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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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엄한 어머니였다”

영화와는 다른 ‘사운드 오브 뮤직’ 가족 … 美 폰 트라프 산장은 손자가 리모델링

  • 전원경 객원기자 winnejeon@hotmail.com

    입력2009-01-29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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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 세대 ‘추억의 명화’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이 몇 있다. ‘러브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대부’ ‘영웅본색’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도레미송’ ‘에델바이스’ ‘모든 산에 오르리’ 등 수많은 명곡을 가슴속에 남겨준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실제 상황을 그린 영화라기보다 픽션에 가깝다면? 청순한 수녀 지망생 마리아와 그녀를 따르던 7명의 아이들도, 냉정해 보이지만 실은 사랑을 갈망하는 폰 트라프 대령도 모두 지어낸 얘기에 불과하다면?

    이 영화의 여주인공 마리아 폰 트라프의 막내아들인 요하네스 폰 트라프(69)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우리 가족과 별 상관이 없는 그저 미국적인 영화”라고 단언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사운드 오브 뮤직’ 가족의 후일담은 우리의 예상과 많이 다르다. 영화 속에서 폰 트라프 일가족-폰 트라프 남작(그는 실제로 오스트리아의 귀족이었다)과 마리아, 7명의 아이들-은 알프스를 넘어서 스위스로 망명한다. 그러나 ‘스위스로 망명한 가족’은 지금 스위스도 오스트리아도 아닌 미국에 살고 있다.

    스위스 아닌 미국에 살고 있는 후손



    실제 상황은 이렇다. 가족이 망명한 곳은 스위스가 아니라 미국이다. 폰 트라프 일가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펜실베이니아에 정착한 가족은 ‘폰 트라프 합창단’을 조직해 유럽 민요를 불러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들은 1942년 버몬트의 스토에 있는 산장을 사들여 ‘폰 트라프 산장’으로 이름 붙였다. 가족합창단이 공연을 갈 때면 산장의 빈방들을 다른 이들에게 빌려줘 돈을 벌기도 했다. 폰 트라프 남작은 1949년 세상을 떠났다.

    평범했던 이들의 삶은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개봉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폰 트라프’라는 특이한 성 때문에 다들 이 가족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자 주위 사람들은 가족이 벌어들인 돈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돈을 번 당사자는 영화 판권을 가진 제작자들이었다. 폰 트라프 일가가 영화로 벌어들인 돈은 9000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 속 자녀는 7명이지만 실제로 폰 트라프 일가의 아이들은 10명이었다. 마리아는 영화 속 줄리 앤드루스와는 달리 까다롭고 근엄한 어머니여서 아이들은 늘 어머니 눈치를 보며 조바심을 쳐야 했다. 그런 마리아가 1987년 세상을 떠나자 산장은 재산권 분쟁에 휩싸였다. 산장의 지분을 무려 32명의 자녀와 손자가 나눠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고 긴 법적 분쟁을 거쳐 1999년 산장은 막내아들 요하네스의 소유가 됐다. 이 과정에서 형제들 사이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요하네스는 어린 시절 가족합창단의 일원으로 노래했던 기억이 있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질려서” 더는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심지어 산장에 ‘사운드 오브 뮤직’ 포스터조차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산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운드 오브 뮤직’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장년층 관광객이다. 요하네스는 얼마 전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산장의 기념품 가게에서 인기 있는 기념품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영화 속 ‘외로운 양치기’ 인형극에 나오는 염소 인형이더군요!” 산장 종업원들은 이 사실을 오랫동안 요하네스에게 숨겨왔다. 이 사실을 알고 난 요하네스는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산장 홍보에 영화 적극 활용

    지난해 요하네스는 산장 경영을 맡기기 위해 아들 샘 폰 트라프(36)를 불러들였다. 샘은 랄프 로렌 모델 출신으로 아스펜에서 스키 강사로 일한 경력도 있다. 2001년 ‘피플’지가 선정한 ‘가장 매력적인 미혼남 50인’에 뽑힐 만큼 유명한 모델이던 샘은 이제 연예계 활동을 접고 할머니와 아버지가 가꿔온 산장을 어떻게 경영해나갈지 궁리하고 있다.

    아버지와 달리 샘이 짜낸 계획은 ‘사운드 오브 뮤직’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의 경영방침에는 휴일마다 산장에서 오스트리아풍 민요 공연을 한다거나, ABC 방송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편성할 때 산장 광고를 내보내는 홍보 전략 등이 포함돼 있다. 요하네스는 이런 아들의 계획에 더는 반대하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이 영화만큼 좋은 홍보 수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웃음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산장을 채운다면, 그건 참 좋은 일이지요.”

    요하네스는 곧 모든 경영권을 샘에게 물려주고 은퇴해 몬태나로 갈 계획이다. ‘폰 트라프 산장’이 마리아의 막내손자 손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날이 머지않았다.

    오리지널 ‘사운드 오브 뮤직’은 무엇?

    ‘트라프 가족의 노래’ 9000달러에 獨 영화사에 판매


    요하네스는 “어머니가 ‘사운드 오브 뮤직’의 판권을 1950년대 중반 독일 영화사에 9000달러를 받고 팔았다. 때문에 우리는 영화와 뮤지컬의 이익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초의 ‘사운드 오브 뮤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가 아닌 걸까?

    ‘사운드 오브 뮤직’의 원작은 마리아 폰 트라프가 쓴 회고록 ‘트라프 가족의 노래’다. 마리아는 남편이 사망한 뒤 회고록의 판권을 할리우드가 아닌 독일 영화사에 팔았다. 저자가 마리아이기 때문에 당연히 회고록의 주인공은 마리아이며, 모든 상황이 그녀에게 유리하도록 묘사돼 있다.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독일 영화 ‘폰 트라프 가족’이 1956년 개봉됐고, 이어 58년에는 속편 격인 ‘미국의 폰 트라프 가족’이 제작됐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제작자인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이 이 독일 영화를 보고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 1959년의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영화가 뮤지컬로 바뀌는 과정에서 실제 상황에 가깝던 ‘폰 트라프 가족’의 내용은 대폭 수정됐다. 원래 마리아는 폰 트라프가(家) 아이들 중 한 명의 가정교사였으나 뮤지컬에서는 모든 아이를 맡아 가르친다. 그리고 가장 큰 아이가 여자아이인 리즐이라는 설정도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폰 트라프 일가의 장자는 아들이었다. 아이들의 이름도 뮤지컬에서 발음하기 좋게 바뀌었다. 이 뮤지컬은 1965년 줄리 앤드루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주연의 영화로 제작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원작 뮤지컬은 지금까지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얼굴인 줄리 앤드루스는 원래 웨스트엔드에서 활동한 뮤지컬 배우였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런던 초연 당시 주인공을 맡았던 그녀는 ‘메리 포핀스’(1964),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뮤지컬 영화에 연달아 캐스팅되며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영화배우로 변신한 앤드루스는 2001년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라프 대령 역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TV 영화 ‘황금 연못’에 남녀 주연으로 캐스팅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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