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이나 시어머니가 (이혼) 상담을 하러 오면 50% 정도 이혼소송으로 이어집니다. 상담 도중 자녀에게 ‘웬만하면 다시 생각하라’고 타이르죠. 장모가 오면요? 99% 소송 들어갑니다. 위자료, 재산분할 등 챙길 건 다 챙기고요.”(변호사 A씨)
“한 상담자는 그러더군요. 아내와 헤어지고 싶지만 절대 이혼하지 않겠다고. 또 다른 장모를 만난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친대요.”(상담원 B씨)
“동료들 얘기 들으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시집살이는 옛말이래요. 요즘은 의무방어 30년 ‘사위살이’ 시대잖아요. ‘눈치 10년, 아부 10년, 재롱 10년’이죠. 오죽하면 ‘꺼진(화를 누그러뜨린) 장모 다시 보자’고 할까요.”(직장인 C씨)
사위가 왔다고 버선발로 뛰어와 반겨주시던 장모, “믿는 건 자네밖에 없네” 하며 눈물로 딸을 부탁하던 장모, 처남들 몰래 쌀과 깨소금을 보내주며 “김 서방에게 잘해”라고 딸을 다독이던 장모. 사위의 ‘영원한 팬’인 줄로 여겨지던 장모는 이제 소설 속에서나 찾아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0년대), “잘 키운 딸 열 아들 안 부럽다”(1980년대)로 대표되는 정부의 가족계획에 적극 호응했던 요즘 장모들은 외동딸에게 쏟은 정성만큼 사위를 향한 요구도 커졌다.
‘주간동아’는 1월12~15일 서울가정문제상담소, 남성의 전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 상담기관과 서울가정법원 김영희 조정위원협의회장, 변호사, 87명의 사위 장모들을 만나 장모-사위 갈등 유형을 분석했다. 물론 여전히 버선발로 백년손님을 맞이하는 장모들이 다수라는 사족은 뺀다.
“기껏 키워줬더니…”= ‘여성의 사회참여도와 장모들의 입김은 정비례한다’는 속설을 뒷받침하는 ‘아이 볼모형’ 장모.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이런 유형의 장모도 부쩍 늘었다.
30대 회사원 박모 씨는 아이를 낳으면서 매서운 ‘사위살이’가 시작됐다. 장모에게 아이를 부탁하는 것이 안심되고 경제적이라는 아내의 말에 처음엔 그런가보다 했다. 집도 처가가 있는 경기 용인시로 옮겼다. 회사가 있는 서울 광화문까지 2시간여 출퇴근 전쟁은 참을 만했다. 가끔 주말에 ‘박 기사’가 되기를 원하는 장모를 위해 마트와 백화점, 찜질방으로 차를 몰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박 기사 콜’ 횟수도 늘고, 막내아들 대하듯 하는 장모의 말투도 언짢았다. 결국 지난해 12월 중순 박씨와 장모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전날 직장 송년회로 인한 숙취가 채 풀리지 않은 토요일 오전,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자네, 오늘 일찍 출발해야겠어. 고속도로가 많이 막힌대.”
전날 충북 청원군 초정약수에 가자는 장모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오케이’한 게 화근이었다.
“어머님. 오늘은 좀… 내일 가시면….”
그러자 장모는 신의가 없다는 둥, 성실하지 못하다는 둥 사위의 교감신경을 자극했고 결국 “제가 운전기사도 아니고…”라는 사위의 볼멘소리에 한마디 날리며 전화를 끊었다.
“기껏 (아이를) 키워줬더니… 돈이나 잘 벌면 (아이를) 맡기기나 하지.”
◎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1991년부터 ‘처가와의 갈등’을 상담 통계항목으로 잡았지만 거의 상담이 없다가 1998년부터 사위들의 상담이 본격 시작됐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보편화되면서 자녀양육과 가정관리를 친정 부모에게 맡기다 보니, 친정 부모들은 딸의 결혼생활에 더 밀접하게 개입하게 됩니다. 사위는 보통 결혼생활에 개입하려는 처가 식구에게 거부감을 가지죠. 여기에 딸 가진 부모들의 의식도 바뀌었습니다. 딸의 양육과 교육에 적극적이었고, 결혼 이후에도 딸의 결혼생활에 개입하려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적극 개입해 이혼시키려는 사람도 장모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성의 전화’ 이옥이 소장은 “매년 3000건 이상의 상담건수 중 70% 정도가 부부갈등이고, 이 중 10%가 장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상담전화”라고 말했다. 그는 “상담을 요청하는 사위 연령대는 40대, 30대, 50대 순”이라며 “최근에는 딸을 이혼시키려는 장모로 인한 상담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자네처럼 빈 몸으로 장가간 친구 있는가?” = 전형적인 ‘경제 압박형’ 장모. 경제적으로 처가에 의존하려는 요즘 사위들의 성향도 ‘경제 압박형’ 장모 양산을 부추긴다. 4년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모 씨. 유학 중 만나 결혼한 아내는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처가에서 20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장모의 도움으로 2억원(김씨 돈은 4000만원)을 주고 전세 아파트를 얻었다. 김씨는 대학 시간강사로, 아내는 증권사에서 일하게 됐고 2년 뒤 아내는 사표를 내고 육아에 전념했다. 딸 셋 중 가장 똑똑한 막내딸에게 유난히 기대가 컸던 장모는 판·검사 대신 엉뚱하게 시간강사에게 딸을 시집보냈다는 생각에 막내사위를 볼 때마다 말이 격해졌다. “시간강사는 언제까지 할 거야?” “집값이 널뛰는데 언제 집을 마련할 건가. 자네 집 어른들은 염치도 좋아.” 결국 참다못한 사위가 “귀한 딸 모시고 사니 힘드네요. 데리고 가세요”라고 하자 장모는 폭발했다. “누구 집인데? 꼴 같지도 않은 4000만원 당장 줄 테니 자네나 집에서 나가.”
더는 견딜 수 없던 김씨는 물컵을 던지며 밖으로 나오는데 아내의 말에 하늘이 노래졌다고 한다. 아내 왈, “엄마가 틀린 말 했어?” 사흘 뒤 장모에게 무릎 꿇고 빌었지만 허사였고, 김씨는 결국 아내와 협의이혼했다.
◎ 여성부가 2004년 1월 발표한 가족가치관 조사는 흥미롭다. 전국 3500가구 9109명을 대상으로 한 ‘경제적 지원은 어디에서 받는가’라는 질문에 ‘본가 부모형제’라는 응답은 13%인 데 비해 장인, 장모, 처제 등 처가 식구는 26.3%로 나타났다. 일상사 고민 상담도 본가 식구(6.7%)보다 처가 식구(34.7%)가 훨씬 높았다.
‘주간동아’가 2008년 9월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전국 성인남녀 500명 대상)에서도 여성의 연령이 낮을수록 모계혈족의 친밀도가 높았다. ‘부계혈족과 모계혈족 중 가까운 상대’를 묻는 질문에 20대 이하 여성의 72.5%는 모계혈족을 꼽았다. 30대 여성은 55.7%, 40대 여성은 52.1%가 모계혈족을 꼽았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남편이든 아내든 요즘은 처가와 친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아졌고, 의존과 동시에 장모에게 지배당하면서 후회하는 상담자가 많다”며 “내 인생의 운전대는 부부가 잡고, 처가 식구는 조력자 정도로 생각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한다.
“친구 사위는…” = ‘엄친사위 비교형’. 사위를 친구 사위(엄친사위)와 비교하며 은근히 사위 가슴에 ‘기스’를 내는 장모. 보통은 딸이 참다못해 친정어머니에게 한마디 하면 모녀의 언성이 높아지고 사위는 밖에 나가 담배를 무는 ‘시추에이션’이 벌어진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결혼 2년차 최모 씨는 요즘 장모를 보면 피하게 된다고 하소연이다.
“당직이어서 1월1일 출근했습니다. 오후에 전화로 새해 문안인사 드리니 시큰둥하시더라고요. 그날 저녁 집사람이 장모와 ‘한판’ 했더군요. 친구 사위는 장인 장모 모시고 1박2일 온천 갔대요.”
최씨는 장모 때문에 아는 것도 많아졌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고교 동문 사위는 장모님 건강하시라고 ‘8자 튜빙 운동기구’를 사줬대요. 옆집 사위는 겨울에 춥다고 ‘원적외선 방사 여성용 패드’를 사줬대요. 여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말레이시아 르당(Redang) 섬으로 효도관광 보내드렸대요. 저도 나름 많이 해드렸는데 그때뿐이었어요.”
결국 보다못한 아내가 “당분간 오지 마시라”고 하자 장모는 “남편 편든다”고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비교형’ 장모는 열등감과 대리만족이라는 키워드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와 비교를 하는 장모는 보통 주변 사람들의 사회적 성취나 명성, 재물 등을 통해 자기의 지위를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대접을 받으면서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는 거죠. 이런 장모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 있거나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하며 자신의 꿈을 포기한 것을 사위에게 보상받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딸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장모와 무조건 잘 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사위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기대치 엇박자’는 결국 서로의 골만 깊어지게 한다고. 가끔 장모가 트집을 잡으려 하면 사위는 장모를 위해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의 ‘센스쟁이’가 될 필요가 있다고 손 원장은 충고한다.
“엄마로서 얘기하잖아” = 장모 등쌀과 아내의 방조로 사위가 백기 항복하는 ‘압박형’ 장모. 주류도매업을 하는 손모 씨는 최근 은행원 아내를 상대로 이혼신청을 했다. 이혼 사유는 ‘장모의 간섭과 아내와의 성격 차이’. 3년 전 결혼한 손씨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내의 요청으로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 시골에서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자란 손씨는 신혼 초부터 장모의 극성스러운 성격에 난감했다.
“늦잠을 잔다고, 코를 곤다고, 옷을 더럽게 입는다고, 매일 이불 털지 않는다고 등등 잔소리 이유도 수만 가지입니다.”
방에서 아내와 말다툼을 하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딸을 감쌌고, 아내는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냐며 남편을 타박했다. 자신의 잠버릇까지 엄마에게 말하는 아내를 보고 기가 찼지만 ‘마마걸’로 치부하고 넘기려 했다. 어느 날 모처럼 상경한 어머니는 아들을 막 대하는 사돈을 보고 곧장 시골로 내려갔고, 그날 밤 손씨는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 장모는 결국 사돈에게 전화해 당장 이혼시킬 것을 요구했고, 여행가방을 내던지는 장모를 뒤로하고 손씨는 법원을 찾았다.
◎ 서울가정법원 김영희 조정위원협의회장은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는 책에서 “딸의 경제적 능력이 사위보다 높을 경우 장모의 발언권과 간섭은 더 심해지고 사위를 무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결국 장모와 사위 갈등은 딸에게 집착하는 장모와 엄마에게 의존하는 딸의 합작품”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갈등의 주원인은 “결혼을 하고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딸”이라며 “친정어머니에게 가장(家長) 역할을 하게 해서 남편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딸에게 책임이 있다”고 분석한다.
“큰사위는 딸 호강시키는데…” = 사위로서는 가장 상처가 크다는 ‘동서 비교형’ 장모.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만큼 자존심 회복까지 치료시간이 길다고 사위들은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이모(42) 씨는 결혼 10년이 됐는데도 장모와 냉랭한 기싸움 중이라고 털어놨다.
“처형이 아내보다 외모, 학벌이 떨어지는데도 의사와 결혼해 떵떵거리고 잘살고 있죠. 아내가 저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눈물 흘리며 반대하던 장모님은 지금도 여전하시고요. 명절 때 용돈 액수며 아파트 평수, 심지어 아이들 성적까지 들먹이는데…. 제가 능력이 없어 교육도 최고급으로 시키지 못하고 아내도 고생시킨다고 생각하시고요.”
장모의 편애는 눈에 띌 정도였다고 한다.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착한 아내가 원망스러웠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손위 동서에게는 철마다 한약에, 골프 클럽까지 쌈짓돈을 털어 사주시면서 제게는 ‘립서비스’도 없습니다. 좀 치사하긴 하지만 아내가 나서 장모한테 따졌음 싶었는데 그냥 ‘엄마는 참…’ 하고 말더라고요.” 처가에서 드라마를 보다가도 시집을 잘 가지 못해 고생하는 여자가 나오는 장면에서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혀를 끌끌 차는 장모를 보면 꼭 자신한테 던지는 돌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장모와 저는 말은 하되 눈은 안 마주칩니다. 그나마 사람 좋은 장인이 가끔 어깨를 두들겨주셔서 처가를 가긴 합니다만, 장모님과는 도대체 언제 ‘화해’하게 될까요? 명절이 두렵습니다.”
◎ 장모와 사위 간 갈등은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구비설화집 ‘한국구비문학대계’ 82권과 ‘임석재전집’ 12권, 문헌설화집 ‘청구야담’에 등장하는 장모와 사위 간 갈등 설화를 분석한 ‘현대 장모와 사위 사이의 갈등 해결을 위한 설화의 문학치료적 가능성 탐색’(서은아·인문학 연구 제34권 제2호) 논문은 설화 속 갈등 유형과 해결 방안이 현대 장모와 사위 간 갈등 해결에도 유용하다고 진단한다. 우리나라 설화에 등장하는 갈등은 △사위의 경제적 능력 부족 △다른 사위와 비교하는 장모 △사위의 성격 결함 △사위의 외모가 탐탁지 않은 장모 등 네 가지 유형. 갈등 해결 방안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극진한 배려 △사위의 능력 신장과 장모의 인정이 주류를 이룬다. 저자는 이 두 가지 해결 방법으로 충분히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사위는 백년손님” = 그래도 여전한 ‘전통형’ 장모. 경기지역 초등 교사 7명은 최근 신년회를 겸한 저녁 회식 자리에서 사위를 주제로 토론을 펼쳤다. 교사 경력 30년 이상인 이들 중 사위를 둔 장모는 6명. 사위가 편한지, 편하지 않은지를 주제로 얘기를 나누던 이들은 ‘아무리 착한 사위라도 사위는 역시 백년손님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주말에 딸이랑 사위가 같이 온다는 전화를 받으면 마음이 바빠. 일을 하니까 아무래도 주말엔 좀 쉬고 싶잖아. 딸만 오면 알아서 차려 먹으라고 하겠는데 사위가 온다면 고기반찬이라도 한 가지 더 해야 하니까.”(A교사)
“그래서 난 외식으로 통일했어. 부담 갖지 않고 편하게 대접할 수 있으니까.”(B교사)
“우리 집은 ‘아예 잠은 자고 가지 않는다’를 철칙으로 정했지. 잠자리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귀한 손님’ 모시려면 신경이 많이 쓰이거든.”(C교사)
1남2녀를 둔 이순금(57) 교사는 요즘 서로 어려워하는 장모, 사위 관계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딸보다 세 살 연하인 사위(36)와 격의 없이 지내기 때문. 그가 내리는 사위에 대한 정의 역시 ‘아들보다 더 좋은 또 하나의 아들’이다.
“나이 차이 때문에 사돈댁에서 반대할까봐 걱정했는데 흔쾌히 결혼을 허락하시더라고요. 5남매의 막내인 사위도 70대 노인인 어머니보다 조금 더 젊은 저랑 잘 통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요.”
사위는 이 교사 자신도 잊어버린 생일을 챙기고 서울 교외의 멋진 레스토랑으로 초대하기도 한다고. 이 교사는 사위와의 궁합이 맞는 이유로 ‘서로 어깨 힘을 뺐기 때문’을 꼽았다.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대학생 인턴기자 김보람(연세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한 상담자는 그러더군요. 아내와 헤어지고 싶지만 절대 이혼하지 않겠다고. 또 다른 장모를 만난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친대요.”(상담원 B씨)
“동료들 얘기 들으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시집살이는 옛말이래요. 요즘은 의무방어 30년 ‘사위살이’ 시대잖아요. ‘눈치 10년, 아부 10년, 재롱 10년’이죠. 오죽하면 ‘꺼진(화를 누그러뜨린) 장모 다시 보자’고 할까요.”(직장인 C씨)
사위가 왔다고 버선발로 뛰어와 반겨주시던 장모, “믿는 건 자네밖에 없네” 하며 눈물로 딸을 부탁하던 장모, 처남들 몰래 쌀과 깨소금을 보내주며 “김 서방에게 잘해”라고 딸을 다독이던 장모. 사위의 ‘영원한 팬’인 줄로 여겨지던 장모는 이제 소설 속에서나 찾아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0년대), “잘 키운 딸 열 아들 안 부럽다”(1980년대)로 대표되는 정부의 가족계획에 적극 호응했던 요즘 장모들은 외동딸에게 쏟은 정성만큼 사위를 향한 요구도 커졌다.
‘주간동아’는 1월12~15일 서울가정문제상담소, 남성의 전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 상담기관과 서울가정법원 김영희 조정위원협의회장, 변호사, 87명의 사위 장모들을 만나 장모-사위 갈등 유형을 분석했다. 물론 여전히 버선발로 백년손님을 맞이하는 장모들이 다수라는 사족은 뺀다.
“기껏 키워줬더니…”= ‘여성의 사회참여도와 장모들의 입김은 정비례한다’는 속설을 뒷받침하는 ‘아이 볼모형’ 장모.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이런 유형의 장모도 부쩍 늘었다.
30대 회사원 박모 씨는 아이를 낳으면서 매서운 ‘사위살이’가 시작됐다. 장모에게 아이를 부탁하는 것이 안심되고 경제적이라는 아내의 말에 처음엔 그런가보다 했다. 집도 처가가 있는 경기 용인시로 옮겼다. 회사가 있는 서울 광화문까지 2시간여 출퇴근 전쟁은 참을 만했다. 가끔 주말에 ‘박 기사’가 되기를 원하는 장모를 위해 마트와 백화점, 찜질방으로 차를 몰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박 기사 콜’ 횟수도 늘고, 막내아들 대하듯 하는 장모의 말투도 언짢았다. 결국 지난해 12월 중순 박씨와 장모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전날 직장 송년회로 인한 숙취가 채 풀리지 않은 토요일 오전,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자네, 오늘 일찍 출발해야겠어. 고속도로가 많이 막힌대.”
전날 충북 청원군 초정약수에 가자는 장모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오케이’한 게 화근이었다.
“어머님. 오늘은 좀… 내일 가시면….”
그러자 장모는 신의가 없다는 둥, 성실하지 못하다는 둥 사위의 교감신경을 자극했고 결국 “제가 운전기사도 아니고…”라는 사위의 볼멘소리에 한마디 날리며 전화를 끊었다.
“기껏 (아이를) 키워줬더니… 돈이나 잘 벌면 (아이를) 맡기기나 하지.”
◎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1991년부터 ‘처가와의 갈등’을 상담 통계항목으로 잡았지만 거의 상담이 없다가 1998년부터 사위들의 상담이 본격 시작됐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보편화되면서 자녀양육과 가정관리를 친정 부모에게 맡기다 보니, 친정 부모들은 딸의 결혼생활에 더 밀접하게 개입하게 됩니다. 사위는 보통 결혼생활에 개입하려는 처가 식구에게 거부감을 가지죠. 여기에 딸 가진 부모들의 의식도 바뀌었습니다. 딸의 양육과 교육에 적극적이었고, 결혼 이후에도 딸의 결혼생활에 개입하려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적극 개입해 이혼시키려는 사람도 장모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성의 전화’ 이옥이 소장은 “매년 3000건 이상의 상담건수 중 70% 정도가 부부갈등이고, 이 중 10%가 장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상담전화”라고 말했다. 그는 “상담을 요청하는 사위 연령대는 40대, 30대, 50대 순”이라며 “최근에는 딸을 이혼시키려는 장모로 인한 상담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자네처럼 빈 몸으로 장가간 친구 있는가?” = 전형적인 ‘경제 압박형’ 장모. 경제적으로 처가에 의존하려는 요즘 사위들의 성향도 ‘경제 압박형’ 장모 양산을 부추긴다. 4년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모 씨. 유학 중 만나 결혼한 아내는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처가에서 20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장모의 도움으로 2억원(김씨 돈은 4000만원)을 주고 전세 아파트를 얻었다. 김씨는 대학 시간강사로, 아내는 증권사에서 일하게 됐고 2년 뒤 아내는 사표를 내고 육아에 전념했다. 딸 셋 중 가장 똑똑한 막내딸에게 유난히 기대가 컸던 장모는 판·검사 대신 엉뚱하게 시간강사에게 딸을 시집보냈다는 생각에 막내사위를 볼 때마다 말이 격해졌다. “시간강사는 언제까지 할 거야?” “집값이 널뛰는데 언제 집을 마련할 건가. 자네 집 어른들은 염치도 좋아.” 결국 참다못한 사위가 “귀한 딸 모시고 사니 힘드네요. 데리고 가세요”라고 하자 장모는 폭발했다. “누구 집인데? 꼴 같지도 않은 4000만원 당장 줄 테니 자네나 집에서 나가.”
더는 견딜 수 없던 김씨는 물컵을 던지며 밖으로 나오는데 아내의 말에 하늘이 노래졌다고 한다. 아내 왈, “엄마가 틀린 말 했어?” 사흘 뒤 장모에게 무릎 꿇고 빌었지만 허사였고, 김씨는 결국 아내와 협의이혼했다.
◎ 여성부가 2004년 1월 발표한 가족가치관 조사는 흥미롭다. 전국 3500가구 9109명을 대상으로 한 ‘경제적 지원은 어디에서 받는가’라는 질문에 ‘본가 부모형제’라는 응답은 13%인 데 비해 장인, 장모, 처제 등 처가 식구는 26.3%로 나타났다. 일상사 고민 상담도 본가 식구(6.7%)보다 처가 식구(34.7%)가 훨씬 높았다.
‘주간동아’가 2008년 9월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전국 성인남녀 500명 대상)에서도 여성의 연령이 낮을수록 모계혈족의 친밀도가 높았다. ‘부계혈족과 모계혈족 중 가까운 상대’를 묻는 질문에 20대 이하 여성의 72.5%는 모계혈족을 꼽았다. 30대 여성은 55.7%, 40대 여성은 52.1%가 모계혈족을 꼽았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남편이든 아내든 요즘은 처가와 친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아졌고, 의존과 동시에 장모에게 지배당하면서 후회하는 상담자가 많다”며 “내 인생의 운전대는 부부가 잡고, 처가 식구는 조력자 정도로 생각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한다.
“친구 사위는…” = ‘엄친사위 비교형’. 사위를 친구 사위(엄친사위)와 비교하며 은근히 사위 가슴에 ‘기스’를 내는 장모. 보통은 딸이 참다못해 친정어머니에게 한마디 하면 모녀의 언성이 높아지고 사위는 밖에 나가 담배를 무는 ‘시추에이션’이 벌어진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결혼 2년차 최모 씨는 요즘 장모를 보면 피하게 된다고 하소연이다.
“당직이어서 1월1일 출근했습니다. 오후에 전화로 새해 문안인사 드리니 시큰둥하시더라고요. 그날 저녁 집사람이 장모와 ‘한판’ 했더군요. 친구 사위는 장인 장모 모시고 1박2일 온천 갔대요.”
최씨는 장모 때문에 아는 것도 많아졌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고교 동문 사위는 장모님 건강하시라고 ‘8자 튜빙 운동기구’를 사줬대요. 옆집 사위는 겨울에 춥다고 ‘원적외선 방사 여성용 패드’를 사줬대요. 여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말레이시아 르당(Redang) 섬으로 효도관광 보내드렸대요. 저도 나름 많이 해드렸는데 그때뿐이었어요.”
결국 보다못한 아내가 “당분간 오지 마시라”고 하자 장모는 “남편 편든다”고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비교형’ 장모는 열등감과 대리만족이라는 키워드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와 비교를 하는 장모는 보통 주변 사람들의 사회적 성취나 명성, 재물 등을 통해 자기의 지위를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대접을 받으면서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는 거죠. 이런 장모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 있거나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하며 자신의 꿈을 포기한 것을 사위에게 보상받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딸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장모와 무조건 잘 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사위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기대치 엇박자’는 결국 서로의 골만 깊어지게 한다고. 가끔 장모가 트집을 잡으려 하면 사위는 장모를 위해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의 ‘센스쟁이’가 될 필요가 있다고 손 원장은 충고한다.
“엄마로서 얘기하잖아” = 장모 등쌀과 아내의 방조로 사위가 백기 항복하는 ‘압박형’ 장모. 주류도매업을 하는 손모 씨는 최근 은행원 아내를 상대로 이혼신청을 했다. 이혼 사유는 ‘장모의 간섭과 아내와의 성격 차이’. 3년 전 결혼한 손씨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내의 요청으로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 시골에서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자란 손씨는 신혼 초부터 장모의 극성스러운 성격에 난감했다.
“늦잠을 잔다고, 코를 곤다고, 옷을 더럽게 입는다고, 매일 이불 털지 않는다고 등등 잔소리 이유도 수만 가지입니다.”
방에서 아내와 말다툼을 하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딸을 감쌌고, 아내는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냐며 남편을 타박했다. 자신의 잠버릇까지 엄마에게 말하는 아내를 보고 기가 찼지만 ‘마마걸’로 치부하고 넘기려 했다. 어느 날 모처럼 상경한 어머니는 아들을 막 대하는 사돈을 보고 곧장 시골로 내려갔고, 그날 밤 손씨는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 장모는 결국 사돈에게 전화해 당장 이혼시킬 것을 요구했고, 여행가방을 내던지는 장모를 뒤로하고 손씨는 법원을 찾았다.
◎ 서울가정법원 김영희 조정위원협의회장은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는 책에서 “딸의 경제적 능력이 사위보다 높을 경우 장모의 발언권과 간섭은 더 심해지고 사위를 무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결국 장모와 사위 갈등은 딸에게 집착하는 장모와 엄마에게 의존하는 딸의 합작품”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갈등의 주원인은 “결혼을 하고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딸”이라며 “친정어머니에게 가장(家長) 역할을 하게 해서 남편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딸에게 책임이 있다”고 분석한다.
“큰사위는 딸 호강시키는데…” = 사위로서는 가장 상처가 크다는 ‘동서 비교형’ 장모.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만큼 자존심 회복까지 치료시간이 길다고 사위들은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이모(42) 씨는 결혼 10년이 됐는데도 장모와 냉랭한 기싸움 중이라고 털어놨다.
“처형이 아내보다 외모, 학벌이 떨어지는데도 의사와 결혼해 떵떵거리고 잘살고 있죠. 아내가 저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눈물 흘리며 반대하던 장모님은 지금도 여전하시고요. 명절 때 용돈 액수며 아파트 평수, 심지어 아이들 성적까지 들먹이는데…. 제가 능력이 없어 교육도 최고급으로 시키지 못하고 아내도 고생시킨다고 생각하시고요.”
장모의 편애는 눈에 띌 정도였다고 한다.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착한 아내가 원망스러웠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손위 동서에게는 철마다 한약에, 골프 클럽까지 쌈짓돈을 털어 사주시면서 제게는 ‘립서비스’도 없습니다. 좀 치사하긴 하지만 아내가 나서 장모한테 따졌음 싶었는데 그냥 ‘엄마는 참…’ 하고 말더라고요.” 처가에서 드라마를 보다가도 시집을 잘 가지 못해 고생하는 여자가 나오는 장면에서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혀를 끌끌 차는 장모를 보면 꼭 자신한테 던지는 돌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장모와 저는 말은 하되 눈은 안 마주칩니다. 그나마 사람 좋은 장인이 가끔 어깨를 두들겨주셔서 처가를 가긴 합니다만, 장모님과는 도대체 언제 ‘화해’하게 될까요? 명절이 두렵습니다.”
◎ 장모와 사위 간 갈등은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구비설화집 ‘한국구비문학대계’ 82권과 ‘임석재전집’ 12권, 문헌설화집 ‘청구야담’에 등장하는 장모와 사위 간 갈등 설화를 분석한 ‘현대 장모와 사위 사이의 갈등 해결을 위한 설화의 문학치료적 가능성 탐색’(서은아·인문학 연구 제34권 제2호) 논문은 설화 속 갈등 유형과 해결 방안이 현대 장모와 사위 간 갈등 해결에도 유용하다고 진단한다. 우리나라 설화에 등장하는 갈등은 △사위의 경제적 능력 부족 △다른 사위와 비교하는 장모 △사위의 성격 결함 △사위의 외모가 탐탁지 않은 장모 등 네 가지 유형. 갈등 해결 방안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극진한 배려 △사위의 능력 신장과 장모의 인정이 주류를 이룬다. 저자는 이 두 가지 해결 방법으로 충분히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사위는 백년손님” = 그래도 여전한 ‘전통형’ 장모. 경기지역 초등 교사 7명은 최근 신년회를 겸한 저녁 회식 자리에서 사위를 주제로 토론을 펼쳤다. 교사 경력 30년 이상인 이들 중 사위를 둔 장모는 6명. 사위가 편한지, 편하지 않은지를 주제로 얘기를 나누던 이들은 ‘아무리 착한 사위라도 사위는 역시 백년손님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주말에 딸이랑 사위가 같이 온다는 전화를 받으면 마음이 바빠. 일을 하니까 아무래도 주말엔 좀 쉬고 싶잖아. 딸만 오면 알아서 차려 먹으라고 하겠는데 사위가 온다면 고기반찬이라도 한 가지 더 해야 하니까.”(A교사)
“그래서 난 외식으로 통일했어. 부담 갖지 않고 편하게 대접할 수 있으니까.”(B교사)
“우리 집은 ‘아예 잠은 자고 가지 않는다’를 철칙으로 정했지. 잠자리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귀한 손님’ 모시려면 신경이 많이 쓰이거든.”(C교사)
1남2녀를 둔 이순금(57) 교사는 요즘 서로 어려워하는 장모, 사위 관계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딸보다 세 살 연하인 사위(36)와 격의 없이 지내기 때문. 그가 내리는 사위에 대한 정의 역시 ‘아들보다 더 좋은 또 하나의 아들’이다.
“나이 차이 때문에 사돈댁에서 반대할까봐 걱정했는데 흔쾌히 결혼을 허락하시더라고요. 5남매의 막내인 사위도 70대 노인인 어머니보다 조금 더 젊은 저랑 잘 통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요.”
사위는 이 교사 자신도 잊어버린 생일을 챙기고 서울 교외의 멋진 레스토랑으로 초대하기도 한다고. 이 교사는 사위와의 궁합이 맞는 이유로 ‘서로 어깨 힘을 뺐기 때문’을 꼽았다.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대학생 인턴기자 김보람(연세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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