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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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만큼만 뛰면 감천이죠”

프랑스 리그 진출 박주영의 롤모델은 박지성 … 佛 넘어 빅리그 진출 야심만만

  • 장영희 스포츠 라이터

    입력2008-10-15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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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무슨 ‘축구 천재’예요. ‘축구 천재’가 아니라 바보죠. 축구에 미친 바보. 다른 거 별로 못해보고 축구만 알고 산 바보예요.”

    2005년 FC서울 입단 후 매스컴으로부터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박주영(23)은 당시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축구 천재’란 타이틀이 무척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자신을 ‘축구 천재가 아닌 축구에 미친 바보’라고 표현한 그는 매스컴의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의 관심에 대해 ‘무관심’을 나타내며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에만 푹 빠져 있었다. ‘축구 천재’라는 타이틀은 나중에 월드컵에서 잘 뛰었거나 유럽에 진출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 그가 프랑스 AS모나코로 이적한 후 5주 만에 귀국했다. 국가대표팀 합류가 아닌 개인적인 휴가 차원이었다. 10월15일 열리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차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에 뽑혔다면 귀국 후 바로 대표팀에 합류했겠지만 박주영은 이번 대표팀에선 이름을 내밀지 못했다.

    허정무 감독이 박주영의 플레이를 직접 보기 위해 모나코까지 찾아갔음에도 UAE전에는 발탁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주영은 귀국 인터뷰에서 “아쉬움은 없다. 내 실력이 모자랐을 뿐이다”라고 말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박주영의 측근은 “박주영이 모나코로 출국할 때 너무 갑자기 떠나는 바람에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면서 “이번 대표팀에 뽑히지 않았던 게 오히려 휴식과 정리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알려진 대로 박주영의 AS모나코 입단은 전격적이었다. 이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위건 애슬레틱에서 박주영을 영입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어 스포츠 담당 기자들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위건 애슬레틱이 아닌 AS모나코로의 이적은 그저 ‘설(說)’로만 생각했을 뿐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출국 전날 밤 박주영의 진로가 최종 결정됐고 박주영은 AS모나코에서 보내온 e티켓을 받아들고 다음 날 아침 에이전트 이동엽 씨, FC서울 강명원 팀장과 함께 모나코행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5년째 교제해온 연상의 여친은 정신적 지주

    박주영은 AS모나코로 이적 후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환상적인 데뷔전을 치러 프랑스 언론의 조명을 받았지만 이후 경기에서는 골 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이전트와 함께하는 모나코 생활에 나름대로 잘 적응하는 박주영은 기자들 앞에서 보이는 무뚝뚝한 모습과는 달리 동료 선수들과 식사도 같이 하고 대화도 나누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에이전트의 전언이다.

    실제로 예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도 박주영은 입담이 좋았고 잘 웃었으며 언론을 향해서도 날선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많은 기자들이 함께하는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의 박주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던 탓에 인터뷰를 마치고 박주영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박주영은 필자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자신감 넘치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필자가 “인생에 걱정, 근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말하자 “인생 쉽게 살아야 한다. 하기 싫은 거 안 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야 한다”면서 “나한테는 ‘축구 = 재미’로 인식돼 있다.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해야 하니까,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하는 건 아니다”라는 제법 ‘쿨한’ 반응을 내보여 필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박주영은 유럽에 진출하면서 이전부터 눈여겨봐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의 팀 내 위치와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성장 과정, 그리고 박지성이 수술과 재활 등 우여곡절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 오른 점을 보고 느끼고 배우려고 한다. 다른 선수들과의 비교는 내심 자존심 상해하면서도 박지성과의 비교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그 형 정도의 실력을 갖추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숨기지 않는다.

    “유럽에서 뛰는 선배들의 플레이가 정말 기가 막혔다. 역시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럽 무대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 힘든 건데 주전으로 뛰고 있으니까 나한테는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이전 인터뷰에서 이 같은 대답을 했던 박주영이 지금은 AS모나코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만 박주영의 속내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을 듯하다. 오히려 유럽에서 생활하며 박지성이 세계 명문클럽에서 도태되지 않고 활약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실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주영은 익히 알려진 대로 5년간 교제해온 여자친구가 있다. 여자친구의 존재는 2005년 4월 대전 시티즌전에서 골을 터뜨린 후 애벌레와 하트가 그려진 언더셔츠를 내보이는 세리머니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박주영과 같은 대학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현재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한 살 연상의 여자친구는 박주영에게 정신적 지주나 마찬가지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지금의 여자친구와 결혼할 것이라는 박주영은 당분간 결혼보다는 서로가 추구하는 일과 목표를 달성한 후 행복한 가정생활을 꿈꾸게 될 것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박주영의 AS모나코 이적 후 FC서울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박주영의 공백이 FC서울에 ‘암’보다는 ‘명’을 줬다는 분위기인데, 팀 공격수 정조국은 “박주영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과 노력이 팀 분위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프로 데뷔 이후 질풍노도의 시간을 거쳐온 박주영. 축구 인생의 소원 중 한 가지였던 해외 진출에 성공해 프랑스 리그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가 언제쯤이면 이름 앞에 당당히 ‘축구 천재’란 타이틀을 내걸 수 있을까. AS모나코에서 축구 인생의 1막2장이 펼쳐지길 기대하며 박주영의 풍성한 골 소식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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