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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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대통령의 그림자 권력

박근혜 대통령의 반전카드 하야와 탄핵 사이

최순실 금단현상 공조직 운용으로 극복해야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10-28 16: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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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야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할까. 하야는 자기결단이다. 스스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윤리적 판단을 내릴 때, 또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가능한 선택이다.

    먼저 윤리적 판단이다. 이것은 청와대 문건의 외부 유출, 그리고 최순실 씨의 문건 첨삭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얼마나 죄책감을 느끼느냐의 문제다. 10월 25일 대국민사과 내용으로 볼 때 박 대통령이 느끼는 죄책감은 그렇게 무겁지 않은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이날 ①취임 후 일정 기간 ②연설문이나 홍보물에 한해 ③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는 점만 인정했다. 이 정도로 하야할 내가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남은 하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권력 행사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권위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앞으로 행정부 공무원 대부분이 대통령의 지시에 무조건 순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비합리적인 지시에는 복지부동으로 대응할 개연성이 높다. 본인 명령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면 사실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의미가 없다.

    물론 이 경우에도 고려해야 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사상 두 번째 자진 하야’라는 오명을 써야 하는데, 가능하면 이런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야 이후 권력 공백과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비용 대비 효과, 이른바 ‘가성비’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하야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탈당

    새누리당 내 비주류를 중심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박(친박근혜)계 지도부 사퇴조차 관철하지 못하는 비주류다. 그만큼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앞으로도 비주류는 목청을 높일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탈당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하는 상황은 두 가지 경우에만 가능하다. 스스로 탈당하거나, 친박계가 한목소리로 탈당을 요구하거나.

    그러나 박 대통령 스스로 탈당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을 자신의 역작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탈당하는 순간 레임덕 현상도 가중될 것이다. 여당의 도움으로 버텨야 하는데, 탈당은 중환자가 링거 줄을 뽑는 것과 같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할 경우 친박계 전체가 탈박을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역대 대통령들도 그랬기 때문에 그다지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정말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에 대한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또다시 ‘배신의 정치’ 운운하며 나도 죽고 너도 같이 죽자고 나설 때, 살아남을 자 과연 누구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잘되게 하기는 어렵지만 못 되게 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에 친박계 전부가 탈당 대열에 나서는 일은, 그래서 가능성이 낮다.

    또 다른 가능성은 정말로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경우다.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또는 명령이 먹혀들지 않는 상황에서 행정부를 이끌기 어렵다고 느낀 나머지 탈당을 결행한 뒤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또한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그래서 그나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경우라 하겠다.



    거국내각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바로 그 주장을 들고 나왔다. 문 전 대표는 10월 26일 특별성명을 통해 “대통령이 아무 권위 없는 식물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당적을 버리고 국회와 협의해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야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더민주 김부겸 의원도 거국내각 구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비주류 가운데 정병국, 하태경 의원 역시 거국내각 필요성을 강조하는 중이다. 특히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새누리당 대표,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의 ‘3각 집단지도체제’를 정비한 뒤 야권과 거국내각 구성 대화를 촉구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앞서 그나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경우라고 지적했다.

    이 또한 박 대통령의 선택이 중요한데,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서 하야 요구가 거세진다면 불가피하게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최근 거의 사면초가 상태다. 안 그래도 국정 무능력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널리 퍼지던 상황에서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자 보수언론조차 완전히 돌아섰다. 여기에 최씨의 이화여대 학사 개입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대학생들 사이에도 분노가 널리 퍼져버렸다. 이 문제는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이화여대 출신 주부들까지 분노하게 만들어 박 대통령의 공고하던 콘크리트 강남벨트 지지층마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임기 말로 접어든 까닭에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던 공직사회 역시 마음이 돌아섰다고 본다면, 이제 남은 길은 야권의 지원을 받는 것 말고는 달리 없다.

    불가피한 선택이긴 하지만, 사실 이 또한 중요한 정치적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2년 14대 대통령선거(대선)를 2개월 앞둔 시점에 여야 의견을 수렴해 현승종 국무총리를 임명한 사례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정치권에서 힘을 얻는 중이다. 심지어 이 경우 대통령을 돕겠다는 말까지 야권에서 나오고 있다.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그 길을 선택하신다면 야당도 협조할 것”이라고 언급했으며,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도 “여야가 무정쟁 선언을 하고 대통령을 돕기 위한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현 상황에서 최선의 카드는 바로 거국내각 카드다. 물론 결단은 박 대통령 몫이다. 승부사 기질을 죽여야 가능한 선택지라 하겠다.



    우병우와 3인방

    청와대 인적쇄신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건은 반전카드로서는 이미 의미를 상실했다. 카드라기보다 필수사항이 됐다고 봐야 정확하다. 분노한 민심을 달래려면 최소한 이 정도 조치는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병우 라인이 장악한 검찰이 최씨 관련 수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국민적 의구심이 일고 있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더민주는 특검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속에서 특검으로 최씨를 처벌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던 대통령비서실의 인적쇄신은 이뤄져야 마땅하다는 것이 국민의 생각이다. 여야, 심지어 새누리당 내 친박계 생각이기도 하다. 이조차 기피한다면 박 대통령은 정말 야권의 맹타 속에서 식물 대통령으로 굴욕적인 임기 말을 맞아야 할 것이다.

    야권도 야권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국민의 냉소다. TV 화면에 박 대통령만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복한 임기 말을 꿈꿀 수 있겠는가. 이미 박 대통령의 얼굴만 봐도 화가 치민다는 국민이 꽤나 늘었다. 물론 이조차도 박 대통령의 선택이다. 그렇게 굴욕적으로 잔여 임기를 보낼 각오를 하고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과 3인방을 고수하겠다고 한다면, 아무도 말릴 수 없다는 얘기다.

    솔직히 대체인력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뒤숭숭한 마당에, 그것도 임기 말에 청와대 근무를 자처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행정부 파견 인력조차 이즈음이면 차라리 더 기다렸다 차기 정권에서 청와대 입성을 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좀 더 개방적으로 청와대를 운영할 생각을 갖는다면 대체인력을 찾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거국내각 구성을 전제로 한 청와대 근무라면 의외로 적잖은 자원자가 나설지도 모른다. 물론 이 경우 박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금단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최순실 세러피’를 끊어서 생기는 금단현상이다. 앞으로는 ‘공조직 세러피’로 만족해야 한다는 뜻이다.

    청와대 인적쇄신과 더불어 미워도 다시 한 번 전면개각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도 고려하리라 본다. 이 정도로 국민이 만족할지, 아니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전면개각 카드 역시 그렇게 센 카드, 다시 말해 반전카드로 보기는 어렵다. 우병우 민정수석과 3인방을 정리하는 정도의 그저 그런 카드가 돼버렸다.  



    개헌 주도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이후, 전날 공격적으로 제기했던 청와대 주도의 개헌론은 급속히 힘을 잃어가는 중이다. 개헌론이 전반적으로 퇴조현상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덩달아 제3지대론도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계속 이 추세로 갈까. 아니라고 본다. 최순실 사태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국민도 시간이 지나고 최순실 사태에 따른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면, ‘제2의 최순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할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임기 말 측근 비리는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그래서 분권형 대통령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정치권에서도 이것은 상식 중 상식이다.

    다만 박 대통령이 빠진 개헌에 힘이 실릴 개연성이 높다. 최순실 사태 이후에도 박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하겠다고 나선다면 국민 누구도 그 진정성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바로 그 점을 노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야당의 파상 공세를 각오하고 본인 주도의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다. 야권의 허를 찌르는 정말로 반전카드라 할 수 있는데, 이때 박 대통령은 의외로 전혀 다른 카드를 꺼내 들 개연성이 없지 않다. 내각제 개헌이다. 이때 정치권은 다시 한 번 요동칠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극렬히 반대하는 속에서 충청권 정치원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찬성 대열에 가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각제 개헌을 거듭 주장해온 더민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내각제 개헌 카드는 최순실 사태 이후 제3지대로 갈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다시 새누리당으로 불러들이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대규모 보수정계 개편을 촉발할 개연성도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박 대통령이 퇴임 이후 새로운 친박계 정당 대표로 정치활동을 이어갈 발판을 만드는 효과도 있다.



    탄핵 유발

    마지막 반전카드는 탄핵 유발이다. 정말 최후 수단으로 고려할 것으로 보이는 카드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최순실 꼬리 자리기가 도를 넘어섰다고 여겨지면, 야권은 들고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아직은 입에 올리길 주저하는 탄핵 주장도 당연히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국민 여론도 어느 정도 받쳐준다면 야권은 탄핵에 승부수를 던질 것이다.

    이때 역풍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이 나올 수 있다. 이 역풍에는 북풍도 포함된다. 적당히 북풍을 섞어주면 보수 지지세력은 다시 결집할 테고, 여기에 차기 정권 재창출 불가피론까지 강조한다면 박근혜로 재결집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워도 새누리당으로 재결집 정도는 가능해질 수 있다. 보수 지지세력 사이에서는 여전히 ‘그래도 문재인은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여기에 기름을 부어주기만 하면 그만인 격이다.

    이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논란을 재점화할 조짐이 보수 지지세력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탄핵은 정당성을 충분히 갖춘 경우라도 국민 정서를 넘어서기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야권의 참을성이 중요한데, ‘웅녀’급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탄핵 유발 카드는 그런 점에서 야권의 결단이 더 중요한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작금의 ‘근혜 생각’을 한 번 추론해본다.

    ‘뼈아픈 일격이었다. 당황스럽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박근혜다. 선거의 여왕이다. 아직 내게는 12척의 배, 십상시 더하기 정윤회, 최순실이 있다. 콘크리트 지지층도 상당수 머물러 있다. 야당도 탄핵으로 몰고 가지는 못할 것이다. 스스로 하야하지 않는 한 권력은 여전히 내 손안에 있다. 천막 당사 시절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솔직히 그때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는 수단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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