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유행하는 계절이 오면 독감 예방주사나 감기약에 대해 걱정하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그중 하나가 얼마 전 보도된 ‘감기약을 비타민C와 함께 복용하면 몸 안에서 벤젠이 생성돼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많은 양의 벤젠을 뿜어낸다고 알려진 자동차 배기가스나 담배는 가까이 접하면서 유독 감기약에만 예민하게 반응한다. 또 실험실에서나 가능한 화학반응이 몸속에서 그대로 일어날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위 속설의 경우 감기약에 함유된 보존제 ‘벤조산나트륨’과 비타민C가 만나면 벤젠이 만들어진다는 논리인데, 이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실험실에서도 소량만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비타민C를 벤조산나트륨이 들어 있는 감기약과 함께 섭취한다 해도 몸 안에서 이러한 반응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합성비타민을 먹으면 암에 걸린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로 기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쌀쌀한 바람이 불 때 알아둬야 할 감기약 복용 상식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감기약이 감기를 ‘예방’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감기약을 사러 오는 사람에게 증상을 물어보면 대부분 TV 광고에서 본 익숙한 이름의 종합감기약을 달라고 한다. 이는 잘못된 습관이다.
종합감기약에는 해열제, 콧물감기약, 기침약 등 여러 성분이 함유돼 있다. 특정 증상과 관련 없는 성분을 한꺼번에 복용할 경우 아무런 이득 없이 부작용만 얻게 된다. 같은 코감기라 할지라도 누구는 콧물이 줄줄 나는 반면, 또 누구는 두통을 동반한 코막힘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맞춰 적절한 성분의 약을 골라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콧물이 조금 나거나 목이 약간 아프기만 해도 앞으로 심해질 감기에 ‘대비’해 종합감기약을 복용하는 습관을 버리자.
또 열이 나기 시작하면 무턱대고 해열제를 찾는 습관도 지양해야 한다. 특히 어린아이가 열이 나면 빨리 열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생각에 해열제 시럽을 이것저것 번갈아 자주 먹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습관은 간 손상이나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발열 자체보다 더욱 심각한 건강상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은 우리 몸이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 세균이나 몸 안의 호르몬 변화, 근육 손상 등에 대항해 방어 작용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방어 작용을 다른 말로 ‘염증 반응’이라 하는데, 염증 반응이 일어나면 몸 안에서 만들어진 염증 전달 물질로 인해 열이 나고 통증이 생긴다. 이러한 증상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경우 해열진통제나 소염진통제를 복용할 수 있다. 즉 해열진통제를 병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래전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아세트아미노펜’의 안전성을 경고해왔다. 이는 사람들이 자주 복용하는 타이레놀로 대표되는 해열진통제 성분이다. 과량 복용 시 간 독성, 심각한 피부 발진 등을 일으키는 부작용 보고가 증가해 1회 사용량을 줄이고 꼭 필요할 때만 복용할 것을 권장한다. 하루 복용량이 4g을 넘지 않도록 규정했지만 체구가 작고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는다면 하루 3g 이하로 복용하는 것이 좋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타이레놀의 경우 서방정(약효가 늦게 나타나 오래 지속되는 제형)만 보험 혜택이 적용돼 감기에 자주 처방되는데, 과량 복용 시 체내에 오래 머물고 축적돼 독성 위험이 증가한다. 따라서 복용하는 약에 중복 처방된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해열제가 필요 없는 경우에는 복용을 삼가야 한다.
이 밖에도 특정 질환이 있다면 주의해서 복용해야 하는 감기약 성분이 있다. 전립샘이 비대하거나 혈압이 높은 경우 슈도에페드린 성분의 코막힘 약은 배뇨 곤란, 혈압 상승 등을 일으키므로 주의해야 한다. 혈압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NSAID)를 복용하면 혈압약 효과가 떨어지므로 이 경우엔 해열진통제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당뇨 환자는 기침약 시럽이나 당의정에 함유된 당 성분을 확인해야 한다. 또한 감기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으므로 초기에 항생제를 복용하거나 약을 이것저것 챙겨 먹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