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 파이넥스 상용화 설비. 지난해 5월 세계 최초로 준공됐다.
미국발(發) 금융위기 여파로 한국 증시도 초토화됐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량주 저가매수’의 기회는 빛을 더한다. 포스코는 삼성전자와 함께 늘 그런 ‘위기 속 기회’를 상징하는 대표주자로 꼽혀왔다. 삼성증권은 9월17일 포스코의 향후 6개월 목표주가를 76만원으로 잡았다. 전날 종가(41만원)의 2배에 육박한다. 김경중 애널리스트는 “하반기 실적이 예상보다 좋을 것으로 전망되는 등 2008~2009년에도 높은 수익성을 안정되게 유지해 지수방어주로서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톤은 차분해도 요즘 같은 침체장에선 보기 드문 찬사다.
지난해 매출 22조2067억원, 부채비율 24%
파이넥스 공법은 자연상태 그대로의 철광석, 유연탄에서 쇳물을 생산하므로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왼쪽), 포스코 고로에서 철강석을 녹인 쇳물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11월30일 포스코 이구택 회장이 개수공사를 마친 광양제철소 3용광로에 불을 지피고 있다.
미국의 철강업 리서치 기관 WSD가 전 세계 철강사의 강약점을 가중평균해 발표하는 종합경쟁력 평가 결과 포스코는 수익성, 재무구조, 기술개발 등에서 최고점을 받아 1980년대 중반 이후 매년 1, 2위를 달리고 있다. 아르셀로미탈, 신일본제철 등 유수의 대형 철강사보다 경쟁력 순위가 높다. 신용등급도 스탠더드앤푸어스(S·P)로부터는 A, 무디스로부터는 A1을 받아 세계 철강사 중 최고 수준이다. 포스코는 1994년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데 이어 1995년 런던증시, 2005년 도쿄증시에 잇따라 상장됐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까다로운 상장 조건을 내걸고 있는 이들 3대 증시에 안착한 것은 포스코의 기업구조와 회계, 경영능력 등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함을 공인받았다는 의미다.
포스코는 초석을 다지는 과정에서 개발독재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1960년대 중반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다른 산업에 기초 소재를 제공하는 철강산업을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핵심산업으로 인식하고 종합제철소 건설을 적극 지원했다. 농어업 분야에 사용하기로 돼 있던 대일(對日)청구권 자금을 제철소 건설에 전용하자는 박태준 당시 사장의 아이디어가 관철된 것도 그 덕분. 박 전 대통령은 일관제철소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1970년 철강공업육성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 무렵 여러 업체가 설비·원료 구매에 개입할 의도로 유언비어와 역(逆)정보를 퍼뜨리는가 하면 정치권 역시 설비 구매 때 리베이트를 요구하자 박 사장은 정치권의 압력 배제, 설비공급업자 선정의 재량권 인정 등을 건의하는 메모를 박 전 대통령에게 건넸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종이 마패’로 불리게 된 이 메모에 친필 사인을 해 외부 압력을 막아주는 등 정치적,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포스코가 40년 무적자 경영을 이어온 요인으로는 우선 순발력 있는 위기관리 능력이 꼽힌다. 제철소 건설과정부터가 그랬다. 제철소는 대개 제품생산 순서에 따라 제선(철광석, 유연탄 등을 고로에 넣고 쇳물을 뽑아내는 과정)-제강(쇳물에서 각종 불순물을 제거하는 공정)-압연(쇳물을 쇠판 형태로 뽑아내 압축하는 과정)공장 순으로 건설하는 포워드 방식을 택한다. 그런데 포스코는 제품생산 공장부터 짓는 백워드 방식을 택했다. 공정이 짧은 압연, 제강공장을 먼저 지은 뒤 수입한 반제품으로 완제품을 생산해 얻은 수익을 앞 공정 건설에 투자하며 제철소를 지어나간 것. 또 1980년대에는 오일쇼크와 선진국의 기술이전 기피 움직임에 맞서 일찌감치 독자적인 제품 개발을 추진했고, 1990년대엔 전 세계적 철강수요 침체에 대처하기 위해 냉연, 후판, 스테인리스, 전기강판 등 고급강 생산비중을 높여나갔다.
지속적인 경영혁신도 성장의 키워드. 1999~2001년의 1기 혁신(PI·Process Innovation)은 세계 철강업계 최초로 회사 전체 시스템을 정보기술(IT)과 접목한 디지털 경영체제로 구축해 기업가치를 5조원 이상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2~2005년의 2기 혁신 때는 6시그마 방법론을 도입해 포항·광양제철소 81개 공장의 서로 다른 조업 시스템을 통합, 표준화했다. 3년 동안 불량률을 0에 가깝게 떨어뜨려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 전문가들 사이에 6시그마 경영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인정받으며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6년 시작된 3기 혁신도 ‘조직문화 혁신’에 초점을 맞춰 매년 1조원 이상의 원가절감 효과를 얻고 있다.
순발력 있는 위기관리 능력+지속적 경영혁신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50주년이 되는 2018년에는 연결기준으로 100조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포스코 비전 2018’을 선포했다. 철강 부문에서 양적으로는 확고한 ‘글로벌 빅3’, 질적으로는 ‘글로벌 톱3’로 거듭나 7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신수종 사업을 적극 발굴해 비철강 부문에서도 30조원의 매출을 이끌어내겠다는 것.
이렇듯 야심찬 마흔 살 포스코의 앞날에는 도약대와 장애물이 함께 놓여 있다. 내부적으로는 풍부한 자금력과 축적된 기술력, 고효율 경영 시스템으로 탄탄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도처에서 불어오는 거센 외풍은 세계 철강시장을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게 만든다. 국경과 대륙을 넘나드는 M·A 합종연횡은 생산량이 포스코의 4배(연 1억1700만t)에 이르는 거대 철강사(아르셀로미탈)를 탄생시켜 무한경쟁으로 내몰렸고, 중국 등 후발 철강사들의 추격으로 원가경쟁력과 기술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국내 철강산업이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내수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 더욱이 철광석 가격은 2000년대 들어 500% 가까이 치솟아 원가 부담을 키우고 있으며, 철광석 시장은 발레(브라질)·리오틴토(호주)·BHP.B(호주) 등 빅3 업체의 점유율이 70%가 넘어 이들 원료 공급사가 사실상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는 셀러즈 마켓(seller’s market)이다.
비철강 부문 신수종사업은 제2 성장동력
포스코가 생산한 냉연제품들.
중국 철강사들의 공세에는 고급제품 중심의 생산·판매체제 구축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이들과 기술격차가 크고 미래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제품을 전략제품으로 선정, 국내외 고객사와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하거나 자본 참여를 통해 결속을 강화할 방침. 2010년까지 전략제품 판매 비중을 전체의 70%로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특히 부가가치가 높은 데다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자동차강판 판매를 늘리기 위해 메이저 자동차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강종(鋼種) 개발에서 부품 적용에 이르기까지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원료개발 투자 확대와 원료공급처 다변화 전략도 자구책이다. 호주와 캐나다에 원료개발을 위한 자회사를 설립, 10여 개의 석탄·철광석광산 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뉴칼레도니아의 니켈광산 개발사업 지분을 인수했다. 포스코 측은 “2011년경에는 사용 원료의 30% 정도를 우리가 투자한 광산에서 조달할 수 있어 그만큼 가격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포스코는 비철강 부문의 신수종사업을 제2의 성장동력으로 키워 철강 부문 리스크의 완충장치로 삼을 계획이다. 대표적인 것이 연료전지사업. 2003년부터 포스텍, RIST와 발전용 연료전지사업을 추진해온 포스코는 9월4일 포항에 연 50MW 규모의 발전용 연료전지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상용화 공장을 준공했다. 여기서 생산하는 연료전지는 일반주택 1만7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밖에 태양광 발전사업, ‘무인 궤도 택시’라 불리는 PRT사업, 무선휴대인터넷(WiBro) 관련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IT사업도 함께 육성하고 있다.
포스코가 차세대 성장동력 가동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다. 포스코 이동희 부사장은 “포스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선박용 고품질 후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제철소와 조선소가 해외시장에 동반 진출하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또 해양플랜트와 연료전지 기술을 접목해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원유 생산시설을 건설할 수 있고, 소음 없이 전기를 만들어내는 연료전지를 활용해 무소음 잠수함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생산할 수 있는 등 우리 조선산업이 새 영역을 개척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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