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세대 ‘추억의 명화’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이 몇 있다. ‘러브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대부’ ‘영웅본색’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도레미송’ ‘에델바이스’ ‘모든 산에 오르리’ 등 수많은 명곡을 가슴속에 남겨준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실제 상황을 그린 영화라기보다 픽션에 가깝다면? 청순한 수녀 지망생 마리아와 그녀를 따르던 7명의 아이들도, 냉정해 보이지만 실은 사랑을 갈망하는 폰 트라프 대령도 모두 지어낸 얘기에 불과하다면?
이 영화의 여주인공 마리아 폰 트라프의 막내아들인 요하네스 폰 트라프(69)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우리 가족과 별 상관이 없는 그저 미국적인 영화”라고 단언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사운드 오브 뮤직’ 가족의 후일담은 우리의 예상과 많이 다르다. 영화 속에서 폰 트라프 일가족-폰 트라프 남작(그는 실제로 오스트리아의 귀족이었다)과 마리아, 7명의 아이들-은 알프스를 넘어서 스위스로 망명한다. 그러나 ‘스위스로 망명한 가족’은 지금 스위스도 오스트리아도 아닌 미국에 살고 있다.
스위스 아닌 미국에 살고 있는 후손
실제 상황은 이렇다. 가족이 망명한 곳은 스위스가 아니라 미국이다. 폰 트라프 일가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펜실베이니아에 정착한 가족은 ‘폰 트라프 합창단’을 조직해 유럽 민요를 불러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들은 1942년 버몬트의 스토에 있는 산장을 사들여 ‘폰 트라프 산장’으로 이름 붙였다. 가족합창단이 공연을 갈 때면 산장의 빈방들을 다른 이들에게 빌려줘 돈을 벌기도 했다. 폰 트라프 남작은 1949년 세상을 떠났다.
평범했던 이들의 삶은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개봉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폰 트라프’라는 특이한 성 때문에 다들 이 가족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자 주위 사람들은 가족이 벌어들인 돈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돈을 번 당사자는 영화 판권을 가진 제작자들이었다. 폰 트라프 일가가 영화로 벌어들인 돈은 9000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 속 자녀는 7명이지만 실제로 폰 트라프 일가의 아이들은 10명이었다. 마리아는 영화 속 줄리 앤드루스와는 달리 까다롭고 근엄한 어머니여서 아이들은 늘 어머니 눈치를 보며 조바심을 쳐야 했다. 그런 마리아가 1987년 세상을 떠나자 산장은 재산권 분쟁에 휩싸였다. 산장의 지분을 무려 32명의 자녀와 손자가 나눠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고 긴 법적 분쟁을 거쳐 1999년 산장은 막내아들 요하네스의 소유가 됐다. 이 과정에서 형제들 사이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요하네스는 어린 시절 가족합창단의 일원으로 노래했던 기억이 있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질려서” 더는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심지어 산장에 ‘사운드 오브 뮤직’ 포스터조차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산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운드 오브 뮤직’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장년층 관광객이다. 요하네스는 얼마 전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산장의 기념품 가게에서 인기 있는 기념품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영화 속 ‘외로운 양치기’ 인형극에 나오는 염소 인형이더군요!” 산장 종업원들은 이 사실을 오랫동안 요하네스에게 숨겨왔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요하네스는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산장 홍보에 영화 적극 활용
지난해 요하네스는 산장 경영을 맡기기 위해 아들 샘 폰 트라프(36)를 불러들였다. 샘은 랄프 로렌 모델 출신으로 아스펜에서 스키 강사로 일한 경력도 있다. 2001년 ‘피플’지가 선정한 ‘가장 매력적인 미혼남 50인’에 뽑힐 만큼 유명한 모델이던 샘은 이제 연예계 활동을 접고 할머니와 아버지가 가꿔온 산장을 어떻게 경영해나갈지 궁리하고 있다.
아버지와 달리 샘이 짜낸 계획은 ‘사운드 오브 뮤직’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의 경영방침에는 휴일마다 산장에서 오스트리아풍 민요 공연을 한다거나, ABC 방송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편성할 때 산장 광고를 내보내는 홍보 전략 등이 포함돼 있다. 요하네스는 이런 아들의 계획에 더는 반대하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이 영화만큼 좋은 홍보 수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웃음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산장을 채운다면, 그건 참 좋은 일이지요.”
요하네스는 곧 모든 경영권을 샘에게 물려주고 은퇴해 몬태나로 갈 계획이다. ‘폰 트라프 산장’이 마리아의 막내손자 손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런데 어린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도레미송’ ‘에델바이스’ ‘모든 산에 오르리’ 등 수많은 명곡을 가슴속에 남겨준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실제 상황을 그린 영화라기보다 픽션에 가깝다면? 청순한 수녀 지망생 마리아와 그녀를 따르던 7명의 아이들도, 냉정해 보이지만 실은 사랑을 갈망하는 폰 트라프 대령도 모두 지어낸 얘기에 불과하다면?
이 영화의 여주인공 마리아 폰 트라프의 막내아들인 요하네스 폰 트라프(69)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우리 가족과 별 상관이 없는 그저 미국적인 영화”라고 단언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사운드 오브 뮤직’ 가족의 후일담은 우리의 예상과 많이 다르다. 영화 속에서 폰 트라프 일가족-폰 트라프 남작(그는 실제로 오스트리아의 귀족이었다)과 마리아, 7명의 아이들-은 알프스를 넘어서 스위스로 망명한다. 그러나 ‘스위스로 망명한 가족’은 지금 스위스도 오스트리아도 아닌 미국에 살고 있다.
스위스 아닌 미국에 살고 있는 후손
실제 상황은 이렇다. 가족이 망명한 곳은 스위스가 아니라 미국이다. 폰 트라프 일가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펜실베이니아에 정착한 가족은 ‘폰 트라프 합창단’을 조직해 유럽 민요를 불러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들은 1942년 버몬트의 스토에 있는 산장을 사들여 ‘폰 트라프 산장’으로 이름 붙였다. 가족합창단이 공연을 갈 때면 산장의 빈방들을 다른 이들에게 빌려줘 돈을 벌기도 했다. 폰 트라프 남작은 1949년 세상을 떠났다.
평범했던 이들의 삶은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개봉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폰 트라프’라는 특이한 성 때문에 다들 이 가족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자 주위 사람들은 가족이 벌어들인 돈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돈을 번 당사자는 영화 판권을 가진 제작자들이었다. 폰 트라프 일가가 영화로 벌어들인 돈은 9000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 속 자녀는 7명이지만 실제로 폰 트라프 일가의 아이들은 10명이었다. 마리아는 영화 속 줄리 앤드루스와는 달리 까다롭고 근엄한 어머니여서 아이들은 늘 어머니 눈치를 보며 조바심을 쳐야 했다. 그런 마리아가 1987년 세상을 떠나자 산장은 재산권 분쟁에 휩싸였다. 산장의 지분을 무려 32명의 자녀와 손자가 나눠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고 긴 법적 분쟁을 거쳐 1999년 산장은 막내아들 요하네스의 소유가 됐다. 이 과정에서 형제들 사이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요하네스는 어린 시절 가족합창단의 일원으로 노래했던 기억이 있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질려서” 더는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심지어 산장에 ‘사운드 오브 뮤직’ 포스터조차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산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운드 오브 뮤직’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장년층 관광객이다. 요하네스는 얼마 전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산장의 기념품 가게에서 인기 있는 기념품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영화 속 ‘외로운 양치기’ 인형극에 나오는 염소 인형이더군요!” 산장 종업원들은 이 사실을 오랫동안 요하네스에게 숨겨왔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요하네스는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산장 홍보에 영화 적극 활용
지난해 요하네스는 산장 경영을 맡기기 위해 아들 샘 폰 트라프(36)를 불러들였다. 샘은 랄프 로렌 모델 출신으로 아스펜에서 스키 강사로 일한 경력도 있다. 2001년 ‘피플’지가 선정한 ‘가장 매력적인 미혼남 50인’에 뽑힐 만큼 유명한 모델이던 샘은 이제 연예계 활동을 접고 할머니와 아버지가 가꿔온 산장을 어떻게 경영해나갈지 궁리하고 있다.
아버지와 달리 샘이 짜낸 계획은 ‘사운드 오브 뮤직’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의 경영방침에는 휴일마다 산장에서 오스트리아풍 민요 공연을 한다거나, ABC 방송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편성할 때 산장 광고를 내보내는 홍보 전략 등이 포함돼 있다. 요하네스는 이런 아들의 계획에 더는 반대하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이 영화만큼 좋은 홍보 수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웃음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산장을 채운다면, 그건 참 좋은 일이지요.”
요하네스는 곧 모든 경영권을 샘에게 물려주고 은퇴해 몬태나로 갈 계획이다. ‘폰 트라프 산장’이 마리아의 막내손자 손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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