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성교육을 하는 전문 강사 김광옥 씨.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의 성교육 시간. 2시간에 걸쳐 성폭력 예방 및 대처법에 대한 수업이 진행됐다. 화제가 음란물로 옮겨지자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럼 음란물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찰에 신고해요~.” “혼자 사는 아저씨한테 줘요~.”
이 학교 보건교사인 박정순 씨는 성교육을 받는 초등학생들의 반응이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성인들의 성문화가 그렇듯, 아이들이 성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는 깨졌지만 성의 일부분에만 관심이 쏠려 있고 개중에는 성관계에 대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들까지 있다는 것.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기 시작한 10여 년 전에는 생리대 이야기만 꺼내도 얼굴이 빨개지고 아무 말도 못하던 아이들이 이젠 ‘성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으면 너도나도 ‘섹스요’ ‘야한 거요’ 하고 외쳐요.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아이가 생긴다는 건 이미 다 아니까 다른 걸 알려달라’고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어요. 정작 물으면 정자를 생산하는 주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아이들인데 그래요.”(박정순 씨)
학교 성교육 강화됐지만 프로그램 부족 등 아직은 한계
그림 출처·“아이들이 생각하는 사랑과 성’(에디터)
초등학교 성교육은 주로 신체심리 발달과 성폭력 예방 및 대처법, 음란물과 관련한 내용에 맞춰진다. 성문화가 발달한 서구의 경우 우리의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시기 이미 피임과 성병에 대해 구체적인 교육을 한다. 반면 우리는 고등학교 수준에서 피임교육을 시작하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성폭력을 막기 위해 성교육이 시작된 우리와 달리 서구에서는 에이즈와 성병 예방을 목적으로 청소년 성교육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곧바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아이들이 신체적으로 성숙해지고 성문화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만큼 성교육도 진일보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공교육에서 성교육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조절할지 사회적 합의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의 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 성교육 전문 강사인 김광옥 씨는 “초등학생은 (성교육이) 특히 조심스럽고 고민된다”고 털어놓는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예전 중학생 수준으로 성숙한 아이들이 많아요. 앞으로 아이들은 더 변할 텐데 성교육 수위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고민이 많죠.”(김광옥 씨)
성교육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공교육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해에는 초·중등학교에서 체계적인 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학교보건법이 개정됐고, 9월 초·중등학교 보건교육과정과 관련한 수정 고시안이 발표됐다. 이 고시안의 발표로 2009년부터는 초등학교 5, 6학년에 한해 재량 활동시간에 성교육을 포함한 보건교육을 연간 17시간 이상 받게 된다(이전까지는 학교장 재량으로 초·중·고교 모든 학년에 걸쳐 연간 10시간 이상 성교육 시간을 갖도록 했지만 권고사항이라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보건교육포럼의 우옥영 이사는 “이전까지의 성교육에서는 교육여건이 부족한 탓에 성의 긍정적인 면을 빠뜨리고 성폭력처럼 문제 되는 부분을 줄이는 것에 주력했다”면서 “교과과정이 생기면 성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면을 고루 살피는 교육이 가능하겠지만 50시간이 넘는 선진국의 교육시간에 비해 우리의 17시간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중·고등학생에 비해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 성교육 프로그램은 부족한 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개개인에게 맞는 성교육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혜순 씨는 “성교육에는 성지식뿐 아니라 성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기관리 능력을 기르는 것이 모두 포함된다”며 “성교육이라고 따로 떼놓고 교육하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몸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려고 성교육 시간에 생리 축하카드를 쓴다 한들, 주변에서 ‘고생 시작됐구나, 어쩌니’ 하며 동정만 한다면 효과는 없는 거죠.”(김혜순 씨)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의 김은주 교육사업팀장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은 중·고등학교에 비해 교육적인 고민이나 그에 따른 교육프로그램 개발이 미흡하다”며 “초등학생들은 부모와의 거리감도 적고 교육효과도 좋은 만큼 일찍부터 가정 내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잠깐 성교육에 관심을 갖고는 이내 그 중요성을 잊는 부모가 대부분이에요. 아이들 성교육을 위해서는 부모 역시 올바른 성지식, 성의식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김은주 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