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남잡지’ 내용 일부
“고자(高子)는 우리나라 말로 내시를 이르니 ‘조고(趙高·중국 진(秦)나라의 환관)의 자식’이라는 뜻이다.”
민간어원은 대개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민간에서는 사실로 받아들이곤 한다. 때론 확인되지 않는 어원을 민간어원에서 찾기도 한다. 민간어원의 문화사적 의의도 여기에 있다.
조선 후기 재야 선비 송남(松南) 조재삼(趙在三·1808~1866)은 ‘사나이’와 ‘고자(鼓子·생식기가 불완전한 남자)’의 어원을 역사 속 인물에서 찾았다. 조재삼은 평생 손 가는 대로 잡다하게 이곳저곳에서 모으고 분류한 백과사전인 ‘송남잡지(松南雜識)’를 저술한 인물. 우주의 발생부터 이기론, 풍속, 은어, 속어 등을 메모 형태로 집대성한 책으로 최근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지원하는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소명출판)에 포함돼 전 13권 분량으로 완역됐다.
‘송남잡지’를 완역한 경북대 강민구 교수(한문학)는 “논문을 쓸 때 주요 내용을 찾기 쉽게 카드로 만들어 쓰는 것처럼, 별도 책을 집필하기 위해 분야별로 분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어쨌든 조재삼의 어원 설명은 현재 시각에서 보면 포복절도할 만한 내용도 있지만 국어사적으로 어원을 바꿔야 할 내용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우주 발생부터 은어·속어까지 담아
경상도에서 여성, 주로 젊은 여성을 비하하거나 가까운 사이에서 부르는 ‘가시나(가시내)’. 조재삼은 이 말의 뿌리를 한자어 ‘稼産兒(가산아)’라고 주장하면서 유래를 원(元) 간섭기 고려시대 풍습에서 찾았다. “고려 말 원나라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선발해 갔는데,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원으로 가서 그 혁파를 상소했다.
그래서 지금 촌 여자아이들을 ‘가시나(稼産兒)’로 칭한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가산아(가시나)’는 가정이 구한 아이가 된다. 그는 또 다른 해석도 소개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고려 말에 영남의 남정(男丁)을 선발해 군대에 내보내는데 남정이 부족해 대신 여자들로 충원했다. 그래서 ‘가시나(假似那海)’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가 채록한 ‘고린내’와 ‘방귀’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연암 박지원이 ‘중국 사람은 몹시 더러운 냄새를 고리취(高麗臭)라고 한다. ‘麗’의 음은 ‘리’이다. 고려 사람의 닦지 않은 발 냄새다’라고 했다.”
‘송남잡지’ 표지(오른쪽)와 본문.
지금의 똥 냄새 나는 기체를 내뿜는 것을 ‘방귀(放氣)’라 하는 말은 여기서 유래됐다.”
멸치를 설명하는 대목에선 웃음이 난다. 조재삼은 이를 ‘멸려치(滅麗治)’라고 표기하면서 “지금 영남에서 생산된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멸치는 고려가 망할 때(滅麗) 처음 잡힌 고기라 해서 생긴 명칭이 된다. 멸치를 경상도에서는 ‘미르치’ ‘메르치’ ‘메루치’ 등으로 발음하는데 조재삼의 표기는 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작 멸치의 본고장에서 사용하는 말은 비표준어라 해서 퇴출되고, 멸치가 표준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살구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 “우리나라에서는 행(杏·살구)을 ‘殺狗(살구)’라 하는데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복용한다.” 이를 따른다면 살구는 체한 개고기를 내리기(죽이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요즘도 일부 보신탕 전문점에서 살구를 후식으로 내놓는 것을 보면 황당한 유래만은 아닌 듯하다.
주전부리(酒前喙)와 약주(藥酒)에 대한 설명은 민간어원설을 넘어 국어사적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는 설명이 등장한다.
“술 마시는 사람이 술 마시기 전에 안주를 먹으면 술이 잘 받고 또한 크게 취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세 끼 식사 외에 시도 때도 없이 쉬지 않고 입을 놀려 먹어대는 것을 주전부리(酒前喙)라고 한다.” 여기서 ‘喙(훼)’는 ‘새의 부리’를 일컫는 한자.
조재삼은 ‘살구’를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복용하는 과일로 해석한다.
“약봉(藥峯) 서성(徐·조선 중기 문신)이 술을 좋아하여 특별히 거듭 빚은 술을 만들었기에 ‘약주(藥酒)’라고 불렀다. 약주는 약봉가(藥峯家)에서 시작된 것으로 금으로 장식한 술독에 약을 섞은 술과는 다르다.” 강 교수는 ‘주전부리’ ‘약주’ 등의 설명은 “민간어원설하고는 다른 차원의 설명이다. 충분히 어원으로 받아들일 만한 신빙성 있는 내용”이라며 “을씨년스럽다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을씨년스럽다’는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는 뜻. 일제가 1905년 을사년에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統監)정치를 실시한 이후 이 표현이 생겼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조재삼은 “세상에서 을사년(乙巳年)은 흉하다고 두려워하는 까닭에 지금 생전 낙이 없는 것을 ‘을씨년스럽다’고 한다”고 설명한다.
알려진 바와 달리 이미 선조들이 이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 강 교수는 ‘송남잡지’로 인해 일부 잘못된 어원설명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 조선시대에는 ‘말’ 대신 ‘돌’과 ‘떡’을 사용한 듯하다. 책에는 “돌 던지면 돌로 던지고 떡 던지면 떡으로 던진다(石擲則石擲, 餠擲則餠擲)”는 표현이 수록돼 있다.
최근 완역해 출간한 ‘송남잡지’.
한편 조재삼은 서문에서 “묘소에 은거하면서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하여 수개월 만에 33편을 편집했다”고 썼다. 서문에는 ‘을묘년(1855) 8월 상한(上澣)’이라고 쓰여 있어 이 무렵 ‘송남잡지’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와 같은 분량의 ‘송남잡지’를 몇 개월 만에 완성할 수는 없는 까닭에 이 말은 곧 조재삼이 평소 각종 책을 섭렵하면서 ‘메모’해둔 것을 단시간에 주제별로 오려 붙여 완성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런 ‘메모’가 총 4432항. 조재삼은 이를 천문(天文), 지리(地理) 등의 33류(類)로 크게 나눠 주제에 맞게 배치했다. ‘송남잡지’는 1980년대 성균관대 임형택, 동국대 임기중 교수 등에 의해 발굴돼 많은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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