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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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의 힘으로 中 공산정부 해체?

미국 망명 정융 씨가 만든 ‘희망지성’ 방송 … 진실 전달 통해 정부 전복 노려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8-05-19 18: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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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의 힘으로 中 공산정부 해체?

    서울시내 모처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희망지성’ 한국어 방송을 녹음하는 김경아 씨. 김씨는 중국 공산정부 해체가 이 방송의 목표라고 말했다.

    희망지성’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한국 축구의 희망’ 박지성 선수를 위한 단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자를 보니 ‘希望之聲’이고, 영어로는 ‘Sound of Hope(SOH)’였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희망의 소리 방송’ 정도가 된다. 미국을 대표하는 단파 방송인 VOA(Voice of America·미국의 소리 방송)와 같은 작법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많은 사람들은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 정부를 거대하게 생각하지만 희망지성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중국 공산정부가 자국민 탄압이라는 자체 모순에 빠져 헐떡이는 공룡이 돼가고 있다고 여긴다. 놀랍게도 이들은 중국 공산정부를 타도(?)하자는 혁명적인 발상을 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망명정부(www.tibet.com)가 있다는 것은 알아도 중국과도정부(www.chinainterimgov.org)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의필승(正義必勝)’과 ‘해체중공(解體中共)’을 내세운 이 과도정부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대학교수로 있다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에 참여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한 우판(伍凡·Wu Fan) 씨를 대통령으로 한 조직이다. 우판 씨는 뉴욕에 거주하며 개인적으로 www.chinaaffairs.

    org라는 반(反) 중국 공산정부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세계 20여 개국 40여 도시에 지사



    우판 씨가 이끄는 중국과도정부는 통치할 국민도 없는 ‘종잇장 정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은 ‘평시’에는 중국 공산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주력하고, 중국 공산정부가 무너지는 ‘유사시’에는 중국에 들어가 중국민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민주정부를 세울 때까지 위기관리를 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우판 대통령이 이끄는 중국과도정부 소식을 가장 열심히 전달하는 매체가 바로 이 ‘희망지성’이다. 희망지성도 중국 톈안먼 사태에 참여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정융(曾勇·미국 이름 Allen Zeng) 씨가 2003년 6월 만들었다. 정융 씨는 VOA(미국의 소리)와 RFA(Radio Free Asia·자유 아시아) 등에서 중국 민주화를 요구하는 방송을 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희망지성 방송을 만들었다. 이 방송은 VOA, RFA와 마찬가지로 단파 라디오 방송이다.

    ‘단파’는 우리에겐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북한 간첩사건이 터질 때마다 ‘간첩이 단파 라디오를 갖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곤 했었다. 그렇다면 희망지성이 단파를 이용해 방송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 답은 중국이 너무 큰 나라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단파는 태평양 같은 대양도 건너갈 수 있는 ‘강력한’ 전파다. 북한 공작조직이 공작원들과의 송수신에 단파를 사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한국(남한)은 지름 500km의 원에 국토 대부분이 들어오는 작은 나라다. 고속도로를 따라 도시에서 도시가 이어지는 콤팩트한 나라이다 보니 한국에서는 ‘주파수 변조’로 번역되는 FM 라디오 방송이 발전했다. FM 방송은 음악 송출에 적합할 정도로 음질은 좋은 반면, 도달거리는 짧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중국은 남한의 100배에 이르는 땅덩어리를 갖고 있다. 신장(위구르)이나 시짱(티베트) 같은 변두리 지역에서는 수십km 달려가야 동네 하나가 나올까 말까 한 곳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중국은 오지에 사는 사람들도 들을 수 있도록 라디오 방송을 단파로 송출한다. 단파는 좋은 음질을 요구하는 음악방송보다는 뉴스 등 소식을 전달하는 데 적합한 매체다.

    한국에서는 북한과의 대립 때문에 법으로 단파 방송을 금하고 있어 단파 라디오를 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지천으로 널린 게 단파 라디오다. SOH 방송은 ‘단파의 천국’ 중국에 뛰어들어, 그들 처지에서는 ‘희망’이지만 중국 공산정부 처지에서는 ‘전복(顚覆)’에 해당하는 소식을 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방송과 중국 당국 사이에서는 ‘창과 방패의 전쟁’이 벌어진다.

    SOH는 현재 세계 20여 개국 40개 도시에 지사를 두고 있는데, 한국에는 2006년 10월 지사를 개국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관련법에 따라 단파 방송 송출을 금지하므로 한국 SOH는 전파를 쏘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지사가 한국어로 방송 내용을 녹음해 본사로 보내주면, 본사에서는 절대 위치를 밝힐 수 없는 태평양의 모처에서 이를 쏘아준다는 것이다. SOH는 중국어로 7시간, 한국어로 1시간 전파를 송출한다.

    라디오의 힘으로 中 공산정부 해체?

    미국에서 만들어진, 우판 씨를 대통령으로 한 중국과도정부 사이트. 이들도 중국 공산정부 해체를 위한 다양한 자료를 내놓고 있다.

    SOH는 한국보다 1시간 늦은, 중국 시간으로 매일 오후 5~6시 1만1750kHz로 한국어 방송을 내보낸다. SOH의 한국어 방송은 조선족을 위한 것이다. 희망지성의 이러한 공격에 대해 중국 당국은 ‘왈왈왈’ 소리가 난다고 해서 개구리 울음이라 불리는 방해전파를 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방해전파는 전파를 쏘는 것보다 10배 정도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따라서 청자(聽者)가 많은 대도시 지역에서만 방해전파를 쏘고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희망지성 방송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파룬궁(法輪功)을 하다 장쩌민(江澤民) 주석 시절 중국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희망지성 방송과 파룬궁 조직은 별개라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희망지성 방송은 4월27일 서울에서 봉송에 들어간 베이징올림픽 성화를 지키기 위해 중국 유학생들이 폭력을 휘둘렀을 때 주목을 받았다. 이 방송은 중국이 학생들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폭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예고방송을 했었다.

    그리고 이 방송은 4월10일 자체 사이트(www.soundofhope.org)를 통해 홍콩에 거주하는 예언가 리쥐밍(李居明) 씨의 말을 인용해 “올해 중국에서는 3개의 시한폭탄이 폭발할 것이다”라며 “이 폭탄은 천재인화, 테러, 지진과 해일, 증권 재앙과 항공기 사고 등일 것”이라고 알리고, 같은 내용을 4월23일 방송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됐는지, 리쥐밍 씨가 예언한 날짜군(群)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5월12일 중국 쓰촨(四川)성에서는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올림픽 성화 봉송 서울 시위대 소식도 예고방송

    희망지성은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더욱 탄탄한 지배구조를 구축하고자 하는 중국 공산정부를 밑동부터 흔드는 심리전을 펴고 있다. 따라서 중국 당국은 중국인들이 이 방송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게 차단하고 있다. 이러한 방송 조직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인으로 구성된 방송팀과 취재진으로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중국 관련 소식을 모아 녹음한 뒤 제3국을 통해 한국어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미국 정보기관 등에서 자금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해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중국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단체가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 못지않은 서방국가 반열에 올랐다. 중국 인권과 민주화 요구 단체들이 이렇게 움직인다면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단체들의 움직임도 커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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