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지음/ 투데이펍/ 352쪽/ 1만8000원
용장(勇將)은 지장(智將)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德將)을 이기지 못하며, 덕장은 복장(福將)을 이기지 못한다는 ‘손자병법’ 내용이 널리 회자되면서 누가 용장이고 누가 덕장인지 가늠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소설 ‘삼국지’다. 흔히 용장은 장비, 지장은 제갈량, 덕장은 유비를 꼽는다.
김재욱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는 삼국지 무대를 한국으로 옮겨왔다.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를 앞두고 자천타천 ‘잠룡’들이 용틀임하는 이 시기를 ‘군웅할거의 시대’로 규정하고, 소설 ‘삼국지’ 등장인물에 현재 대한민국 정치인을 대입한 결과물이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다. 이제부터 퀴즈. ‘다음 삼국지 인물에 해당하는 국내 정치인은 누구일까.’
유언은 황건적의 봉기가 나자 의용군을 모집하는 방문을 썼고, 이 방문을 본 유비가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은 뒤 의병을 이끌고 유언의 진영으로 간 인연이 있다. 그러나 천하를 욕심 낸 유언은 ‘익주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는 참위설을 믿고 익주를 평정한 뒤 천자만이 탈 수 있는 수레 1000대를 제작해 반란을 모의하다 성공하지 못하고 죽었다. 김 교수는 유언을 이렇게 평가한다. “욕심이 있으니 참위설에 마음을 빼앗기고, 실력을 쌓으며 기다리지 않고 급하게 일을 추진하다 불운하게 죽었다.”
다음은 유표. 형주지역을 잘 다스렸지만 천하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으며, 적극적으로 세력 확장에 힘쓰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인품이 넉넉한 사람으로 그려지나 정사에선 ‘겉으론 너그러운 듯하나 시기심이 있다’고 평했다.
세 번째는 원소. 원소가 조조에게 편지를 보내 군량미와 군사를 빌려달라고 하자 조조는 거절하지 못하고 걱정만 한다. 이에 참모인 곽가가 “원소는 열 번 싸워도 열 번 모두 질 사람”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소는 번거로운 예의를 좋아합니다. 겉으론 너그러운 것 같지만 안으로는 시기하는 마음이 강하고, 사람을 쓸 때 일가붙이만 많이 씁니다. 원소는 꾀가 많으나 결단성이 없습니다. 허세를 좋아해 병법을 모릅니다.”
김 교수는 ‘황제가 되기 어려운 유언’의 모습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읽어낸다. ‘싸울 때를 모르는 유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명성은 높되 실력은 낮은 원소’는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와 연결 짓는다. 이런 해석이 억지스럽다거나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을 바꿀 능력이 있는 야권 정치인 위주로 썼다는 저자의 설명을 듣고 나면 이름이 거론된 것 자체가 영웅호걸 반열에 오른 셈이니 손해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다음 대선에서 승리의 동남풍은 어디로 불까.
마이클 푸엣·크리스틴 그로스 로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304쪽/ 1만4800원
미국 하버드대에서 중국 철학을 가르치며 ‘하버드대 최고교수상’을 수상한 푸엣 교수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옮겼다. 관계는 공자, 결정은 맹자, 영향력은 노자, 즉흥성은 장자, 인간성은 순자의 말씀으로 설명하고, 만들어진 행복의 기준이나 성공의 법칙에서 벗어나 자신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조언한다. 특히 우리가 직면한 현실적 고민에 대한 답이 이미 2000년 전 동양철학에 있었다는 점을 환기해준다.
킵 S. 손 지음/ 박일호 옮김/ 반니/ 830쪽/ 4만2000원
저자는 미국 이론물리학자로 2월 중력파의 존재를 탐지해 ‘제2의 노벨상’이라 부르는 ‘카블리상’을 수상했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1994년 출간돼 전 세계 10개국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와 우주의 원리에 대해 30년간 탐구해온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블랙홀과 백색왜성, 중성자별, 특이점, 중력파, 웜홀, 시간 뒤틀림, 타임머신의 세계로 안내한다.
정구종 지음/ 논형/ 592쪽/ 3만 원
냉전 이후 일본의 안전보장정책과 방위전략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1부 ‘전후 일본의 국가전략’, 2부 ‘아베 신조의 전후체제 탈각과 안보정책의 대전환’, 3부 ‘잃어버린 20년을 넘어 다시 보수 회귀로’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 냉전 이후 일본 안보정책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고, 2부에서 안보정책의 대전환을 분석하며, 3부에서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아베 정권의 탄생 배경과 일본의 ‘탈전후체제’ 전략에 대해 설명한다.
박준 지음/ 어바웃어북/ 360쪽/ 1만6800원
“그림을 보는 순간은 여행과 닮았다. 난생처음 찾은 곳을 탐험하듯 그림의 이곳저곳을 살피다 때로는 형태를, 때로는 감성이나 정신을 발견한다.” 20년 넘게 전 세계를 여행하며 글을 쓰고 있는 저자가 이번엔 미술관 여행을 떠났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고흐의 ‘낡은 구두’를 보며 “아름다운 대상은 화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티스의 ‘모로코 사람들’을 보며 아직 가보지 않은 모로코를 그리워한다.
도종환 지음/ 창비/ 144쪽/ 8000원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이자 5년 만의 신작.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화인(火印)’ 중에서)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를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 있을 아픔’이라고 표현했듯이, 시인은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겪은 현실 정치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에서 받은 쓰라린 것들을 뜨거움으로 가라앉히며”(‘해장국’ 중에서) 슬픔을 희망으로 승화한다.
알랭 드 보통 외 3인 지음/ 전병근 옮김/ 모던아카이브/ 208쪽/ 1만3500원
지난해 11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 배틀(멍크디베이트). 찬성하는 쪽은 심리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스티븐 핑커와 동물학자이자 과학저널리스트인 매트 리들리가 팀을 이루고, 반대하는 쪽은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과 작가 알랭 드 보통이 팀을 이뤄 과학과 인문학의 대결을 벌였다. 청중 투표로 결정된 최종 승자는 찬성 팀. 멍크디베이트 현장을 책으로 옮겼다.
신승윤 지음/ 효형출판/ 304쪽/ 1만5000원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나오는 수평선, ‘미션’의 상승하는 수직선, ‘그랑블루’의 하강하는 수직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곡선 등 각 장면에 숨겨진 20가지 시각코드를 분석했다. 수평선 위를 걷는 주인공의 애환과 수직선을 올라가는 인물의 사연, 원과 사각형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대칭이나 대비 구도로 마주 보는 사람들의 관계, 색상과 명암이 상징하는 이야기 등 무심코 흘려보낸 장면의 숨겨진 의미가 밝혀진다.
최준석 지음/ 아트북스/ 288쪽/ 1만5000원
“오래전 쓴 원고를 다시 뜯어고치는 작업은 오래전 지어진 집을 증·개축하는 것과 닮았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6년 전 출간한 ‘어떤 건축’을 전면 개정한 책. 새것에 대한 강박증을 버린 선유도공원, 금방이라도 항해를 떠날 듯한 르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부아, ‘세한도’를 닮은 추사고택, 덜어내고 또 덜어낸 김옥길기념관 등 국내외 건축물 30곳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