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미국과 결별을 고할 때다. 나는 더는 미국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 가면 우리는 그저 모욕이나 당하고 말 것이다. 이제 더는 미국의 간섭이나 미국과 군사훈련은 없다.”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필리핀 교민과의 간담회에서 한 연설 가운데 한 대목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한술 더 떠 필리핀·중국 경제포럼 연설에서도 “미국과는 군사적·경제적으로 결별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친중반미(親中反美)’ 노선을 적극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6월 30일 취임 이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욕설을 하고, 합동군사훈련 중단과 원조 거부를 주장하는 등 ‘65년 동맹국’인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반면 그는 중국에게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내왔다. 심지어 그는 “나의 조부는 중국인”이라면서 “많은 중국인이 오래전 필리핀으로 와 경제와 사회에 큰 공헌을 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이런 행보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친중 노선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경제협력을 얻어내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일종의 실리외교 노선이다. 실제로 그는 그동안 갈등을 빚어온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중국 측에 대폭 양보했다. 6월 퇴임한 베니그노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의 노선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10월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두테르테 대통령이 발표한 공동성명에 따르면 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협상체계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합의했다. 특히 양국은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 내용을 공동성명에 넣지 않았다. PCA는 7월 12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중국 측 패소를 결정했지만 중국은 그동안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며 거부해왔다. 게다가 공동성명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주권 국가 간 협상 및 담판을 명시해 미국이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공동성명 내용으로 볼 때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의 손을 들어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외교적으로 승리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개입을 차단할 명분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의 실리외교 노선이 개인적인 반미 감정이나 사상을 바탕으로 추진된다는 점에서 볼 때 자칫 ‘위험한 줄타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그는 10월 9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인권문제를 얘기하겠다”면서 미국의 식민지배 시절(1898〜1946) 미군에 의해 살해된 필리핀인들의 사진을 들어 보였다. 그는 “미군이 살해한 내 조상들”이라면서 자신이 추진해온 마약과의 전쟁에 대해 인권 침해 문제를 지적한 오바마 대통령을 겨냥했다. 원고에도 없던 그의 발언은 미국이 필리핀의 인권문제를 거론할 자격이 있느냐고 꼬집은 것이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면서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이에 반대하는 필리핀인 60만여 명을 학살했다. 미국-필리핀 전쟁이라고 부르는 당시 사태로 민다나오 섬에 거주하는 모로족(필리핀에선 무슬림을 부르는 명칭)이 대거 희생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조모가 모로족 출신이다. 그는 어렸을 때 조모로부터 미국이 식민지배 당시 저지른 잘못에 대해 듣고 자랐다. 그는 “미국이 식민지배를 하는 동안 민다나오 섬에서 무슬림을 학살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부터 해야 한다”면서 “분리주의 반군이 민다나오 섬에 들끓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젊은 시절 한때 공산주의 활동을 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산베다대 법학과 재학 시절 필리핀 공산당을 창건한 호세 마리아 시손으로부터 정치학을 배웠다. 당시 시손은 미국의 제국주의와 필리핀의 부패한 정재계 인사들이 결탁해 필리핀을 망치고 있다고 가르쳤다. 미국 국무부가 필리핀 공산당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했음에도 두테르테 대통령은 1987년부터 네덜란드에서 망명생활을 해온 시손의 귀국을 환영한다면서 공산당 측에 토지개혁부와 노동고용부 등 4개 부처 장관 자리를 제의하기도 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런 좌파 성향 때문에 기본적으로 미국보다 중국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그의 친중반미 노선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아태)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패권다툼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세력 판도가 변할 수 있다. 미국은 아태 국가들과 구축해온 ‘중국 포위망’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미국은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를 필리핀에 긴급 파견하는가 하면, 중국이 건설한 남중국해 인공섬 인근 해역에 구축함을 투입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재개했다. 러셀 차관보는 “필리핀과 중국의 긴장완화를 환영하지만 양국 관계 개선이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을 희생하면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과의 동맹 파기는 있을 수 없다”면서 한 발 후퇴했다. 아무튼 그의 행보가 동맹국과의 관계 약화, 중국에 대한 지렛대 상실, 국내 여론 악화 등 경착륙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의 76%는 미국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반면, 중국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필리핀 대통령의 행보에 따라 남중국해에서 더욱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잘 알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앞으로도 좌충우돌하면서 파도타기를 계속할 듯하다.
그의 이런 행보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친중 노선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경제협력을 얻어내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일종의 실리외교 노선이다. 실제로 그는 그동안 갈등을 빚어온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중국 측에 대폭 양보했다. 6월 퇴임한 베니그노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의 노선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10월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두테르테 대통령이 발표한 공동성명에 따르면 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협상체계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합의했다. 특히 양국은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 내용을 공동성명에 넣지 않았다. PCA는 7월 12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중국 측 패소를 결정했지만 중국은 그동안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며 거부해왔다. 게다가 공동성명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주권 국가 간 협상 및 담판을 명시해 미국이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공동성명 내용으로 볼 때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의 손을 들어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외교적으로 승리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개입을 차단할 명분을 확보했다.
친중반미=실리외교?
중국은 호박이 넝쿨째 들어오자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시 주석은 15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비롯해 90억 달러의 차관 등 총 240억 달러(약 27조3000억 원)의 자금을 필리핀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양국은 고속철 사업을 비롯해 사회 인프라, 에너지, 투자, 미디어, 검역, 관광, 마약 퇴치, 금융, 통신, 해양경찰, 농업 등 17건의 협정과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국가 대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틀 내에서 필리핀의 철도, 고속도로, 항구 등 기초시설 건설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면서 “중국은 필리핀 경제발전을 위한 중국 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 필리핀의 농업과 빈곤 퇴치를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또 바나나 등 열대과일 수입 금지와 유커의 필리핀 방문 자제령도 해제하기로 했다. 필리핀은 1차 산업인 농업 분야 비중이 10%에 달하기 때문에 중국의 열대과일 수입 금지 해제 조치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또 중국이 열악한 사회 인프라에 각종 투자를 하는 것도 필리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클라리타 카를로스 필리핀대 정치학과 교수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성과지향적 인물”이라면서 “남중국해 영유권이라는 명분에 집착하는 것보다 중국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실익이 있다고 계산한 듯하다”고 분석했다.하지만 그의 실리외교 노선이 개인적인 반미 감정이나 사상을 바탕으로 추진된다는 점에서 볼 때 자칫 ‘위험한 줄타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그는 10월 9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인권문제를 얘기하겠다”면서 미국의 식민지배 시절(1898〜1946) 미군에 의해 살해된 필리핀인들의 사진을 들어 보였다. 그는 “미군이 살해한 내 조상들”이라면서 자신이 추진해온 마약과의 전쟁에 대해 인권 침해 문제를 지적한 오바마 대통령을 겨냥했다. 원고에도 없던 그의 발언은 미국이 필리핀의 인권문제를 거론할 자격이 있느냐고 꼬집은 것이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면서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이에 반대하는 필리핀인 60만여 명을 학살했다. 미국-필리핀 전쟁이라고 부르는 당시 사태로 민다나오 섬에 거주하는 모로족(필리핀에선 무슬림을 부르는 명칭)이 대거 희생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조모가 모로족 출신이다. 그는 어렸을 때 조모로부터 미국이 식민지배 당시 저지른 잘못에 대해 듣고 자랐다. 그는 “미국이 식민지배를 하는 동안 민다나오 섬에서 무슬림을 학살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부터 해야 한다”면서 “분리주의 반군이 민다나오 섬에 들끓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젊은 시절 한때 공산주의 활동을 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산베다대 법학과 재학 시절 필리핀 공산당을 창건한 호세 마리아 시손으로부터 정치학을 배웠다. 당시 시손은 미국의 제국주의와 필리핀의 부패한 정재계 인사들이 결탁해 필리핀을 망치고 있다고 가르쳤다. 미국 국무부가 필리핀 공산당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했음에도 두테르테 대통령은 1987년부터 네덜란드에서 망명생활을 해온 시손의 귀국을 환영한다면서 공산당 측에 토지개혁부와 노동고용부 등 4개 부처 장관 자리를 제의하기도 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런 좌파 성향 때문에 기본적으로 미국보다 중국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위험한 파도타기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과 악연도 있다. 대학시절 여자친구와 미국을 방문하려 했을 때 비자가 거절됐다. 검사 출신인 그는 민다나오 섬의 다바오 시장이던 2002년 폭발사건에 연루돼 병원에서 치료받던 미국인 범죄용의자가 필리핀 사법당국의 허락이나 사전 조율 없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신병이 인도된 것에 상당히 분개했다고 한다. 그는 항상 미국이 지나치게 내정에 간섭한다고 불만을 표출해왔다. 특히 그는 필리핀을 인권보다 마약이 없는 청정국가를 만드는 게 더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그의 친중반미 노선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아태)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패권다툼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세력 판도가 변할 수 있다. 미국은 아태 국가들과 구축해온 ‘중국 포위망’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미국은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를 필리핀에 긴급 파견하는가 하면, 중국이 건설한 남중국해 인공섬 인근 해역에 구축함을 투입해 항행의 자유 작전을 재개했다. 러셀 차관보는 “필리핀과 중국의 긴장완화를 환영하지만 양국 관계 개선이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을 희생하면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과의 동맹 파기는 있을 수 없다”면서 한 발 후퇴했다. 아무튼 그의 행보가 동맹국과의 관계 약화, 중국에 대한 지렛대 상실, 국내 여론 악화 등 경착륙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의 76%는 미국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반면, 중국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필리핀 대통령의 행보에 따라 남중국해에서 더욱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잘 알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앞으로도 좌충우돌하면서 파도타기를 계속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