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sundance’라고 적힌 야구 모자에 네이비색 점퍼를 입고,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을 지나 아르코예술극장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막 들어온 가로등 불빛 아래서 새하얗게 빛나는 턱수염이 눈에 띄지 않았다면, 걸음걸이나 옷차림만으로는 결코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게다. 올해로 만 80세가 된, 그중 60년 넘는 세월을 무대에 서온 배우 오현경 씨(사진) 얘기다.
오씨는 11월 4일 개막하는 연극 ‘언더스터디’의 연습을 마치고 홀로 기자를 만나러 온 참이었다. 대낮부터 시작한 연습이 4시간여 만에 끝났다는데, 그의 표정에선 피로도 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힘 있게 울리는 목소리도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했다.
오현경의, 오현경에 의한, 오현경을 위한
“내 생일이 11월 11일이거든요. 이번 작품이 13일까지 이어져요. 무대 위에서 꼭 여든 살을 맞게 된 거지. 그걸 생각하면 난 참 운이 좋은 것 같아요.”연습이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힘들기는 뭐” 하며 웃던 그가 내놓은 답변이다. 오씨는 1994년 식도암으로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에도 2000년 다시 찾아온 위암으로 투병했고 쓸개질환, 목디스크 등을 치료하느라 전신마취 수술만 5번 했다. 그런데도 무대만은 떠나지 않은 그다. 의료사고로 인한 과다출혈 탓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와 회복한 뒤에도, 그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무대에 섰다.
이제는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신을 향해 ‘죽고 사는 건 운명이지만, 이렇게 다시 연극을 하게 해주셨으니 이 작품 하는 동안에는 데려가지 마십시오’라고 기도한다는 그에게 연습은 힘들기보다 즐거운 시간인 듯 보였다. 오씨는 “‘언더스터디’는 어쩌면 내 인생에서 마지막 주역일지도 모를 작품”이라며 “대사량이 많고, 체력적으로 걱정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언더스터디’가 남다른 건, 오직 ‘배우 오현경’만을 위한 작품인 이유도 있다. ‘언더스터디’의 대본을 쓴 전형재 씨는 ‘배우 오현경 연구’로 경기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오씨의 연극계 후배이자 사실상의 제자이며 오랜 팬이다. 그런 전씨가 60년 세월을 무대에서 보낸 노배우 ‘오선생’을 주인공 삼아 쓴 희곡 ‘언더스터디’는 지난해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낭독 공연돼 연극계의 호평을 받았다. 당시 ‘오선생’과 ‘배우 오현경’의 유사점이 화제가 됐음은 물론이다.
이 작품을 잠시 들여다보자. ‘언더스터디’의 주인공 ‘오선생’은 극 중 셰익스피어 연극 ‘베니스의 상인’ 무대에 선다. ‘오선생’이 맡은 배역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다. 이쯤 들었을 때 연극 팬이라면 무릎을 칠지 모르겠다. 바로 이 연극을 ‘배우 오현경’이 2009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했기 때문이다. 오씨는 당시 꼬장꼬장하면서도 탐욕스러운 그만의 ‘샤일록’ 연기를 펼쳐 주목받았다. 이처럼 작가 전씨는 ‘배우 오현경’의 많은 부분을 차용해 ‘언더스터디’의 극 중 인물 ‘오선생’을 만들었고, 그 배역을 오씨에게 맡겼다. 이제 현실의 오씨는 배역 오선생의 옷을 입고, 한평생 자신의 삶을 연극에 바쳤으나 어느새 무대를 떠나야 하는 순간을 맞은 여든 살 노배우의 모습을 연기하게 될 테다. 그것도 자신의 여든 번째 생일에 맞춰. 이보다 멋진 ‘행운’이 또 있을까. 그가 맨 처음 “이 작품을 하는 난 참 운이 좋은 것 같다”고 한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물론 극 중 ‘오선생’이 ‘배우 오현경’과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다. 작품 속에서 ‘오선생’은 많은 후배의 추앙을 받는 대배우이고, 여전히 무대 위에서 ‘샤일록’을 능숙하게 연기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무도 모르게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다. 처음엔 연극 대사를 설핏 실수하고, 주변 사람의 이름을 잊고, 집에 가는 길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는 걸 오직 ‘오선생’ 혼자만 알았다. 하지만 그의 이상 행동이 주위에 점점 알려지면서, 마침내 자신의 배역을 ‘언더스터디’(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투입할 수 있도록 해당 배역을 함께 준비하는 배우)에게 넘겨야 하는 때가 온다.
“내가 이렇게 객석에 앉는 거예요. 그리고 무대를 바라보죠. 그리고 이렇게….”
오씨는 서울 대학로의 작은 식당 창가 자리에서, 그 순간 ‘오선생’이 느끼는 절망과 회한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순식간에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또렷한 목소리로 ‘오선생’의 대사가 흘러나왔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공기와 맞부딪치며 튀어올라 가슴을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이번 항구에서 나 먼저 내리마”
“연극이 어려운 건 오롯이 대사로 듣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배우의 감정과 관객의 내면이 사람 목소리를 통해 공명할 때 진짜 감동이 생겨나요. 배우는 그 감각을 본능적으로 익혀야 하죠. 몇 석 규모 극장에서 내 말이 어디까지 퍼져나갈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객석 끝까지 닿았다가 다시 돌아와 내 귀에 부딪힐지, 그로부터 얼마쯤 흐른 뒤 내가 다음 말을 내놓아야 관객의 감정이 흐트러지지 않을지, 저는 한평생 그것을 고민하고 연습해왔습니다.”오씨의 말이다. 이 말을 할 때 빛나던 그의 눈동자는, 오씨가 ‘오선생’과 달리 여전히 무대를 꽉 채우는 현역 배우임을 실감케 했다.
1955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유치진 선생의 작품 ‘사육신’에서 성삼문 역을 맡아 연극 무대에 데뷔한 오씨는, 그때부터 60년 넘게 최고 배우 자리를 지켜왔다. 식도암, 위암 수술을 한 뒤에도 변함없었다. 그가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하려고 대학로에 세운 무료 배우 재교육연구소 ‘송백당(松栢堂)’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가르친 건 발성과 발음이었다고 한다. 3년간 1억 원 이상 사재를 털어 운영하던 이 ‘연구소’를 지금은 후배에게 물려줬지만, 여전히 오씨는 후배들에게 ‘연극의 기술’을 전하고 싶어 했다.
“연극 한 편에 배우의 성패가 걸려 있다는 욕심은 버려. 단지 충성스럽게 너의 영혼을 드러내 보이는 거야. 매번 공포에 떨면서도 같은 짓거리를 반복해야 하는 게 연극배우의 정해진 숙명 아니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너의 범선을 띄우고 키를 잡을 때가 오지. 때로는 너를 좌절시키기 위해 태풍과 암초가 복병처럼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래도 너의 범선을 멈추지는 말아라.”
그리고 잠시 시간을 둔 뒤 그는 다시 말했다. “미안하구나, 이번 항구에서 나 먼저 내리마.”
연극 ‘언더스터디’에서 ‘오선생’이 아득한 후배에게 전하는 충고다. 이 대사를 기자 앞에서 쏟아낸 오씨의 눈에는 또 한 번 눈물이 가득 고였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동안, 저녁 시간 손님으로 붐비던 식당의 소음이 하얗게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