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4일 서울 여의도동 63시티 루프가든에서 열린 얼음조각전에서 직원들이 떡국 등 전통음식을 선보이고 있다.조각 전시는 27일까지.
설날은 그의 말처럼 첨단(尖端)에서 까치발로 꼿꼿이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모처럼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둘러앉는 날일 수도 있겠다. 설날 아침 한솥밥을 먹는(혹은 먹었던) 집안 식구들은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뒤 함께 음복(飮福)을 하니 말이다. 조상들과 현세의 가족이 한 솥에서 한 제수(祭需)를 들며 동질감을 확인하고 정신적 위안을 받는 이때 빠지지 않는 게 떡국이다. 끈적끈적 들러붙은 흰떡을 나눠먹다 보면 할 얘기, 안 할 얘기 구분도 모호해진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설날 떡국을 먹는 풍속은 매우 오래됐는데 상고시대 이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됐다”고 설명한다. 이를 따라 올라가면, 원래 정월에 먹는 떡을 달떡이라고 했다. 흰떡을 여러 사람이 떼어먹기 좋게 달처럼 큼직하게 만들어놓아서 달떡이다. 떡이 오르지 않는 제사가 없듯 달떡도 신명(神明)에게 바친 뒤 음복을 하며 한마음을 다지는 구실을 했다. 흰떡을 끌어서 자른다는 인절미(引切米)도 여기서 비롯됐다. 선조들은 이 달떡을 길게 빼 먹음으로써 장수를 기원했고 이를 잘라 먹기 편하게 만든 게 떡국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원래 떡국에는 흰떡과 쇠고기, 꿩고기가 쓰였으나 꿩을 구하기 힘들면 닭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으니, 잡기 힘든 꿩 대신 닭을 쓰면서 생긴 ‘꿩 대신 닭’이라는 말 속에서 떡국의 일상화를 엿볼 수 있다. 그저 먹으면 한 살 더 먹는 떡국은 이처럼 동질감, 나아가 인내천(人乃天)을 확인하는 정신음식이었던 것이다.
일자훈·삼자훈, 설날 미풍양속 살아나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엔 집안 어른이나 서당 훈장에게 세배를 하면 봉투를 하나씩 건네받았는데, 집에 돌아와 봉투를 뜯어보면 교훈이 되는 세배 글(덕필)이 쓰여 있었다. 외자면 일자훈(一字訓)이고 세 자면 삼자훈(三字訓)이라 했는데, 언론인 이규태(1933~2006) 씨는 어릴 적 훈장으로부터 삼자훈으로 ‘행중신(幸中辛)’을 받았다고 소개한 바 있다. 행(幸)자 속에는 매울 신(辛)자가 들어 있음을 적시해주는 교훈이었는데 행복은 역정을 겪어야 얻어지는 것이요, 좌절을 극복했을 때 느끼는 경지라는 가르침이었다. 결국 세배 글은 자녀나 후학을 염려하고 애틋하면서도 격의 있는 선조들의 ‘마음 글’이었던 것이다.
기축년 올해는 올망졸망 후손들과 떡국을 먹고는 소 우(牛)자 일자훈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겉차림과 시류를 좇는 요즘 매사 둔중하고 은근하라는 가르침은 받는 사람에게는 정사유(正思惟), 주는 사람에게는 정정진(正精進)의 기회가 되겠다. 요즘 초등학생 손자, 손녀를 둔 할아버지들 사이에 세배 글을 써주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니 잠시 잊혔던 설날 미풍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반갑다. 역시 설날은 설레는 날이다.