을 쓴 프리드리히 바이센슈타이너는, 츠바이크과 샤로테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유부단해서 하염없이 망설이는 햄릿형의 츠바이크는 혼자 죽을 용기가 없었고, 젊은 여비서는 맹목적으로 그에게 헌신했다. 죽음조차도 무조건 따를 만큼.’
1945년 권총으로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쏜 아돌프 히틀러의 옆에도 에바 브라운이 있었다. 히틀러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살이라는 도피를 택했지만 에바 브라운의 죽음은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을 남긴다. 그러나 동반자살에서 추종자의 죽음에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바이센슈타이너가 쓴 ‘역사의 거울에 비친 세기의 자살자들’은 근대 이후 자살한 유명인사 7명-고흐, 츠바이크, 헤밍웨이, 클라이스트, 히틀러, 롬멜, 루돌프 황태자-의 짧은 전기다. 고흐는 정신적 절망 상태에서 자살했고, 앞서 소개한 츠바이크는 세상에 대한 혐오로, 세기의 마초였던 헤밍웨이는 만년에 육체적인 한계에 부딪히자 결국 자살을 택했다. 역시 천재적 창조력을 지녔던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동시대에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비관 끝에 자살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영웅이었던 육군원수 롬멜은 엄밀한 의미의 자살로 보기 어렵다. 그는 히틀러 테러의 공모자로 몰려 정치적으로 ‘자살’을 종용받았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히틀러가 자살을 선택했듯 히믈러, 괴링, 괴벨 등 전범들이 그 뒤를 따랐다.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황태자처럼 세기말의 징후를 일찌감치 깨닫고 어린 애인 마리와 함께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경우도 있다.
바이센슈타이너가 개인의 죽음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스트리아 역사가인 게르트 미슐러는 자살의 사회적·시대적 배경을 연구했다. ‘자살의 문화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자살)를 구속했거나 여전히 구속하고 있는 사회, 정치, 종교, 윤리적 주장과 강요들을 정리한 책이다. 즉 어느 시대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자유로웠지만, 다른 시대에는 자살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금지했다.
심지어 중세 유럽에서는 자살을 신에 대한 모독으로 해석하고 자살한 자의 시체 훼손이나 재산 몰수를 통해 자살을 막으려고 했다. 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인구 감소로 한 사람의 노동력도 아쉬웠던 중세 봉건체제가 신을 내세워 자살로써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하층민들을 막으려 했다고 해석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대적 상황에 의해, 혹은 그 사회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삶을 포기할 권리’가 철저히 이용당했다고 주장한다. 개인을 자살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사회나, 자살을 경멸하고 금지하는 사회나 모두 인간을 모독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 저자는 ‘스스로의 삶에 종지부를 찍어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자는 과격한 주장에 무게를 두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전에 ‘개인을 자살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사회적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인터넷 자살 사이트와 같은 역효과를 내지 않길 바라며.
자살의 문화사/ 게르트 미슐러 지음/ 유혜자 옮김/ 시공사 펴냄/ 268쪽/ 8500원
역사의 거울에 비친 세기의 자살자들/ 프리드리히 바이센슈타이너 지음/ 신혜원 옮김/ 한숲 펴냄/ 248쪽/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