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어윈 노먼(1929~2004)은 모 노먼(Moe Norman)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캐나다 프로골퍼다. 온타리오 주에서 태어난 그는 수줍고 성급한 성미 탓에 사람들과 사귀지 못했을뿐더러 평생 고향을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미국 프로골프협회(PGA)투어에서는 활동하지 못하고 캐나다투어에서만 뛰며 55승을 거뒀다.
다섯 살 되던 해인 1934년 노먼은 집 근처 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놀다 교통사고를 당해 뇌에 손상을 입었는데, 사고 여파로 자폐증을 앓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자라면서 노먼은 더욱 수줍어하고, 늘 불안해했으며, 성인이 된 뒤에는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살았다.
노먼은 사람들의 관심 자체를 질색했다. 1949년 세인트토머스 골프 &컨트리클럽 인비테이셔널에서 첫 승을 거뒀을 때는 시상식에도 불참했다. 남들 앞에 서는 것이 싫어서였다. 55년 캐나다 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고도 수상 연설이 두려워 근처 강변에 숨어 있었을 정도다. 몇 차례 되지 않는 미국 대회 출전 중 56년 마스터스대회가 특별했다. 당시 최고 주가를 달리던 미국 샘 스니드는 연습장에서 노먼에게 “롱아이언 샷을 할 때는 쓸어내듯 하라”고 조언했다. 노먼은 해가 저물도록 연습에만 몰두했다. 다음 날 팔이 너무 아파 클럽을 쥘 수 없을 정도였고, 결국 아홉 홀을 마치고 기권했다.
1963년에는 드라이빙레인지 홍보 행사에 참여했다 7시간 동안 1400여 번 샷을 했는데, 16초에 한 번꼴이었다. 그러고는 나흘 동안 주먹을 쥐지 못했다. 플레이 중에도 급한 성격이 튀어나왔다. 공을 그린에 올렸다 싶으면 라인을 볼 새도 없이 퍼트를 마쳤다. 라운드 중에도 뭔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노먼의 샷은 누구나 찬탄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모 노먼과 벤 호건은 자신만의 스윙이 있는데, 나도 나만의 스윙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파이프라인(pipeline)’이라는 별명처럼 그의 공은 항상 똑바르게 날아갔다. 평생 17개의 홀인원에 33번의 코스 레코드 기록을 달성했다.
그의 스윙 자세는 특이하지만 놀라운 일관성이 있었다. 스탠스를 넓게 벌리고, 다리는 쇠꼬챙이처럼 곧게 폈으며, 팔은 앞으로 쭉 내밀어 뻗었다. 짧은 백스윙에 이어 채찍을 휘두르듯 임팩트를 했는데 손목을 꺾지 않는 이른바 ‘원플레인(one plane)’ 스윙은 결코 달라지는 법이 없었다. 샷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1971년 캐나다오픈을 앞둔 연습 라운드에서 노먼은 233야드(약 213m) 10번 홀에서 드라이버 샷을 한 후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퍼팅 안 해.” 그린에 떨어진 공은 굴러서 홀컵으로 들어갔다.
수줍은 성격, 플레이를 빨리해야 한다는 강박증, 그리고 자신에 대한 관심을 불편하게 여기는 기질 때문에 노먼은 골프선수로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은행을 믿지 않았고 돈을 허투루 썼다. 자동차 안이나 벙커 또는 공원 벤치에서 예사로이 잠을 잤다. 1980년대 이후로는 늘 빚에 쪼들렸다. 95년 PGA용품쇼에서 만난 월리 율라인 타이틀리스트 총괄사장 덕에 노후는 그나마 나았다. 타이틀리스트는 그에게 평생 매달 5000달러(약 566만7500원)를 무상으로 지급했다.
2004년 노먼이 세상을 떠났을 때 유품 정리를 맡은 친구가 캐딜락 트렁크를 열자 신문 스크랩과 공 1000여 개, 신발 10켤레, 아이언 3세트, 그리고 지폐 2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노먼은 평생 외톨이처럼 지냈지만, 그가 생전에 좋아하던 노래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마이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