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텐텐’은 마치 일본의 단무지 같아서 맵지도 짜지도 않은 작품이다. 강한 맛을 가진 김치가 주음식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엔 좀 싱거울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맛을 노렸다.
제목의 뜻처럼 이 영화를 보고 싶으면 조금 돌아다녀야 한다. 전국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은 단 한 곳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수고스럽더라도 영화를 보고 싶으면 발품을 팔아야 하고, 시간을 맞춰야 한다. 할리우드의 여느 상업영화마냥 멀티플렉스 이곳저곳에서 상영돼 아무 때나 가서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 ‘텐텐’이 엄청나게 걸작이라거나 이걸 안 보면 영화광 축에 끼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안 봐도 그만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외양상은 작고 볼품없으며 다량의 입소문을 뽑아낼 영화가 아니다. 다만 후지타 요시나가 쓴 소설을 본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 재기 넘치는 문학을 영화가 어떻게 요리했을까, 특히 마지막을 어떤 식으로 처리했을까가 궁금해서 한걸음에 달려갈 영화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요즘 책 읽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야지. 과연 소설을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이렇게 조용히 서울 구석 한쪽에서 홀로 상영되는 신세가 맞긴 맞는 것이다.
‘텐텐’은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가 아주 다르면서도 또 매우 흡사하다. 쉽게 말하면 영화는 소설에서 상당 부분을 빼버렸다. 한마디로 영화는 소설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소설을 본 사람들은 아 그 좋은 이야기들, 기막힌 설정들을 왜 다 빼버렸을까 하고 의아해하거나 심지어 분노해 마지않을 수도 있겠다. 반면 소설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영화 속 인물들이 왜 저리도 하릴없이 구는가라면서 거참 기묘한 작품도 다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영화 ‘텐텐’은 마치 일본의 단무지 같아서 맵지도 짜지도 않은 작품이다. 강한 맛을 가진 김치가 주음식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엔 좀 싱거울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참, 이 영화는 바로 그 맛을 노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데, 여기까지 읽어내려도 이렇게 설레발만 떠느냐고 구박하는 독자들이 보이는 듯하다. 줄거리를 쉽게 말하지 못하는 건 소설 줄거리를 이야기해야 할지, 아니면 담백하게 영화 줄거리만 말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이 참, 그냥 거두절미하고 아주 간편하게 몇 줄로만 이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해보겠다, 이런 것이다.
대학을 중퇴한 21세 청년 후미야(오다기리 조)는 할 일 없이 빈둥빈둥 살아가는 일종의 루저(loser)인데, 그냥 그렇게만 살면 자기도 좋고 남들도 좋고 다 좋겠지만 문제는 빚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물경 약 100만엔(환율이 미친년 치마폭마냥 널뛰고 있어 환전 액수는 쓰지 않겠다)이나 된다. 그에게 돈을 받으러 다니는 반은 조폭, 반은 사금융권 추심 담당자인 후쿠하라(미우라 도모카즈)는 후미야에게 기상천외한 제안을 한다. 자신과 같이 도쿄 시내를 여행하되, 경찰청이 있는 가즈미카세키까지만 가주면 된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후쿠하라는 우연한 일로 아내를 살해하고 자수하러 가기 전 아내와 함께 산책을 다녔던 도쿄의 길들을 다시 보고 싶었던 것이다. 기괴한 제안이긴 하지만 일단 돈이 급한 후미야는 후쿠하라와 함께 도쿄 여행을 떠나게 된다. 텐텐. 轉轉. 전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후지타 요시나의 소설이 원작 … 내용은 다르면서도 닮은 듯
소설과 달리 영화 ‘텐텐’의 주인공은 후미야와 후쿠하라가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도쿄다. 그것도 시부야나 신주쿠, 아키하바라나 하라주쿠 같은 도쿄의 중심, 번화한 다운타운이 아니고 우리가 평소 보지 못했던 도쿄의 옛날 동네, 뒷골목, 사라지고 있는 곳들이 주인공이다.
소설과 달리 영화 ‘텐텐’의 주인공은 후미야와 후쿠하라가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도쿄다. 그것도 시부야나 신주쿠, 아키하바라나 하라주쿠 같은 도쿄의 중심, 번화한 다운타운이 아니고 우리가 평소 보지 못했던 도쿄의 옛날 동네, 뒷골목, 사라지고 있는 곳들이 주인공이다. 영화를 만든 미키 사토시가 의도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반응하게 되는 것은 스토리나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소설이나 영화나 어찌 보면 설정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인생사 자체가 어찌 보면 억지투성이 같은 일들로 진행된다. 현실이 비현실 같고 비현실이 현실 같다. 그 부조리한 삶 속에서 우리는 늘 부딪치고 갈등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올바르게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영화 속 두 남자처럼 산책과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반성하고 통찰하며 자신들의 인생을 뒤돌아볼 일이다.
도쿄의 뒷골목 풍경들은 이 영화를 통해 얻게 되는 새로운 발견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언젠가 꼭 한 번은 저렇게 낙엽이 툭툭 떨어지는 도쿄의 길을 걷고 싶다. 그런데 그게 어디 도쿄뿐이겠는가. 서울이면 어떤가. 지금 당장 떠나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