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사는 직장인 A씨는 9월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전세금 5000만 원을 올려주느니 차라리 집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당시(6월) 기준금리가 1.25%까지 떨어진 터였다. 이자 부담이 적은 만큼 집에 대한 열망도 높아졌다. 결혼 10년 만에 드디어 내 집 마련을 결심한 A씨는 곧장 주거래 은행을 찾아가 금리를 문의했고, 은행으로부터 2.7% 금리에 1억5000만 원을 대출할 경우 연간 이자비용이 405만 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 A씨는 석 달 뒤 드디어 마음에 드는 집이 나와 계약하기로 하고 다시 은행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그사이 금리가 3%까지 올랐다. 이자비용이 450만 원으로 50만 원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불과 석 달 사이 일이다. 어쩌면 좋은 시절은 끝났는지도 모른다. 더는 은행권에서 싸게, 그리고 쉽게 대출받는 일이 어려워졌다. 이제 막 내 집을 마련하려는 실수요자의 불안감과 부담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각 은행이 신규 대출을 억제하도록 사실상 대출 총량 규제에 들어갔다. 연초에 각 은행이 세운 가계대출 연간 목표치를 9월 말 현재 은행 대부분이 훌쩍 뛰어넘었다. 따라서 은행들이 앞으로 남은 3개월간 신규 대출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당국의 가계대출 관리에 대한 압박 강도가 세지면서 은행은 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출자를 밀어내고 있다.
‘내년에 대통령선거가 있는데, 설마 기준금리를 올리겠어. 대출 규제를 더 세게는 못할 것 같은데’라는 막연한 기대로 애써 위로해보지만, 연말이면 1300조 원까지 불어날 가계부채에 금융당국도 더는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점이 최근 각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인상과 아파트 집단대출(중도금대출) 거절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출 한도 다 써버린 은행
금융당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 분위기다. 잇따라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했지만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급증하는 모양새다. 시중은행들은 올해 초부터 9월 말까지 가계대출을 많게는 8% 가까이 늘렸다. 신한은행이 7.9%, 우리은행이 7.6%였다. KB국민은행까지 가세하면 금액상으론 이 3개 은행을 합쳐 20조 원이 넘는다. 은행 대부분이 가계대출을 4~5% 안팎 수준으로 늘리면서 연초에 세운 가계대출 연간 목표치를 일찌감치 뛰어넘었다.그러자 금융감독원은 각 은행으로부터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제출받고 수정안을 재차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가계대출 연간 목표치를 초과한 은행을 대상으로 특별점검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놨다. 신규 대출을 제한하는 총량 규제나 다름없다. 은행도 더는 대출 잔액을 늘리기 어려운 형편이다. 최근 1~2년 사이 저금리 기조와 분양시장 호황을 틈 타 큰 폭으로 늘려온 집단대출이 내후년까지는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신규 대출을 하지 않더라도 대출 잔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니 신규 대출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근 지방이나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아파트 중도금대출을 해줄 은행을 찾지 못한 채 분양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 경우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 등 제2금융권으로 가거나 이마저도 안 되면 부동산투자신탁회사 등을 이용해야 한다. 이자 부담은 더욱 커진다. 결국 서민만 피해를 보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사사분기 중 제2금융권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이미 밝힌 바 있다. 2월 은행권에 먼저 도입한 후 제2금융권으로 대출이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자 부랴부랴 제2금융권의 여신심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제2금융권에서도 깐깐한 여신심사를 거쳐야 한다. 대출 문턱은 점점 높아져만 간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역시 초저금리 시대란 점이 무색할 정도로 오름세다. 9월부터는 3%대 금리도 속출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공시된 각 은행의 주택담보대출(분할상환방식) 금리 구간을 보면 9월 KEB하나은행을 빼고 최고금리 수준이 모두 3%대로 올랐다. 각 은행의 평균금리 역시 우리은행이 3.17%까지 올라갔고, 한국씨티은행도 3%로 높아졌다(표 참조).
주택담보대출 막힐까 노심초사
6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p 내렸지만 각 은행의 대출금리는 오히려 상승했다. 우리은행은 석 달 만에 2.81%에서 0.36%p, 한국씨티은행도 같은 기간 0.22%p 높였다. 신한은행은 2.81%에서 2.94%로 0.13%p, KEB하나은행은 2.66%에서 2.77%로 0.11%p, KB국민은행은 2.82%에서 2.9%로 0.08%p 상승했다.A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을 더는 늘리지 않으려면 금리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며 “대출받으려는 고객에게 대출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으니, 금리를 올려 다른 은행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출 기준이 되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 얹는 식이다.
실제 이 기간 가산금리의 상승 폭은 적게는 0.12%p에서 많게는 0.46%p나 됐다. 한 달 전인 8월 대출 취급분과 비교해도 최소 0.02%p(KB국민은행)에서 최고 0.15%p(우리은행)까지 더 얹어졌다. 실질적으론 초저금리 수혜를 받기는 어려운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이용하는 코픽스(COFIX) 금리도 상승세로 전환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만이다. 올해 들어 내림세였던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9월 1.35%로 전달보다 0.04%p 상승했다. 새로 대출받거나, 기존에 코픽스에 연동해 대출받은 사람의 이자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긴 하지만,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현실화하면 우리나라도 더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이자폭탄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미 아파트를 청약받아 중도금대출을 받은 대출자 역시 안심할 수 없다. 내년부터 내후년 사이 아파트 입주 물량이 몰려 있다. 입주 시점에 입주자금대출(일반 주택담보대출)로 전환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C은행 관계자는 “내년부터 내후년까지 입주 물량이 76만 호나 된다”며 “현재는 중도금대출을 받고 있지만 입주 시점에 대출 심사가 더 깐깐해지고 규제도 강화되면 일부는 입주자금대출로 전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