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셋을 둔 30대 중반의 가장 이경환 씨는 이 같은 고민을 포도재무설계를 찾아가 상담을 통해 해결했다. 마련한 방책(方策)은 아파트를 전세 놓아 전세금으로 대출금을 모두 갚은 뒤, 허름하지만 싼 전셋집으로 옮기는 것. 이씨는 재무설계사(이하 FP·23쪽 Tip 참조)와 함께 앞으로 매달 100만원 이상 저축한 뒤 4년 후 다시 아파트에 입주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씨는 “내 집에 들어갈 때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재무설계’ 혹은 ‘자산관리’가 귀에 익은 용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동창 모임에서는 재무설계 사업을 한다는 친구가 한둘씩 있게 마련이고, 자산관리 무료 세미나 초청장도 종종 날아온다. 그렇다면 재무설계, 자산관리란 무엇일까? 어떤 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일까?
저소득층에서 자산가까지, 모두를 위한 프라이빗 뱅커
재무설계(Financial Planning)란 연령대 혹은 개인별 여건에 따른 삶의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자산관리 및 종합운용계획을 마련하고, 시장이나 환경변화에 따라 이를 적절히 손질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러한 재무설계를 도울 수 있는 전문가를 재무설계사라고 칭한다.
-한국FP협회 홈페이지(www.fpkorea.com)에서
개인이나 가계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로는 시중은행의 프라이빗 뱅킹(PB)이 잘 알려져 있다. 보험회사나 증권회사도 은행 PB와 비슷한 창구를 두고 금융상품뿐 아니라 부동산, 세무 등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는 문턱이 높다. 수억원대 금융자산을 예치하거나, 매달 납입액이 수백만원 이상이어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반해 재무설계(혹은 자산관리) 컨설팅 업체들은 자산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모두를 위한 PB’인 셈이다. 연수입 4000만~7000만원의 대졸 중산층을 두꺼운 고객층으로 삼는 가운데, 봉급 100만원가량의 비정규직 종사자에서부터 수십억 자산가까지 재무설계 컨설팅을 요청한다.
자산가들은 특정 금융회사와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 업체가 좀더 객관적인 조언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며 찾아오고, 총자산이 마이너스인 사람은 현명하고 전략적인 ‘빚 탈출’을 위해 문을 두드린다. 포도재무설계 김경미 고객지원실장은 “저소득층이나 부채가 있는 사람들은 금융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돼 있다”며 “자산가보다는 이들에게 재무설계 컨설팅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대출부터 부동산 처분까지 전방위 컨설팅
재무설계 컨설팅은 재테크 상담과 일견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한국FP협회 김인호 부장은 “재테크가 손익계산서 관점이라면, 재무설계는 대차대조표 관점”이라고 설명한다. 재테크가 단기간에 투자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면, 재무설계는 인생 전반을 놓고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한 중·장기적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FP들은 다소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자산관리를 선호한다.
재무설계 컨설팅에서 이뤄지는 상담 내용은 다채롭다. 보험, 펀드, 예·적금, 대출 등 금융상품뿐 아니라 부동산 및 자녀 사교육, 세금 문제까지 망라한다. 업체들 대부분이 변호사, 세무사, 부동산 전문가, 사교육컨설팅업체 등과 제휴를 맺고 이들에게서 전문적인 분석과 조언을 제공받는다. 정확하고 상세한 재무설계를 위한 첫걸음은 고객이 자신의 모든 재무 정보를 FP에게 공개하는 것이다(24쪽 상자기사 참조).
FP들은 고객들에게 불필요한 보험상품을 해약하거나 자녀 사교육비를 소득에 맞게 조정하도록 조언하고,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는 주식 펀드상품을 권유하고, 부동산 전문가를 대동해 투자 대상 부동산을 답사하기도 한다. 지출과 관련한 상세한 조언도 이뤄진다. 신혼의 최은영(34·여) 씨는 “FP에게서 가계부 적는 방법을 배웠고,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사용해 지출을 줄이도록 권유받았다”고 했다. 파이낸피아 민미숙 자산관리팀장은 “소득이나 자산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고객에게는 자녀 유학 계획을 포기하라고 권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재무설계 전승완 SUPEX지점장은 “퇴직금과 집 한 채가 자산의 전부인 50대 중·후반의 은퇴 예정자들에게는 부동산 처분을 권한다. 하지만 선뜻 실행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전했다.
금융상품보다 재무설계 관심 크다면 유료 이용을
9월26일 동아일보사 주최로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재무설계 강연에 많은 청중이 몰렸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길어야 5년 안팎의 신생 업계이고, 은행 PB나 증권사, 보험사가 무료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향으로 아직은 무료 업체가 더 많다. 그러나 점차 유료로 전환하는 추세다.
유료 업체의 상담료는 각기 상이한데, 최하 요금은 10만~30만원 선으로 책정돼 있다. 그리고 자산 규모나 소득수준, 서비스 내용에 따라 상담료가 올라간다. 물론 시간당 요금이 아니라, 6단계 재무설계(24쪽 상자기사 참조)에 대한 비용이다.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두 달이며, FP와 서너 차례 만나게 된다.
FP들이 고객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무료 컨설팅을 해주고 어떻게 운영이 되느냐”는 것. 이들 업체의 주 수입원은 금융상품 판매수수료다. 상담 마무리 단계에서 고객에게 적합한 금융상품을 추천하고, 가입 신청을 받아 판매수수료를 취득하는 식이다. 유료 상담 업체들도 전체 매출의 95%가량이 금융상품 판매수수료일 정도로 상담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에 그친다. 이 때문에 일부 FP들은 “아직 한국에는 재무설계 업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수수료는 보험, 펀드, 대출상품 판매와 부동산 중개 등으로부터 나오는데, 이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것은 보험상품이다. 모 업체 간부는 “고객 한 명이 서너 개 상품에 가입해야 수지가 맞는다”며 “그러나 세 명 중 두 명은 무료 컨설팅만 받고 금융상품에는 가입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허탕을 친다”고 털어놨다.
재무설계 컨설팅 업체들은 대부분 보험회사의 독립법인대리점(이하 GA·General Agency)으로 등록돼 있다. 한 개 혹은 복수의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고, 그들의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 계약조건에 따라 보험사가 임대료와 집기 비용을 지원하기도 한다. 또 펀드권유인 자격을 취득한 FP들은 한 개 증권사와 계약을 맺고 그 회사의 펀드상품을 판매한다.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 탓에 고객에게 최적의 재무설계를 해준다는 이상과, 계약 맺은 금융회사 상품을 팔아야 수익이 남는다는 현실이 충돌하기도 한다.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사무국장은 “FP들도 결국 보험설계사이기 때문에 불완전 판매나 수익률 과장과 같은 보험 관련 분쟁이 똑같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보험상품은 보험회사마다 비슷해 그다지 문제가 덜하지만, 펀드는 증권사마다 질적 차이가 나기 때문에 FP의 펀드 권유가 100% 객관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김인호 부장은 “금융상품 가입보다 재무설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싶다면 일부로라도 유료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한편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시행되면 이들 업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펀드상품에 대해 현재는 개별 FP가 권유만 할 수 있지만, 자통법 시행 이후에는 법인이 직접 판매할 수 있다. HB파트너스 서기수 대표는 “재무설계 법인이 여러 증권사의 펀드상품을 취급할 수 있게 돼 객관성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 내다봤다. 동시에 이들 업체의 대(對)고객 책임도 커지게 된다. 자통법이 금융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금융소비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전승완 지점장은 “소비자의 위험 보유(Risk Tolerance) 성향, 즉 안전지향형인지 위험감수형인지를 파악하고 그 성향에 맞는 금융상품 가입을 권유해야 하며, 잘못된 권유로 인한 고객의 경제적 손실을 책임 연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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