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유하는 1991년 압구정동을 ‘욕망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는 쇼윈도’라고 표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압구정의 ‘욕망’은 한층 물신(物神)에 다가섰다. 압구정동은 이제 ‘성형외과의 거리’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면 어떤 방향을 보아도 서너 곳의 성형외과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압구정 사거리를 중심으로 해서 동쪽으로 청담 사거리, 서쪽으로 신사 사거리까지 약 3km 반경 사이에 200여곳의 성형외과가 몰려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형특구’를 형성하고 있는 것. 전국 500여개 성형외과 중 40%가 집중되어 있는 이 지역은 한 건물에 두 곳의 성형외과가 입주해 있거나 건물 전체가 성형외과인 곳이 적지 않다.
이 많은 성형외과에서는 매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남녀 두 기자가 손님을 가장하고 4월 마지막 주 며칠 동안 압구정동 성형타운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기자는 몇 군데의 병원을 돌아다닌 뒤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인상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하겠다’며 상담에 나선 기자에게 돌아온 의사들의 반응은 이렇다.
“부드러운 인상을 원한다면 쌍꺼풀 수술보다도 코뼈를 깎으세요. 턱이 뒤로 들어가 있으니까 턱을 앞으로 빼는 수술까지 하시면 더 낫겠습니다. 눈 코 턱 세 부위에 대한 수술비는 700만원입니다.”(J성형외과 박모 원장)
“쌍꺼풀 수술을 하면 인상이 부드러워지는 게 아니라 더 강해져요. 다른 데도 굳이 고칠 데는 없겠는데요. 쌍꺼풀 수술비는 150만원입니다.”(K성형외과 김모 원장)
“눈 사이가 멀어 인상이 강해 보이는 겁니다. 쌍꺼풀 수술 외에 눈 앞쪽을 트는 수술까지 하세요. 턱 수술도 하시면 더 좋겠죠. 300만원에 세 가지 수술이 다 됩니다.”(G성형외과 최모 원장)
‘수술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의사부터 ‘아예 다 뜯어고치라’는 의사까지, 의사들의 말은 수술비 차이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기자가 한 번도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턱을 고치라는 권유였다.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턱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은 이미 얼굴에 대한 자신이 없어 성형외과를 찾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할 것이다.
과잉 진료, 즉 여러 가지 수술을 권하는 것은 압구정 성형타운이 가지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의사들은 대개 ‘하는 김에 한꺼번에 해라’든가 ‘쌍꺼풀 하고 나면 코도 고치고 싶어질 거다’는 식으로 환자에게 수술을 권한다.
성형외과 전문의 장모씨는 “요즘 환자들은 영악해 의사가 권한다고 다 하지 않는다. 얼굴 전체를 고치는 사람은 연예인이나 연예인 지망생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번 수술한 후 다시 수술하는 경우는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처음 수술하기가 어렵지 한 번 해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은 사람은 자신감을 얻어 다시 하려고 하죠.” A성형외과 박모 원장의 말이다. 그는 “강남 지역에 사는 20, 30대 여성은 대부분 성형수술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복부의 지방흡입 수술 여부를 묻기 위해 압구정 성형외과를 방문한 다른 기자가 들은 말은 이보다 더 충격적이다.
“650만원만 내십시오. 정말 싸게 해드리는 겁니다. 4~5kg은 너끈히 빼드릴 수 있습니다. 수술 부작용도 거의 없습니다.”(J성형외과 이모 원장)
“400만원이면 가능하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원래 지방흡입술이 남성들에겐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1kg 정도 빠지겠는데, 글쎄요….”(H성형외과 하모 원장)
심지어는 성형외과의 진료과목이 아닌 성기보형술을 권하는 곳까지 있었다. “길이 2cm 늘리는 데 200만원, 두께를 두껍게 하는 데 250만원이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성기보형술은 사실 비뇨기과 분야가 아니라 성형외과 분야죠.” 30대 후반의 이 성형외과 의사는 성기보형술을 해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이미 성기보형술을 한 환자의 수술 전후 사례를 차례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수술 후 얼굴이 어떻게 변하며 부기와 흉터가 언제 없어지는지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부작용이나 의료사고의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수술 실패의 가능성에 대해 물으면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든가 ‘마음에 안 들면 재수술하면 된다’는 식으로 막연히 이야기할 뿐이었다. 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 국광식 대변인은 “이는 명백한 의사의 직무 유기며, 의료사고시 의사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못박았다.
놀라운 사실은 성형외과 대기실에서 수술이나 상담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여느 여성들보다 더 예쁘다는 점이다. G성형외과 대기실에서 만난, 큰 눈에 귀여운 인상의 이모씨(22)는 코를 세우고 싶어 왔다고 했다. 함께 온 어머니 역시 “애가 원하니까 시켜주려고요” 하고 순순히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수술 날짜를 잡은 박모씨(24) 역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그녀는 수술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아예 그만두었다. 수술 후 열흘 정도 걸리는 통원치료 기간에는 서울의 친척집에 머물 예정이란다. “친척집에서 괜찮다고 하시나요?”라고 묻자 “그 댁도 이미 이곳에서 성형을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자들만 압구정 성형타운을 찾는 것은 아니다. 원빈이나 배용준 사진을 들고 ‘꽃미남’이 되겠다고 찾아 나선 20대에서부터 눈 밑 주름을 제거해 회춘을 시도하려는 50, 60대에 이르기까지, 남성 고객이 전체 성형 수요의 10~20%를 점하고 있다. 압구정 C성형외과에서 마주친 50대 중반의 김모 교수(M대 경영학과)는 눈 밑 지방과 이마의 주름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학생들에게 늙은 교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괴로운 일이죠. 자신감도 없어지고…. 딸이 얼마 전 이 클리닉에서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잘한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온 김씨는 “원장이 복부 지방흡입 수술까지 하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한다.
압구정동에 200곳이 넘는 성형외과들이 생겨난 것은 97년 IMF사태를 맞으면서부터다. 그 전까지는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인근에 서너 곳 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불경기가 시작되면서 몇몇 성형외과들이 ‘그래도 강남이 조금은 낫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압구정동에 모여들었고, 이후 성형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의사들 대다수가 압구정동에 개원하면서 이 일대는 삽시간에 성형타운으로 변모했다.
국광식 대변인은 압구정동에 성형외과들이 몰리는 이유에 대해 경제력과 접근성 두 가지를 꼽았다. 즉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성형수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으므로 부(富)의 대명사인 압구정동은 성형외과가 자리잡기에 가장 유리하다. 동시에 강남과 강북 어디서나 접근이 용이하고 지방에서 고속버스 편으로 상경하는 환자들까지도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압구정 일대의 성형외과들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자 새로 개업하는 성형외과들은 강남역 일대로 진출하고 있다.
압구정 성형타운의 수술비는 타 지역 성형외과보다 비싸다는 것이 정설이다. A성형외과 박모 원장은 “의사의 인지도와 기술력, 병원의 브랜드 이미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압구정 성형타운에서 의사의 이름은 이미 하나의 브랜드다. 사람들이 비싸도 좋은 브랜드의 옷을 찾는 것처럼 유명한 의사에게 수술받을 수 있다면 100만원 정도의 비용차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한 여성은 “같은 코 수술을 해도 신촌에서 170만원이라면 압구정동에서는 25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은 밤시간 이용해 수술
박모 원장은 압구정동이 ‘성형특구’가 된 현실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낸 현상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만클리닉은 환영받고 있는데 왜 성형외과 의사는 비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미용산업 발전의 한 측면으로 보아달라”고 말했다. 그는 “성형외과 의사도 인술을 베푸는 의사인데 사업적인 측면만 강조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요즘 누가 의사의 명예를 알아주기나 하나요? 이제는 의사보고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도 않는 세상인데요”라면서 혀를 찼다.
압구정 성형타운의 네온사인은 거리에 완전히 어둠이 내린 후에도 꺼지지 않는다. 4월25일 밤 11시 압구정 네거리 J성형외과. 압구정 성형타운에서 가장 고객이 많다는 이곳에서는 그 시간에도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기 환자 중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밤늦은 시간에 수술받는 이유를 물었더니 “아는 사람과 부딪치는 게 싫어서”라고 답한다. 그녀는 “주로 밤시간엔 연예인 등 유명한 사람들이 수술받기 때문에 일정을 잡기가 더 힘들다”며 “웬만해선 안 해 주는데 아빠가 아는 사람을 통해 힘써주어 지금 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간호사에게 “하루에 15시간씩 수술해도 선생님은 괜찮은 모양이지요?”라고 물었더니 “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핀잔을 준다. ‘하루에 20건씩 수술해 본 적도 있다’던 S성형외과 원장의 말이 실감났다.
그 시각 인근 도로에는 연예인이 주로 타고 다니는 외제 고급 밴이 한 대 서 있었다. 하지만 밴의 주인은 새벽 1시가 넘어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J성형외과에는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아가씨들의 발길이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면 어떤 방향을 보아도 서너 곳의 성형외과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압구정 사거리를 중심으로 해서 동쪽으로 청담 사거리, 서쪽으로 신사 사거리까지 약 3km 반경 사이에 200여곳의 성형외과가 몰려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형특구’를 형성하고 있는 것. 전국 500여개 성형외과 중 40%가 집중되어 있는 이 지역은 한 건물에 두 곳의 성형외과가 입주해 있거나 건물 전체가 성형외과인 곳이 적지 않다.
이 많은 성형외과에서는 매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남녀 두 기자가 손님을 가장하고 4월 마지막 주 며칠 동안 압구정동 성형타운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기자는 몇 군데의 병원을 돌아다닌 뒤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인상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하겠다’며 상담에 나선 기자에게 돌아온 의사들의 반응은 이렇다.
“부드러운 인상을 원한다면 쌍꺼풀 수술보다도 코뼈를 깎으세요. 턱이 뒤로 들어가 있으니까 턱을 앞으로 빼는 수술까지 하시면 더 낫겠습니다. 눈 코 턱 세 부위에 대한 수술비는 700만원입니다.”(J성형외과 박모 원장)
“쌍꺼풀 수술을 하면 인상이 부드러워지는 게 아니라 더 강해져요. 다른 데도 굳이 고칠 데는 없겠는데요. 쌍꺼풀 수술비는 150만원입니다.”(K성형외과 김모 원장)
“눈 사이가 멀어 인상이 강해 보이는 겁니다. 쌍꺼풀 수술 외에 눈 앞쪽을 트는 수술까지 하세요. 턱 수술도 하시면 더 좋겠죠. 300만원에 세 가지 수술이 다 됩니다.”(G성형외과 최모 원장)
‘수술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의사부터 ‘아예 다 뜯어고치라’는 의사까지, 의사들의 말은 수술비 차이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기자가 한 번도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턱을 고치라는 권유였다.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턱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은 이미 얼굴에 대한 자신이 없어 성형외과를 찾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할 것이다.
과잉 진료, 즉 여러 가지 수술을 권하는 것은 압구정 성형타운이 가지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의사들은 대개 ‘하는 김에 한꺼번에 해라’든가 ‘쌍꺼풀 하고 나면 코도 고치고 싶어질 거다’는 식으로 환자에게 수술을 권한다.
성형외과 전문의 장모씨는 “요즘 환자들은 영악해 의사가 권한다고 다 하지 않는다. 얼굴 전체를 고치는 사람은 연예인이나 연예인 지망생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번 수술한 후 다시 수술하는 경우는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처음 수술하기가 어렵지 한 번 해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은 사람은 자신감을 얻어 다시 하려고 하죠.” A성형외과 박모 원장의 말이다. 그는 “강남 지역에 사는 20, 30대 여성은 대부분 성형수술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복부의 지방흡입 수술 여부를 묻기 위해 압구정 성형외과를 방문한 다른 기자가 들은 말은 이보다 더 충격적이다.
“650만원만 내십시오. 정말 싸게 해드리는 겁니다. 4~5kg은 너끈히 빼드릴 수 있습니다. 수술 부작용도 거의 없습니다.”(J성형외과 이모 원장)
“400만원이면 가능하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원래 지방흡입술이 남성들에겐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1kg 정도 빠지겠는데, 글쎄요….”(H성형외과 하모 원장)
심지어는 성형외과의 진료과목이 아닌 성기보형술을 권하는 곳까지 있었다. “길이 2cm 늘리는 데 200만원, 두께를 두껍게 하는 데 250만원이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성기보형술은 사실 비뇨기과 분야가 아니라 성형외과 분야죠.” 30대 후반의 이 성형외과 의사는 성기보형술을 해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이미 성기보형술을 한 환자의 수술 전후 사례를 차례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수술 후 얼굴이 어떻게 변하며 부기와 흉터가 언제 없어지는지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부작용이나 의료사고의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수술 실패의 가능성에 대해 물으면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든가 ‘마음에 안 들면 재수술하면 된다’는 식으로 막연히 이야기할 뿐이었다. 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 국광식 대변인은 “이는 명백한 의사의 직무 유기며, 의료사고시 의사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못박았다.
놀라운 사실은 성형외과 대기실에서 수술이나 상담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여느 여성들보다 더 예쁘다는 점이다. G성형외과 대기실에서 만난, 큰 눈에 귀여운 인상의 이모씨(22)는 코를 세우고 싶어 왔다고 했다. 함께 온 어머니 역시 “애가 원하니까 시켜주려고요” 하고 순순히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수술 날짜를 잡은 박모씨(24) 역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그녀는 수술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아예 그만두었다. 수술 후 열흘 정도 걸리는 통원치료 기간에는 서울의 친척집에 머물 예정이란다. “친척집에서 괜찮다고 하시나요?”라고 묻자 “그 댁도 이미 이곳에서 성형을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자들만 압구정 성형타운을 찾는 것은 아니다. 원빈이나 배용준 사진을 들고 ‘꽃미남’이 되겠다고 찾아 나선 20대에서부터 눈 밑 주름을 제거해 회춘을 시도하려는 50, 60대에 이르기까지, 남성 고객이 전체 성형 수요의 10~20%를 점하고 있다. 압구정 C성형외과에서 마주친 50대 중반의 김모 교수(M대 경영학과)는 눈 밑 지방과 이마의 주름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학생들에게 늙은 교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괴로운 일이죠. 자신감도 없어지고…. 딸이 얼마 전 이 클리닉에서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잘한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온 김씨는 “원장이 복부 지방흡입 수술까지 하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한다.
압구정동에 200곳이 넘는 성형외과들이 생겨난 것은 97년 IMF사태를 맞으면서부터다. 그 전까지는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인근에 서너 곳 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불경기가 시작되면서 몇몇 성형외과들이 ‘그래도 강남이 조금은 낫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압구정동에 모여들었고, 이후 성형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의사들 대다수가 압구정동에 개원하면서 이 일대는 삽시간에 성형타운으로 변모했다.
국광식 대변인은 압구정동에 성형외과들이 몰리는 이유에 대해 경제력과 접근성 두 가지를 꼽았다. 즉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성형수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으므로 부(富)의 대명사인 압구정동은 성형외과가 자리잡기에 가장 유리하다. 동시에 강남과 강북 어디서나 접근이 용이하고 지방에서 고속버스 편으로 상경하는 환자들까지도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압구정 일대의 성형외과들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자 새로 개업하는 성형외과들은 강남역 일대로 진출하고 있다.
압구정 성형타운의 수술비는 타 지역 성형외과보다 비싸다는 것이 정설이다. A성형외과 박모 원장은 “의사의 인지도와 기술력, 병원의 브랜드 이미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압구정 성형타운에서 의사의 이름은 이미 하나의 브랜드다. 사람들이 비싸도 좋은 브랜드의 옷을 찾는 것처럼 유명한 의사에게 수술받을 수 있다면 100만원 정도의 비용차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한 여성은 “같은 코 수술을 해도 신촌에서 170만원이라면 압구정동에서는 25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은 밤시간 이용해 수술
박모 원장은 압구정동이 ‘성형특구’가 된 현실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낸 현상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만클리닉은 환영받고 있는데 왜 성형외과 의사는 비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미용산업 발전의 한 측면으로 보아달라”고 말했다. 그는 “성형외과 의사도 인술을 베푸는 의사인데 사업적인 측면만 강조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요즘 누가 의사의 명예를 알아주기나 하나요? 이제는 의사보고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도 않는 세상인데요”라면서 혀를 찼다.
압구정 성형타운의 네온사인은 거리에 완전히 어둠이 내린 후에도 꺼지지 않는다. 4월25일 밤 11시 압구정 네거리 J성형외과. 압구정 성형타운에서 가장 고객이 많다는 이곳에서는 그 시간에도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기 환자 중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밤늦은 시간에 수술받는 이유를 물었더니 “아는 사람과 부딪치는 게 싫어서”라고 답한다. 그녀는 “주로 밤시간엔 연예인 등 유명한 사람들이 수술받기 때문에 일정을 잡기가 더 힘들다”며 “웬만해선 안 해 주는데 아빠가 아는 사람을 통해 힘써주어 지금 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간호사에게 “하루에 15시간씩 수술해도 선생님은 괜찮은 모양이지요?”라고 물었더니 “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핀잔을 준다. ‘하루에 20건씩 수술해 본 적도 있다’던 S성형외과 원장의 말이 실감났다.
그 시각 인근 도로에는 연예인이 주로 타고 다니는 외제 고급 밴이 한 대 서 있었다. 하지만 밴의 주인은 새벽 1시가 넘어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J성형외과에는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아가씨들의 발길이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