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스크린도어로 인한 사망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2월 서울메트로 1호선 서울역에서 일어난 사고와 5월 2호선 구의역 사고에 이어 올해만 벌써 세 번째다. 10월 19일 오전 7시 18분쯤 서울도시철도공사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회사원 김모(36) 씨가 스크린도어 사고로 사망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김씨는 출근 중 김포공항역에서 내리려다 스크린도어와 지하철 출입문 사이에 갇혔다. 김씨는 스크린도어를 열고 역내로 나가려 했지만 닫힌 스크린도어가 열리지 않았고, 김씨가 스크린도어와 고군분투하는 사이 지하철은 출발해버렸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는 실족해 선로로 떨어지거나 자살하기 위해 달리는 지하철로 뛰어드는 사고를 막고자 설치됐다. 그러나 사람을 구하려는 안전장비가 오히려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만드는 괴물이 되고 있다. 스크린도어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사업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내 지하철 역사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다 보니 제대로 된 안전기준을 세우지도 못했던 것. 일각에서는 지금이라도 정부당국이 나서 스크린도어 현황을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김씨가 타고 있던 방화행 5016열차는 오전 7시 14분 44초 김포공항역에 도착해 약 20초간 지하철 출입문과 스크린도어를 개방한 후 닫았다. 출발하자마자 지하철 출입문이 닫히지 않았다는 비상경보가 울렸고, 지하철은 멈췄다. 뒤이어 김씨가 비상전화를 통해 기관사실에 “출입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해 지하철 출입문을 약 27초간 열어둔 뒤 닫았다. 지하철이 출발하자마자 또 스크린도어 진동이 확인돼 지하철은 약 11초간 정차한 후 출발했으나 인터폰이 다시 울려 지하철은 다시 약 1분간 정차했다. 세 번째 정차 후 지하철이 출발했고, 출발한 지 7초 만에 3-4지점 비상 출입문으로 김씨가 튕겨나갔다.
사고 전에도 스크린도어 오작동 잦아
지하철 출입문이 총 2번 열리는 동안 스크린도어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사고 당시 김씨는 스크린도어와 지하철 출입문 사이 좁은 공간에 서 있었다. 김포공항역은 곡선구간으로 지하철이 들어오면 지하철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최대 23cm 공간이 생긴다. 김씨는 스크린도어가 다시 열리면 승강장으로 들어갈 심산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않은 채 기다린 것으로 추정된다. 스크린도어만 열렸다면 이 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김포공항역 스크린도어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당장 교체가 필요할 만큼 노후화됐기 때문이다. 2005년 설치된 이곳 스크린도어는 현재 서울 지하철역 가운데 유일하게 지하철 출입문과 스크린도어가 연동돼 있지 않다. 이 오래된 스크린도어를 여는 방법은 두 가지다. 기관사가 지하철 내부에 있는 개폐 버튼을 누르거나 역무원이 열차 바깥에 있는 스크린도어 개폐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다. 게다가 스크린도어와 지하철 출입문 사이 센서가 없어 그곳에 사람이 있어도 감지되지 않는다. 즉 지하철 기관사가 매번 내려서 확인하거나 역무원이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지하철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의 문제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김포공항역 스크린도어는 사고 전 이미 노후화 문제로 수리가 예정돼 있었다. 나열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 직무대행은 10월 21일 열린 서울시의회 긴급 업무보고에서 “김포공항역 스크린도어가 고장이 잦고 개선, 보완했음에도 계속 기능 장애가 생겨 비효율적인 상황이 반복됐다. 이 때문에 7월 12일 외부 전문가의 기술자문과 9월 2일 임원간담회를 거쳐 스크린도어 전면 교체를 9월 19일 확정했다”며 “스크린도어 전면 교체 사업은 예산 16억 원을 들여 내년 1월 시작해 10월 완공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크린도어 오작동 문제는 김포공항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시가 6월 20일부터 7월 22일까지 서울 307개 지하철역의 스크린도어 6만4508개를 전수조사한 결과 101개 역의 스크린도어가 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10월 1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8월까지 서울지하철 1~9호선의 스크린도어 고장 건수는 1만4502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8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관리 상황이 이처럼 열악하다 보니 과거 다른 역에서도 스크린도어 문제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2013년 1월 19일 서울메트로 2호선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심모(당시 37세) 씨가 스크린도어 점검 중 역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에 치여 사망했다. 2014년 9월 25일에는
4호선 총신대입구역에서 이모(당시 81세) 씨가 급하게 지하철을 타려고 출입문 틈으로 지팡이를 넣었고, 그대로 출발한 지하철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인 채 끌려가다 사망했다. 올해
2월 3일에는 1호선 서울역에서 설모(당시 81세) 씨가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이 지하철 출입문에 끼인 채 끌려가다 선로에 떨어져 숨졌다. 5월에는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김모(당시 19세) 군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들어오는 지하철에 치여 사망했다.
최저가 입찰에 역사마다 업체도 달라
이어지는 사고로 지하철 스크린도어는 애물단지가 됐지만 올해 초까지만 해도 지하철 선로 내 자살을 막는 최적의 설비로 각광받았다. 2월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8차 국민안전 민관합동회의’에서 국토교통부는 ‘도시철도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안에는 선로 추락 및 자살사고 방지를 위해 2016년까지 모든 도시철도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2017년까지 모든 광역철도 역에도 설치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즉 지하철을 넘어 도시철도로 설치를 확대할 만큼 스크린도어의 추락 및 자살 방지 기능은 탁월하다.결국 스크린도어를 애물단지로 만든 것은 사람이다. 익명을 요구한 스크린도어업체 관계자는 스크린도어 사고가 빈발하는 가장 큰 이유를 ‘최저가 입찰제’에서 찾았다. 그는 “스크린도어 설치 사업은 제품 구매, 시공, 사후 관리가 전부 공개입찰로 진행된다. 이때 제품 성능이나 업체 실력보다 가격이 입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세 부문 모두 최저가로 입찰한 업체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 또 스크린도어 제조사와 시공사, 사후 관리사가 전부 달라 업무에 혼선이 생기기도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부 시설공사 계약 입찰 통합시스템인 ‘나라장터’ 입찰 결과를 보면 6월 27일에 있었던 ‘7호선(서울도시철도공사 관할) 수락산 등 20역 승강장안전문(스크린도어) 전원공급장치 컨버터 모듈 물품’ 공개입찰은 최저가 낙찰제로 사업자가 선정됐다. 이날 동시에 있었던 ‘승강장안전문설비 산업용 니켈-수소 축전지 등 물품구매’ 역시 최저가 낙찰제였다. 한 달 뒤인 7월 27일 ‘승강장안전문설비 모니터 물품 등 구매’ 공개입찰도 6월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일부 역사는 최저가 낙찰제로 사업이 이뤄지지만 최근에는 제안서를 검토해 사업자와 협상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영국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국내 스크린도어 사업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며 “최저가 입찰 때문에 제품 성능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력하는 업체가 난립해 각 호선, 각 역마다 다른 종류의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서울 및 수도권 지하철역에 설치된 스크린도어 가운데 국제안전기준이 적용된 제품이 드물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스크린도어 문제 등 지하철 운영을 책임지는 수장이 구의역 사고와 이번 김포공항역 사고가 일어난 시점에 공석이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구의역 사고 당시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이정원 전 사장이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의 통합 무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상태였다. 8월 말에야 신임 사장이 취임했다. 신임 사장은 취임 직전까지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 수장을 맡았던 김태호 사장이었다. 서울메트로 사장 채용 면접을 앞둔 8월 초 김 사장이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직을 사임한 후 지금까지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 자리는 공석이다. 서울시는 김태호 신임 사장이 취임한 후 과거 무산됐던 공사 통합을 재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우형찬 서울시의원은 “지하철 안전 업무에 몰두해야 할 시점에 서울시가 공사 통합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땜질식 보수 말고 정부가 나서야
스크린도어 사고가 계속되자 서울시가 나섰다. 서울시는 전수조사를 통해 문제를 파악한 101개 역의 스크린도어 정비를 다음 달부터 시작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다음 달부터 23개 역의 스크린도어 센서 교체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고, 내년부터 정비 사업을 전면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크린도어업계 관계자는 “보수도 중요하지만 이전과 같이 최저가 입찰제로 외주사를 찾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서울시나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담당할 전문가를 파견해 각 업체의 제안서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으로 시설의 안전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영국 교수는 “스크린도어 문제를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수준의 안전기준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직접 스크린도어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부서에서 국내 상황에 걸맞은 안전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또 스크린도어를 수리, 보수한 후에도 지금처럼 안전관리를 외주 업체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도어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상급 기관을 신설해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영국 교수는 출근시간 지하철 승객이 서두를 수밖에 없는 기업문화도 사고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는 “스크린도어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기관사가 내려서 확인했다면 이 같은 사고가 생기지 않았겠지만, 현실적으로 기관사가 일일이 내려 확인 작업을 하기는 어렵다. 사고 발생 시간이 출근시간대였기 때문이다. 기관사가 지하철에서 내려 확인 작업을 하면 십중팔구 출발 지연에 대한 불만이 접수될 것이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출근시간대 5~10분 정도 마음의 여유만 허락해도 이번 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출근 환경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지하철 내 안전관리 직원을 늘리는 등의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크린도어 사고, 前 시장이 원흉?
계속되는 스크린도어 사고로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일각에서는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부실·날림 시공된 것은 초기 설치사업을 진행했던 전임 서울시장들의 책임이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관계자와 일반 시민으로 꾸려진 ‘구의역 사고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은 8월 25일 서울메트로 2호선 구의역 사고 원인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구의역 사고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은 올해 5월 발생한 구의역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자 10여 년 전 서울시 스크린도어 설치사업까지 조사했다. 이날 발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하철 스크린도어 설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맡았던 2003년 10월 22일 유진메트로컴이 승강장안전문(스크린도어) 전문 민자사업을 서울시에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서울시와 유진메트로컴은 BOT(Build-Operate-Transfer) 계약을 맺었다. BOT란 사회기반시설 준공 후 사업 시행자가 일정 기간 소유권을 가지고, 기간이 만료되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소유권이 귀속되는 방식이다.
유진메트로컴이 승객 안전시설인 스크린도어의 소유권을 탐낸 이유는 광고 때문이었다. 스크린도어 중간 중간 고정문을 만들어 광고 게재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고정문은 스크린도어 사고 시 비상 탈출을 막아 안전을 저해하는 구조물로 지적돼 현재 서울시에서 일부 철거를 고려 중이다.
공사 기간도 문제였다. 이명박 전 시장 다음으로 취임한 오세훈 전 시장은 스크린도어 공사 기간을 1년 줄였다. 안전성에 문제없이 공사 기간을 줄였다면 효율적인 행정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공사 기간이 짧아지면서 서울메트로는 5단계 시운전 중 ‘현차시험’ 절차를 누락한 상태로 스크린도어 공사를 완료해버렸다. 현차시험이란 실제 차량을 운행해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구간을 지나면서 안전검사를 하는 안전성 확인 절차다.
이날 발표를 맡은 구의역 사고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의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안전성 확인 절차가 누락된 문제와 관련해 “스크린도어 공사가 부실공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라며 “법 위반 여지를 다분하다. 차후 이 문제는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